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백시종 그림 박성현
액자 밖으로 걸어 나온 그림 ⑨

박준호가 목을 짓누른 듯한 답답함 때문에 입을 닫고 있는 동안 서승돈이 말을 잇는다.

"일규 녀석도 그렇지만 더 큰 문제는 김상도 회장이야. 단도직입적으로 말해서 사기를 당한 거라구. 홍 여사 친정 아버지에게서 받은 남강정유 15퍼센트 주식도 어느 사이에 모두 일규 녀석 소유로 돌려 놓았다는거야. 물론 김상도의 교활한 책략이지. 친아들, 그것도 미성년자 소유로 돌려 놓은 것을 누구한테 하소연할 수도 없고, … 꼼짝 없이 당한 케이스야."



서승돈이 얼마나 분통이 터지는지, 안 그래도 말라비틀어진 아랫입술을 으깨어 문다. 한숨도 푹푹 소리나게 쉰다. 그가 말한다.

"그 주식이 일규한테만 안 갔어도, 아니, 그때 홍 여사 인감을 김상도에게만 맡기지 않았어도, 우리가 지금 이렇게 곤혹을 치르지는 않을 텐데 말이야. …사실 홍 여사와 이 사업을 기획했을 때만 해도, 은행자금 동원에 대해 전혀 걱정하지 않았거든. 홍 여사가 보유한 주식만으로 은행 신용 한도가 충분하다 못해 넘쳤으니까."

"그러니까, 홍 여사 쪽에서는 전혀 기대할 수 없게 되었다는 얘기군요."

박준호가 결론을 내린다.

"그래, 그렇게 됐어. 유감스럽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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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승돈이 생각할수록 주어진 현실을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말을 계속한다.

"그 칼 자루는 일규라는 아이가 쥐게 될지 누가 알았나? 아니, 교활하게끔 일규를 앞세워, 홍 여사의 팔 다리를 그렇게 무참히 끊어 놓으리라고 누가 감히 상상이나 했겠나? 생각해 봐. 영림건설 주식이야 그렇다 치고, 친정 아버지한테 받은 남강정유 주식 말이야. 주당 17만원에 거래되는 최고 우량주 아냐? 그게 자그마치 15만 주야. 액면가만 250억이라구. 그걸 김상도가 일규를 앞세워 제 아가리에 털어 넣어 버린 거란 말이야."

"제 아가리에 털어 넣다뇨?"

"내용인즉슨, 그래. 남강정유 주식을 볼모로 결국 서서히 남강을 먹고… 그리고 남강보다 두 배 세 배 큰 정유회사를 따로 설립해서 통합시키는 야비한 음모를 꾸미고 있는거야. 그래서 이번 통킹 만 유전 개발사업에도 저렇게 천방지축 뛰어든 거라구. 무엇보다 텍사코의 환심을 사서, 공동출자 형식의 정유회사를 새로 설립하기 위해서."

박준호는 고개를 흔든다. 물론 서승돈의 얘기를 알아듣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들으면 들을수록 머리가 아프다. 내색할 수 없지만, 영림의 김상도 회장 얘기만 나오면 우선 짜증부터 앞을 가린다. 처음부터 끝까지 상식을 벗어난 얘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서승돈이 그토록 강경하게 주장해 마지않으므로 박준호도 더 이상 홍주리 이름을 들먹여 투자 자금 문제와 연결시킬 수 없다. 그래서 고작 한다는 소리가, "그렇다고 이대로 주저앉을 수는 없잖습니까?" 뿐이다.

"내 말이 그 말이야. …하지만 내가 아는 뱅크가 거지반 김 회장이 거래했던 곳 아냐…. 막말로 삼장법사 손바닥을 빠져나오기 전에는…."

서승돈의 그것은 숫제 하소연이다.

박준호가 한마디 한다.

"영림그룹의 위대한 김 회장께서, 미국에서도 호주에서도 빈 손으로 돌아갔다는 보고를 받고 회심의 미소를 띠고 있겠네요. 하이에나가 제풀에 쓰러지는 물소를 기다리는 것처럼."

"그렇겠지. 고소하다는 듯이 만면에 미소를 머금고 있겠지."

서승돈이 목소리를 바꿔 말을 잇는다.

"거 봐, 날 배신한 놈 치고 제대로 되는 놈 봤어? 더구나 승돈이 같은 질 나쁜 놈은 수모를 당해도 크게 당해야 돼. 장담하지만, 내 이 업계에 절대로 발붙이지 못하도록 만들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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