글 백시종 그림 박성현


카인의 아침 ⑨

문제는 서로 엇비슷한 단급끼리 붙는 것이 아니라, 무방비 상태에 있는 저급 태권도 수강생을 급습한다는 데 있다. 고도로 훈련된 가라데 특공대가 이제 막 폼을 잡기 시작한 신참 훈련생과 맞선다면 이건 십중팔구가 아니라, 백전백패로 가라데 앞에 태권도가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다.

실제로 그런 사건이 하노이 최대 인파가 모이는 부루바로 대로에서 두서너 번 있고 나서 급전직하로 태권도 수강생이 줄기 시작한 것이다.



수강생 숫자가 준다고 해서 당장 태권도장 문을 닫는 것은 아니지만, 베트남 유력 인사들, 예컨대 태권도에 관심을 표명하던 군 관계 실력자들이 하나 둘 등을 돌리기 시작하면 그 사태는 실로 걷잡을 수 없게 된다.

이른바 베트남에서 군 생활을 함께 한 박상길 씨와 죽이 착착 맞았던 서승돈 씨를 주요 파트너로 영입하게 된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더구나 세기의 프로젝트인 통킹 만 석유 개발 사업을 앞두고 두 사람이 손을 잡았다는 것은, 흡사 돼지고기와 새우젓 같은 찰떡 궁합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데, 그 은밀한 프로젝트가 시도도 하기 전에 일본의 훼방으로 물거품이 될 공산이 크다. 어떤 방법으로든 그동안 실추되었던 태권도의 이미지를 가능한 빠른 시일 안에 업그레이드 시켜야 한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다시 태권도로 돌려 놓아야 하고, 은밀히 뒷거래 형식으로 추진중인 그 프로젝트도 과감히 밀어 제껴, 기어코 성사 시켜야 하는 것이다.

또 있다. 비 신사적인 방법으로 태권도를 깔아 뭉갠 가라데 도장에 대한 분풀이도 함께 진행해야 하는 것이다.

오늘 그들의 지프차가 미니버스를 들이받은 것도, 공항에서부터 계속 미행을 시도한 것도, 기실 단순한 무예 실력을 겨루기 위한 알력이 아니다. 서로 수강생을 더 많이 확보하겠다는 도장 운영권의 경쟁은 더 더욱 아니다.

그 배후를 들춰 보면 너무 확연하다. 바로 그 프로젝트다. 한마디로 일본의 미쓰비시가 냄새를 맡았다는 얘기다. 그 좋은 먹거리를 왜 너희까지 끼어 드느냐 식이다. 그래서 서승돈이 재기의 발판으로 추진했던 야심의 프로젝트에 아예 접근조차 못하게 사전에 절단을 내 놓겠다는 심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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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준호는 조봉삼과 고수길을 사원 경내에 세워 놓고 조용조용 훈시를 한다.

"니들 봤지? 가라데 도장 아이들이 우리 무술을 깔보고 도전하는 광경, 우리 차를 미행했다는 건, 너희를 비롯해서 나, 아니 우리 대한민국을 졸로 보고 있다는 증거야.…사실은 그런 걸 염려해서 너희들을 사찰에 데리고 온 거지만 말이야. 야, 조봉삼."

"네, 행님."

"내가 너한테 권하던 운동이 뭐야?"

"운동이요? 그기야 …심신 단련…."

하다가 아차 생각났다는 듯이,

"알겠심더, 기 운동허라 안케씹니꺼."

"그래, 기 운동은 곧 단전호흡이다. 단전호흡은 명상으로 하는 기본 단련이고… 내가 늘 얘기 하지만 무술이건 무예건 먼저 선행돼야 하는 것은 심신 수양, 다시 말해 명상이란 말이야. 마음을 잡지 않고 무예에만 능한 것은 상대 앞에 항복을 선언한 행위나 진배없다, 그말이야. 그렇다면 우리가 여기 이 사원에 왜 왔느냐?"

"행님, 내도 압니더. 불공으로 마음을 잡자 아닝교?"

조봉삼의 돌발적인 김 빼기 작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박준호가 천천히 계속한다.

"너희는 잘 모르겠지만, 베트남 사원에는 우리나라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위빠사나가 있다. 그게 뭐냐면 …우리 말로 '바로 본다'는 뜻이다. 불경을 처음 기록한 팔리 어로 위빠사나인데, 한마디로 깨닫음을 얻는 수행법이라는 거다. 명상으로 마음을 집중시켜서 집착과 욕망을 소멸시키는 수행법… 위빠사나의 명상은 어떻게 하느냐? 단칼로 쳐서 신수심법이다. 신(身)은 몸의 작용이고, 수(受)는 느낌이고, 심(心)은 마음의 움직임, 그리고 법(法)은 깨닫음이다. 야, 조봉삼 알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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