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백시종 그림 박성현

대결 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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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준호는 귀를 의심한다. 오카모토 가스미라니… 박준호에게 20만 불을 남기고 죽은 시루코의 전 남편. 세상에 이럴 수가… 원수는 반드시 외나무 다리에서 다시 만난다더니, 결국 이렇게 마주치는구나.



갑자기 허벅지 부근이 찌릿해진다. 10년 전 샘프튼 둑밑에서 칼에 맞았던 상처 자국이다. 페니스를 잘라 가겠노라고 서슬이 퍼렇던 집시 불량배들의 말대로 아슬아슬 칼끝이 그곳을 싹둑 자를 뻔했었다. 공포탄을 탕탕 쏘아 대던 목장 주인이 급히 자동차를 몰고 나왔으니 망정이지, 까닥 잘못 했으면 불귀의 객이 됐을지도 모르는 위기의 순간이다. 순간, 피가 분수처럼 솟구쳤는데, 그것은 칼끝이 동맥을 잘랐기 때문이다. 아니, 동맥뿐 아니다. 말이 씨 된다는 얘기가 어쩌면 그렇게 맞아떨어질 수 있을까. '페니스를 잘라 가겠어!'라고 큰소리치던 그대로 허벅지에 꽂힌 칼 날이 하필이면 박준호의 주요 부위를 스치고 지나 갔는데, 그곳에서 피가 멎지 않고 흘러 나온다. 상처는 별거 아닌 것 같은데도, 피의 양은 다른 곳보다 유별나게 많다. 얼마나 예민한 부위이기에 허벅지 쪽 피보다 더 많고, 더 붉어 보이는 것일까. 기실 자동차 안에서 박준호를 끌어안고 있던 톰 라더 부인도 안절부절못한다. 물론 페니스에서 흐르는 피 때문이다.

"이걸 어쩌지! 이걸 어쩌지!"

그녀는 지혈이라도 시킬 것처럼 손으로 페니스를 움켜쥐고,

"이건 말도 안 돼! 절대로 이럴 순 없어!"

계속 안달복달이다. 그녀가 소리친다.

"빨리 좀 몰아요! 이러다가 병신 만들겠어요!"

집시 불량배의 가증스런 폭력에서 구해 준 것도 오감할 판에 자동차 시트를 완전히 버리면서까지 최선을 다하는 목장주인에게 "신호 같은 건 무시하고 달리라니까요! 그냥 막 달려요!" 되레 신경질이다.

톰라더 부인은 허벅지보다 오로지 그 부위에만 신경이 집중되어 있다. 흐르는 피가 그녀 흰 손을 붉게 물들여도 아랑곳없이 "이건 말도 안 돼! 절대로 이럴 순 없어!" 혼자 안달복달을 계속하는 것이었다. 박준호가 오카모토 쪽을 본다. 생각보다는 인상이 부드럽다. 일본 제국을 위해서는 그 어떤 희생도 마다하지 않는 전형적인 국수주의자라고 해서, 그에 걸맞은 터프한 모습이리라 예상했는데 웬걸 그냥 희멀쑥한 보통 신사일 뿐이다. 언뜻보면 여자보다 더 곱상한 모습이다. 하네코의 얼굴과는 딴판이다. 한데 왜 오카모토의 딸인 하네코가 제 아비를 닮지 않았을까. 지금 박준호는 오카모토 얼굴에서 하네코의 인상 중 어느 한 부분이라도 찾아내기 위해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전혀 아니야."

박준호가 고개를 흔든다. 아무리 기억을 떠올려도 하네코는 오카모토 얼굴 속에 없다. 한마디로 오카모토는 박준호가 그동안 생각했던 터프한 유형의 사내가 아니다.

'하긴 저처럼 유약하고 부드러운 인상이 오히려 더 비정하고 매정할 수 있다고 하지 않던가.'

오카모토는 오랫동안 무하마드 손을 잡고 놓지 않는다. 그렇게 친절하고 적극적일 수가 없다. 외모만으로는 결코 비정한 남자 같지 않다. 더구나 페니스를 잘라 오라는 엽기적인 주문과 관련된 사람 같지 않다. 하나, 그는 분명 그런 지시를 내렸고, 그에 상응한 막대한 현찰을 거침없이 풀었던 터다. 아무렴 사람의 탈을 쓰고 어찌 그처럼 천박하고 무지한, 말 그대로 엽기적인 발상을 할 수 있단 말인가.

'나쁜 자식!'

박준호는 입술을 앙다문다.

"한데, 하노이엔 웬일이십니까?"

무하마드가 묻는다.

"베트남 일본 대사로 부임하기 위해 3일 전에 도착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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