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백시종 그림 박성현
대결 ⑮
더 나중에 알게 된 일이지만 호아도 밀르떼르 출신이다. 밀르떼르 병원에서 간호사로 근무한 이력을 갖고 있다. '아하, 그랬었구나.' 박준호는 고개를 끄덕인다. 그래서 프랑스 말을 그처럼 자유자재로 구사할 수 있었구나. 그래서 처음 만났을 때부터 무릎을 살짝 구부리며 "짜오안"이라고 유럽식 인사를 했었구나.
어쨌거나 호아는 병원 구석구석을 잘 안다. 병원 구석구석뿐 아니다. 수녀복을 입은 병원장과 담당 의사와도 아주 절친한 사이다.
그녀는 일사천리다. 환자가 들어서자마자 수속도 없이 응급실로 직행, 치료를 끝내고 3층 특실로 안내되도록 조처해 버린다.
무하마드는 이튿날 점심 무렵까지 내내 잠만 잔다. 아무리 믿을 만한 안전지대라 해도, 만에 하나 빚어질지 모르는 사태 때문에 박준호는 조봉삼과 고수길을 병실 입구에 배치, 24시간 물샐틈없는 경호를 서게 한다.
그리고 박준호는 호아와 곽칠복을 앞세워 베트남 정부의 아그레망을 기다리는 오카모토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는 데 심혈을 기울인다. 다행히 하노이 일본 대사관에 적을 둔 베트남인이 곽칠복에게 운동을 배운 절친한 사이여서 쉽게 대면하는 기회를 잡는다.
하노이 일본 대사관에 3년째 근무한다는 그의 얘기에 의하면, 박준호가 예측했던 대로 오카모토의 부인은 우찌에가 틀림없다. 정식 이름이 미도리 우찌에다.
성토마스 대학에서 조직 신학을 전공하기 위해, 4년간이나 유학한 터라 영어가 유창한 여자다. 박준호가 처음 브라이튼 여름 별장에서 만났을 때는 분명 시루코 여사에게 충직한 전형적인 일본 여자였는데, 어떻게 해서 오카모토의 부인이 되었을까.
모르긴 해도 영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했으므로 시루코 여사의 개인비서로 채용되었다가 오카모토에게 회유되어 시루코 여사의 비밀스런 사생활을 시시콜콜 유출하는 미묘한 이중첩자 노릇을 계속하지 않았을까. 물론 그 와중에는 시루코 여사에 대한 하네코의 배신도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을 터고….
말이 났으니 얘기지만, 파스타 요리를 먹었던 그날 오후, 시루코 여사가 박준호의 간곡한 요구도 일거에 뿌리치고, 생면부지 사람처럼 홀연히 집을 나간 것도 기실은 우찌에 때문일 터다.
일단 그녀를 만나야 모든 상황을 점검할 수가 있고, 점검이 끝나야 오카모토나 하네코에 대한 처신도 조절할 수 있었을 터다.
물론 그해 여름방학이 끝나고 첫 등교했던 날을 제외하고 박준호는 하네코를 만나 본 적이 없다. 그날도 스쳐가듯 잠시 마주쳤을 뿐이다.
교장실 복도다. 아니, 박준호가 교장실 앞에서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고 해야 옳다.
"일본에서 언제 왔니?"
박준호가 묻는다.
"일주일 전에 왔어."
"엄마두 같이 왔니?"
"엄마에 대해서는 묻지 마! 넌 그런 예의도 없니?"
"하네코 네가 뭐라구 해도 좋아. 솔직히 난 그분이 궁금하거든."
"미쳤구나!"
"너희 집에 전화했더니, 우찌에가 받더라. 왜 우찌에가 너희 집에 있니?"
"그건, 우리 집 사정이니까, 준호 네가 알 거 없고…."
"네가 괜찮다면, 집에 한 번 방문하고 싶은데, 허락할 수 있니?"
"우리 벌써 이사했어."
"뭐? 이살했다구?"
대결 ⑮
어쨌거나 호아는 병원 구석구석을 잘 안다. 병원 구석구석뿐 아니다. 수녀복을 입은 병원장과 담당 의사와도 아주 절친한 사이다.
그녀는 일사천리다. 환자가 들어서자마자 수속도 없이 응급실로 직행, 치료를 끝내고 3층 특실로 안내되도록 조처해 버린다.
무하마드는 이튿날 점심 무렵까지 내내 잠만 잔다. 아무리 믿을 만한 안전지대라 해도, 만에 하나 빚어질지 모르는 사태 때문에 박준호는 조봉삼과 고수길을 병실 입구에 배치, 24시간 물샐틈없는 경호를 서게 한다.
그리고 박준호는 호아와 곽칠복을 앞세워 베트남 정부의 아그레망을 기다리는 오카모토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는 데 심혈을 기울인다. 다행히 하노이 일본 대사관에 적을 둔 베트남인이 곽칠복에게 운동을 배운 절친한 사이여서 쉽게 대면하는 기회를 잡는다.
하노이 일본 대사관에 3년째 근무한다는 그의 얘기에 의하면, 박준호가 예측했던 대로 오카모토의 부인은 우찌에가 틀림없다. 정식 이름이 미도리 우찌에다.
성토마스 대학에서 조직 신학을 전공하기 위해, 4년간이나 유학한 터라 영어가 유창한 여자다. 박준호가 처음 브라이튼 여름 별장에서 만났을 때는 분명 시루코 여사에게 충직한 전형적인 일본 여자였는데, 어떻게 해서 오카모토의 부인이 되었을까.
모르긴 해도 영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했으므로 시루코 여사의 개인비서로 채용되었다가 오카모토에게 회유되어 시루코 여사의 비밀스런 사생활을 시시콜콜 유출하는 미묘한 이중첩자 노릇을 계속하지 않았을까. 물론 그 와중에는 시루코 여사에 대한 하네코의 배신도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을 터고….
말이 났으니 얘기지만, 파스타 요리를 먹었던 그날 오후, 시루코 여사가 박준호의 간곡한 요구도 일거에 뿌리치고, 생면부지 사람처럼 홀연히 집을 나간 것도 기실은 우찌에 때문일 터다.
일단 그녀를 만나야 모든 상황을 점검할 수가 있고, 점검이 끝나야 오카모토나 하네코에 대한 처신도 조절할 수 있었을 터다.
물론 그해 여름방학이 끝나고 첫 등교했던 날을 제외하고 박준호는 하네코를 만나 본 적이 없다. 그날도 스쳐가듯 잠시 마주쳤을 뿐이다.
교장실 복도다. 아니, 박준호가 교장실 앞에서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고 해야 옳다.
"일본에서 언제 왔니?"
박준호가 묻는다.
"일주일 전에 왔어."
"엄마두 같이 왔니?"
"엄마에 대해서는 묻지 마! 넌 그런 예의도 없니?"
"하네코 네가 뭐라구 해도 좋아. 솔직히 난 그분이 궁금하거든."
"미쳤구나!"
"너희 집에 전화했더니, 우찌에가 받더라. 왜 우찌에가 너희 집에 있니?"
"그건, 우리 집 사정이니까, 준호 네가 알 거 없고…."
"네가 괜찮다면, 집에 한 번 방문하고 싶은데, 허락할 수 있니?"
"우리 벌써 이사했어."
"뭐? 이살했다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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