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밭위의 식사<313>

경인일보

발행일 2007-03-23 제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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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 백시종 그림 박성현

대결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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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쎄요. 자세한 건 알 수 없지만, 아무튼 매스컴이 냄새를 맡고 대서특필하는 바람에 회사가 시끄러운 모양입니다. 무엇보다 충격을 많이 받은 쪽이 김상도 회장이고, 그 만큼 신경이 예민해 있다는 겁니다. 이상룡 전무 말은 그 일이 잠잠해진 뒤라야 결재를 올려도 올릴 수 있다는 얘깁니다."

"그럼 이삼 일 사이에는 안 되겠구만."

"그렇습니다, 형님."

"그렇다면 말이야. 영등포 우리 체육관 있지? 그거 사겠다고 압력 넣었던 회사 있었잖아?"

"아니, 그걸 파시게요?"

"팔아야지."

"형님, 설마 체육관 처분해서 동방실업 부도 막겠다는 얘긴 아니겠죠?"

"맞아. 바로 그거야."

"그건 안 됩니다. 형님!"

"내 말대로 해. 큰 일을 위해서는 작은 것을 희생시킬 수밖에 없어."

"그보다 지리산 야생 녹차농장을 처분하면 어떻습니까? 실제로 외국인 회사들이 눈독을 들이고 있잖습니까? 내놓기만 하면… 눈 깜짝할 사이에… 제가 왜 이런 말씀 드리느냐 하면 영등포 빌딩은 일 년만 더 묵히면 두 배 이상 값이 뛸 공산이 크기 때문입니다. 형님, 그 차액이 얼만 줄 아십니까? 자그마치 50억입니다, 50억. 50억이 누구 애 이름입니까?"

"이것 봐!"

박준호가 더 듣고 있을 이유가 없다는 듯 단칼에 잘라버린다.

"내가 시키는 대로 해! 지리산 농장은 내 소유가 아니니까."

"아니,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형님 이름으로 등기가 되어 있는데?"

"글쎄, 내가 그렇다면 그런 줄 알아!"

박준호의 목소리는 준엄하다. 빈틈이 없다. 고수길도 뭔가 더 주장하려다가 스스로 자제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박준호가 혼자 되뇌이고 있다. 겉보기엔 내 이름이지만, 실제 안속은 박명한이라구. 박명한이 누군지 알아? 우리 할아버지. 지리산 야생녹차 밭에는 할아버지 혼이 살아서 새처럼 날고 있어. 아니, 아버지도, 어머니도 거기 다 모여 있어. 그분들을 누가 컨트롤하는 줄 알아? 남편이 버젓이 살아있는 데도 끊임없이 누군가를 연모하는 분이 누님이란 말이야. 아름답고 씩씩한 분이… 알겠어! 박준호가 단호하게 명령한다.

"큰 일을 위해서 영등포 빌딩은 과감히 포기하자구. 미련을 버려! 가능한 한 빨리 처분해. 오늘 내일 사이에 말이야. 이번 사법 고시에 합격한 내 친구, 한태훈이를 시키자구. 태훈이한테 지금 전화 걸어서 부탁해 놓을 테니까, 그쪽하고 만나게 해 줘. 알겠어?"

박준호는 내친김에 한태훈에게 전화를 시도한다. 다행스럽게 한태훈은 아직 출근 전이다.

"나야, 준호."

"야, 너 지금 어딨어? 어디서 전화하는 거야?"

한태훈도 어지간히 반가운 모양이다.

"하노이야."

"하노이라니?"

"베트남 하노이."

"아, 그래서 그렇게 연락이 안 되었구나. 그래, 언제 귀국하니?"

한태훈은 박준호의 긴급한 출국 사유를 모른다. 물론 노조원 생매장과 관련한 살인 혐의를 받고 있다는 사실도 마찬가지다.

"글쎄, …귀국은 아직 미정이야. 그건 그렇고, 너 사법 연수원 졸업 했다며?"

"응, 서울로 발령 받았어. 서울 지검 강력부."

"강력부 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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