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밭위의식사<314>

경인일보

발행일 2007-03-26 제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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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 백시종 그림 박성현

대결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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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그렇게 됐어."

"야, 너 실력 좋구나."

"실력은 뭐…."

"어쨌든 축하한다. 정말."

"다아 준호 네 덕택인 줄 알고 있다. 솔직히 너 아니었으면, 나 이 직업 포기할 뻔했잖니. 나 절대로 그거 잊지 않을 거다."

"쓸데없는 소리. 원래 국록 먹는 사람, 사사로운 것에 신경 쓰지 않는 법이야."

"그래, 고맙다."

"태훈아."

"그래, 말해 봐."

"너한테 부탁이 하나 있어. 그게 뭐냐면, 우리 직원이 자료를 보낼 거야. 자료대로 돈을 전달받아서, 동방실업이라는 회사에 전해 주는 일이야. 얘기만 들으면 복잡하지만, 사실은 복잡할 거 하나도 없어."

"하지만, 어디서 얼마를 어떻게 받아서 동방실업에 전해야 하는지…."

"그거는 자료에 다 써 있을 거야. 다만 동방실업에 돈을 건넬 때 주식 인수계약서를 받아 두면 좋겠어. 주식은 현 거래 시가대로 계산해서 말이야."

"알았어. 그렇게 할게."

"고맙다. 태훈아."

"고맙긴, 야, 누구 엄명인데 감히…."

"자식, 검사되더니, 철들었구나."

"철든 게 아니고… 이건 정확히 아부다!"

"아부라니?"

"준호 네가 하느님처럼 모시는 분 말이야. 그 어른이 대통령 자리에 올라 계시잖니? 소문 들으니까, 이번 인사에 그동안 힘써 준 측근 인사들을 대거 기용한다더구나. 그렇게 되면 박준호 네 신분에도 변화가 있지 않겠어?"

"아서, 난 그런데 관심없어."

"야, 그게 어디 관심없다고 피할 수 있는 일이냐? 각하께서 부르면 그냥 네, 하고 나갈 뿐이지."

"어쨌든 나하고는 무관한 일이라구. 그리고 각하 주변에 워낙 인물들도 많고… 원래 인사는… 뚜껑을 열어 봐야 되는 거 아니니?"

"이번에는 달라. 야, 너 그 어른 덕분에 출세하면 나 모른 체 하지 마라."

"나 같은 사람이 무슨…."

"너야말로 일등공신이지. 준호 너 그 어른 때문에 감옥에도 갔잖니? 아니, 어디 감옥뿐이냐? 후원금은 또 얼마나 많이 냈어?"

"그건, 후원금이 아니고, 노근리 양민학살사건규명기금이야."

어쨌든 박준호는 기분이 좋다. 정말 출세라도 한 기분이다.

서승돈 왈, 통킹만 가스개발권만 획득한다면, 경제장관 두 자리는 확보한 상태라고 하지 않았던가.

'그래, 이제 비로소 세상같은 세상이 오는 거라구. 노근리도, 연좌제도 없어지는 세상….'

박준호는 수화기를 놓자마자 서승돈 방으로 냅다 달린다. 문을 벌컥 연다.

"사장님, 그만 일어나시죠. 대낮입니다, 대낮!"

소리쳤는데도 옴짝하지 않는다.

"사장님!"

숫제 그를 흔들어 깨운다. 그래도 반응이 없다.

"어, 어."

얼굴이 하얗다 못해 푸른 기가 돈다. 눈동자를 깐다. 벌써 휘휘 풀리고 있다. 심상치 않다. 손발이 차다. 의식불명이다. 가슴을 풀어 헤치고 숨 소리를 듣는다.

다행스럽게 아직 심장은 가동중이다. 미미한 가동이다.

박준호는 침착하다. 밖으로 튀어나오자마자 소리친다.

"앰뷸런스를 불러. 빨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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