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사와 골동품이야기·16] 김동현과 고구려반가상 >1<

일꾼 손에 들려온 흙덮인 불상하나 한눈에 가치 알아보고 거금에 매입

경인일보

발행일 2007-03-06 제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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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김동현과 고구려반가상 <1>

세상에는 별의별 사람이 다 있다. 세상을 손아귀에 쥐고 흔들어대는 정치가로부터 재물을 모으는데 온 정성을 바치는 재력가등등. 그런 가운데 세상이 알아주지 않아도 자기 신념속에 무언가 보람있는 일을 묵묵히 해내는 필부필부들까지. 이번에 소개하는 김동현은 아마도 그런 지극히 평범한 소시민 부류에 속하면서 그 누구도 해내기 힘든 애국적인 일을 해낸 인물이 아닌가 싶다.

김동현 이름 석자를 기억하는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다. 그러나 골동계에서는 그가 매우 고집이 세고 특이한 성격의 소유자였다는 사실이 지금도 입소문으로 전해져 내려온다. 김동현은 눈이 매우 밝은 금속유물 전문가로, 우리나라에 유일한 고구려반가상을 지켜낸 인물이라는 점에서 그는 예사 사람들과 크게 다른 점이 있다.

문제의 이 고구려반가상-국보 제118호로 지정되어 있는 한 뼘 남짓한 크기(높이 17㎝)의 금동불상-은 국내 유일의 삼국시대 반가사유상으로 많은 이의 주목의 대상이 되어 왔다. 이 반가상은 원래 평양에서 출토되었다고 알려져 왔는데, 이 불상을 대뜸 알아보고 평생을 바쳐 그 학술적, 골동품적 중요성과 가치를 살리기 위해 한몸 바쳐 지켜온 이가 바로 김동현이다. 몸을 던져 이 불상을 지켜냈다고 말하는 것이 올바른 표현이 될 정도로 이 불상에 대한 김동현의 집념은 상상을 초월했다.

그 의미나 중요성을 모르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주머니에 달랑 들어가는 한뼘 남짓한 크기의 불상이 무슨 대수며 어떤 굉장한 의미가 있겠느냐고 반문할 만하다. 사실 우리나라 문화재들이 우연히 발견되어 무지나 무관심 때문에 사라져가는 경우가 너무 많아서, 이처럼 한 물건을 평생을 바쳐 지킨다는 사실은 그 자체가 아름다운 미담이자 뉴스거리이다.

1940년의 어느날 평양 남선동에 화천당이라는 골동가게를 내고 있던 김동현에게 인부 차림의 한국인이 보자기에 기와와 벽돌을 싸가지고 나타났다. 고구려시대로 추정되는 기와에 명문이 있는 것도 있었다. 그 사람은 평양 외곽 평천리에 있는 일본 병기창에서 일하던 인부였다. 그는 막걸리값 정도를 기대하고 화천당을 찾은 길이었다. 김동현은 그에게 월급의 10배가 넘는 200원을 쥐어 주었다. 깜짝 놀라며 자리를 떴던 그가 며칠뒤에 손에 무언가를 들고 다시 나타났다. 인사치레로 들고온 것은 놀랍게도 흙으로 뒤덮인 고구려불상이었다.

김동현은 너무도 놀란 나머지 그에게 당시 기와집 세채값인 거금 6천원을 넘겨주고 입조심을 당부했다. 당시는 일제가 눈이 뒤집혀서 평양지구를 훑을 때라서 여차하면 그대로 뺏길까봐 걱정이 되었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어느날 일본인들이 김동현의 가게에 들이닥쳤다. 그들이 다그쳐도 김동현은 꿈쩍도 하지 않고 버텼다. 왜냐 하면 그 불상이 어떤 급수의 것인지에 대한 확신이 섰고, 그리 하여 훗날 국보로 지정되기에 이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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