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사와 골동품 이야기·18]김동현과 고구려반가상 >3<

전쟁·가난도 못꺾은 곧은 절개 팔순 지나서야 호암미술관 양도

경인일보

발행일 2007-03-22 제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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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현은 이 반가상을 자기 목숨보다 더 아꼈다. 뿐만 아니라 이 불상에 대한 남다른 자부심이 있었기 때문에 누가 얘기해도 돈으로 바꾸려 하지 않았다. 소문이 많이 났던 탓인지 한번은 금속 유물의 대수장가로 알려진 대구에 있던 오구라가 평양으로 그를 찾아왔다. 오구라는 이 불상을 가질 욕심에 당시 기와집 250채 값에 해당하는 50만원에 사고자했으나 김동현은 들은체도 하지 않았다. 심지어는 그가 수집한 금속 유물 모두와 이 불상을 맞바꾸자는 제의를 했다는 이야기까지 전할 정도로 욕심을 냈지만, 김동현은 그가 일본인이기도 해서 대꾸도 않고 버텨서 그를 포기하도록 했다고 한다.

그런 가운데 해방이 되고 북한에 공산 정권이 들어서자 김동현은 월남하게 되었는데, 이 불상과 국보 제85호로 지정되어 있는 고구려삼존불상 등 몇 점의 골동품만을 품안에 넣고 도망나왔다. 그리고 6·25가 터지자 단신으로 부산까지 피란을 가서 부두 노동자 일을 하면서도 이 불상만은 끝끝내 팔지 않았다. 1960년대 중반 골동계에 잘 알려져 있던 이병각(이병철의 형)이 이 불상을 탐내어 여러 차례 양도를 요구해 왔다. 그 당시는 김동현도 극도로 생활에 쪼들리고 있었고, 심지어 밥과 맨 간장만으로 끼니를 때우기까지 했던터라 웬만하면 팔아서 큰 돈을 마련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는 이 고구려반가상만은 임자가 따로 있다고 생각하고 팔아넘기거나 하지 않고, 비싼 돈을 물어가며 은행 금고에 보관하고 있었다.

세월을 이기는 사람은 없는가 보다. 그 누구도 꺾지 못했던 김동현 고집의 끝은 의외로 자신으로부터 나왔다. 1970년대 후반의 일이다. 김동현은 맹장수술을 받고 이어 피를 토하며 쓰러지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아마 오랜 세월 제대로 먹지 못하고 마음 고생하느라 속이 곪아터진 모양이다. 건강에 자신을 잃은 그는 누구보다 수백여점의 금속 유물들, 특히 고구려반가상과 고구려삼존불의 거취가 걱정이 되었다.

그때 마침 호암미술관에서 근무하던 필자가 우연한 기회에 김동현을 만나게 되었다. 그는 돈에는 욕심이 없어 보였다. 오로지 고구려반가상의 가치를 제대로 알아줄 곳이 필요했다. 80년대 초반 그는 가지고 있던 대부분의 금속 유물들을 호암미술관에 양도했다. 그런데 고구려반가상을 비롯한 몇점만은 내놓지 않은 채였다. 팔십을 넘기고 자식도 없이 늙은 아내만을 두고 있던 그로서는 믿을만한 상대가 필요하였고, 마침내 1990년대 초반에 삼성그룹의 이건희 회장에게 이 명품 반가상과 몇점의 마지막 유물들을 인계하고 마음을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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