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백시종 그림 박성현
액자 밖으로 걸어 나온 그림 ⑬


319182_34504_3619
"어른이라뇨?"

웬 잠꼬대냐 식으로 박준호가 반문하다.



"우리한테, 어른이 또 있어! 대통령 각하 말고?"

여전히 눈을 감고 대꾸하고 있다. 그가 계속한다.

"내가 대신 전해드린 것만 해도 수억이었잖아?"

"그거야 뭐… 노근리 학살사건 규명기금으로…."

"어쨌든 우리도 할만큼 했잖아!"

"글쎄요… 그런 식으로 말씀한다면, 열심히 한 셈이지요…. 한데, 그게 무슨 문제가 생겼습니까?"

서승돈이 두 팔을 들어 필요 이상으로 흔들어 제끼며 계속한다.

"신경 쓸 거 없어. 그냥 문득 생각났을 뿐이니까…. 그보다 우리하고 가라데 체육관하고 대결하는 거 말이야. 그거 빨리 했으면 좋겠어. 돈 드는 파티 대신."

"알았습니다."

"이번 주말 쯤 어때?"

서승돈은 여전히 눈을 감고 있다.

"알겠습니다."

문을 닫으려다 말고 이번에는 박준호가 입을 연다.

"서 사장님."

"왜 그래?"

"한 가지 물어도 되겠습니까?"

뭐든 물어도 좋다는 표시로 서승돈이 감았던 눈을 번쩍 뜬다. 박준호가 말한다.

"홍주리 여사님에 대해서 묻고 싶은데요.… 사장님, 그분을 사랑하십니까?"

"사랑하느냐구?"

너무 어이없는 질문이라는 듯 서승돈이 비스듬히 누웠던 몸을 벌떡 일으켜 세운다.

"네, 사랑하느냐고 물었습니다."

"그걸, 왜 자네가 묻지?"

"그냥 대답만 해 주십시오."

"왜, 그런 질문을 하는지, 이유를 밝히지 않으면 대답할 수 없어."

"이유를 밝히라구요?"

"그래, 당연히 밝혀야지."

박준호가 반쯤 열린 문 밖의 눈부신 햇빛을 바라보며 입을 연다.

"홍주리를 진정으로 좋아하는… 그 여자가 아니면 안 되는 절실한 남자가 있다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아, 그거?"

어느 누구에게도 공개한 적이 없는, 아니 공개라는 말 자체를 꺼낼 수 없었던 절치부심의 박준호 고백을 서승돈은 그런 식으로 가볍게 받아 넘겨 버린다. 그가 말한다.

"김상도 회장 얘기구먼."

서승돈이 마른 침을 꿀꺽 삼키는 소리와 함께 조용조용 입을 열기 시작한다.

"그 얘기라면, 이미 끝났어. 천하의 김상도도 그 문제만은 어떻게 할수 없었고, 나 역시 한 발짝도 물러설 수도, 포기할 수도 없었어. 그래서 영림에서 쫓겨난 거 아닌가. 맞아, 땅이 패이지 않고서는 씨앗을 뿌릴 수 없듯, 사랑도 철저히 파괴되지 않고서는 얻지 못하는 법이야. 왜냐하면 아픔으로 영그는 열매가 진정한 사랑이니까."

서승돈이 만면에 미소를 가득 띤 얼굴로 계속 말을 잇는다.

"은행들은 거부했지만, 이번 미국 출장에서 나는 자유를 얻었어. 내 아내와 아이들이 미국에 살고 있는 줄 자네도 알지? 그렇게 완강히 버티던 아내가 드디어 합의 이혼서에 도장을 찍어 줬어. 물론 내가 갖고 있는 모든 재산을 아내에게 양도하는 조건이긴 하지만… 어쨌든 나는 자유를 얻었고, 이제 당당히 홍주리 앞에 우뚝 서게 됐어!"

박준호는 문을 닫는다. 이제 눈부신 햇빛뿐이다. 시계를 본다. 오후 2시다. 하노이의 하루 중 가장 한가할 때다.

모두가 시원한 야자수 그늘에 앉아 신또르 주스를 만들어 마시는 시간이다.

파파야, 망고, 아본가도를 으깨 천연 주스화 한 것이 신또르다. 아무리 지친 몸이라도 신또르 한 잔만 마시면 금세 갈증이 가시고 생기가 돈다고 해서 베트남 사람들은 신또르를 무척이나 즐긴다.

경인일보

제보안내

경인일보는 독자 여러분의 소중한 제보를 기다립니다. 제보자 신분은 경인일보 보도 준칙에 의해 철저히 보호되며, 제공하신 개인정보는 취재를 위해서만 사용됩니다. 제보 방법은 홈페이지 외에도 이메일 및 카카오톡을 통해 제보할 수 있습니다.

- 이메일 문의 : jebo@kyeongin.com
- 카카오톡 ID : @경인일보

개인정보의 수집 및 이용에 대한 안내

  • 수집항목 : 회사명, 이름, 전화번호, 이메일
  • 수집목적 : 본인확인, 접수 및 결과 회신
  • 이용기간 : 원칙적으로 개인정보 수집 및 이용목적이 달성된 후에 해당정보를 지체없이 파기합니다.

기사제보

개인정보 보호를 위해 익명 제보가 가능합니다.
단, 추가 취재가 필요한 제보자는 연락처를 정확히 입력해주시기 바랍니다.

*최대 용량 10MB
새로고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