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사와 골동품 이야기'·17]정면관위주 벗어난 입체적 아름다움 눈매·꽉다문 입 고구려 남성미 물씬

경인일보

발행일 2007-03-13 제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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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김동현과 고구려반가상 >2<

불상은 기독교의 예수상이나 십자가와 마찬가지로 종교적인 상징물이다. 불상 자체야 재료로 보나 조형적인 외관으로 보나 사람들이 어떻게 보고 그것을 받드느냐에 그 가치가 크게 좌우된다. 불상은 불교의 상징이기 때문에 불상에는 석가모니를 비롯한 예배 대상이 가지는 의미가 표현되어 있다. 혹자는 불교가 우상숭배를 하고 있다 하지만, 만약 그렇게만 본다면 이 세상 어느 종교치고 우상숭배로부터 자유로울 수가 없다.

불상은 보통 금빛으로 표현되는데, 금빛은 바로 부처가 진리를 깨우친 상태를 나타내고자 한 것이다. 가장 좋기로는 순금을 쓰지만, 금값이 비싸고 금이 귀하기 때문에 보통 도금을 이용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금동불상이 많이 만들어지게 되었다. 금동불상은 구리나 청동 혹은 철불의 표면을 도금한 것을 일컫는 용어다. 이 고구려 불상은 청동에 도금처리된 불상이다.

불상에는 여러가지 자세가 있는데, 그것은 부처의 역할을 이야기해 준다. 부처가 득도를 했는지, 깨우치고 나서 설법을 하는지, 중생을 병마에서 구해내려고 하는지, 참선을 통해서 깊은 명상의 세계로 가고 있는지를 불상의 자세가 이야기해 주고 있는 것이다. 이 불상은 반가사유상의 형태를 하고 있는데, 미래에 부처가 되기로 되어 있는 미륵보살이 연화대좌위에 앉아 오른발을 왼무릎에 걸치고 그 위로 손을 턱에 고인채 중생의 괴로움을 벗겨주기 위해 고민하는 모습을 표현하고 있다. 한국판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이다.

고구려는 삼국 중에서 제일 앞서 가는 선진국이었다. 중국의 전진이라는 나라를 통해서 불교를 수입하고, 불교를 국교로 공인하고 수많은 절과 탑을 세우고 불경을 짓고 불상을 만들어 각지에 유포시켰다. 새로운 종교가 들어와 뿌리를 내리기까지에는 수많은 저항과 순교가 요구되고 따라서 정착하는데에 엄청난 희생과 시간이 소요된다. 이 불상은 그러한 당시의 사정을 잘 반영하고 있는 좋은 사례로 소수림왕 2년(AD 372년) 불교가 도입되고도 무려 100년 이상이 지난 5세기말 6세기초에 만들어진 뛰어난 걸작에 속한다.

우리나라의 미술품들이 정면관 위주로 제작되어서 그런지는 몰라도 대체로 입체성을 띠고 있지 못한데 비해, 이 고구려반가상은 전후좌우 어디에서 보아도 중후한 아름다운 자태를 느낄 수 있는 입체 불상이다. 전체의 높이는 7.5㎝에 대좌는 11.5㎝×9.5㎝이다. 연꽃잎이 둘려진 둥그런 의자 위에, 무릎을 걸친 반가의 모습을 한 넓적한 얼굴에는 입술끝을 오무려 가벼운 미소를 머금도록 표현되어 있고, 부리부리한 눈매와 꽉 다문 입에는 고구려 미술의 특징인 남성미가 넘쳐 흐른다. 웃통을 벗은 상반신과 허리 아래를 감싸고 있는 천의 자락과 영락장식은 아름다운 무늬를 창출하고 있다. 다리쪽은 간단한 음각선으로 영어의 U자 모양의 부드러운 주름을 만들어내었고, 의자에는 오메가 모양의 무늬를 이중으로 나타냈다. 머리에는 미륵보살이 즐겨 쓰는 삼산관이 장식되었으나 마모가 많이 되었고, 표면을 장식하고 있는 도금의 색깔은 훌륭하다. 출토 당시부터 오른뺨을 괴던 오른팔의 반이상이 부러진 채로였는데, 일부 불을 먹은 흔적도 보인다. 전체를 하나의 주물로 떠서 제작하였으며, 뒷머리 중간에 광배를 꽂았던 꼭지가 남아 있다. 광배는 원래 따로 제작해 붙였겠지만 현재는 남아있지 않다. 전형적인 반가사유상으로 조형적으로는 상당히 오래된 형식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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