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밭위의 식사 <318>

경인일보

발행일 2007-03-30 제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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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 백시종 그림 박성현

승마하기 좋은 날 ④

   
 
   
 
손사래를 치는 그녀 얼굴은 금세 홍당무다. 정말, 모르고 있었던 것 같다. 살결이 뽀얀 우윳빛이라서 그럴까. 배경색인 검정 원피스에 흰 살결이 유난히 돋보인다. 아니, 두 볼이 사과빛으로 물드는 모습이, 르누아르의 만년작인 '탬버린을 가진 무용수'의 분홍볼처럼 그윽하기 그지 없다.

놀랍게도 그녀의 직업은 의사다. 그것도 신경과 전문의다. 물론 프랑스 남부 마르세유 출신이다. 이름이 쟈크린느다.

지금 나이 마흔일곱. 마흔다섯살까지 3번 결혼했고, 마지막 남편이 1년 전에 교통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남편의 직업은 카레이서. 남편이 마의 코스인 알제리 사막에서 엔진 폭발로 산화하고 나서, 그녀는 1년간 검은 상복을 벗은 적이 없다. 알제리 사막에 남편을 묻자마자 그녀는 오래 전에 사양했던 베트남 정부 초청을 수락, 부랴부랴 하노이로 거처를 옮기고 두문불출하며 병원 일에만 전념해 왔던 터다.

그녀의 하노이와의 인연은 베트남 국가평의회의장의 파리 망명 시절 가진 친분탓이다. 더 정확히 설명하자면 우연한 기회에 그를 치료해 준 일이 빌미가 되었다고 해야 옳다. 어쨌든 그녀는 세상과 의절한 종교인처럼 고립된 생활을 해 온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일까. 처음부터 조봉삼에게 접근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부끄럽거나, 수줍거나 해서가 아니라, 의도적으로 멀리하는 느낌이다.

'쓰으팔노무 늙은 가수나, 확 찢어 삘끼다!'

조봉삼이 처음부터 저주를 퍼붓는다.

"내꺼 가득 움켜잡고 허공 볼 때는 언제고, 묵사발로 으깨어질 년 구해 놓은께는 머라코? 오르부아르! 다음에 또 만나자코! ……이런 쓰팔노무 경우가 오디 또 있는가 말이야!"

조봉삼이 불같이 투덜거린다. 그렇다. 그는 절대로 슬그머니 물러날 위인이 아니다. 다른 건 몰라도 그 일에 관해서만은 너무나 명확하다. 확실하게 뿌리 뽑아야 직성이 풀린다. 그것이 조봉삼의 근성이다. 생각해 보라. 먼저 잡아 달라고 통사정했던 것도 아니고, 잡히려고 요리조리 포즈를 잡았던 것도 아닌, 제 스스로 불끈 움켜잡지 않았던가.

'헌데, 머시 우쩌고 우째? 그냥 감사합니다. 또 만나요 한마디 허고 돌아서? 니, 그리 나오모, 내도 생각이 다른기라. 확! 그마…….'

그는 지금도 잊지 않고 있다. 조봉삼은 그 야릇한 기억을 더 오래 붙잡고 싶은 충동에 진저리를 친다.

'아, 불끈 움켜잡았던 그녀 손힘이 얼마나 뜨겁고 짜릿했던가.'

"아먼."

조봉삼은 혼자 고개를 끄덕이며 다짐한다.

"내 절대로 가만 안 있을끼다."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것이 무엇인가. 해법이나 공식, 그리고 과정 따위를 무시하고 무지막지 대시하는 추진력. 앞뒤 가리지 않고, 사람 분별하지 않고, 그 다음에 올 후유증 계산하지 않고, 무작정 진격, 또 진격하는 돌격성.

흔히들 그것은 무식이라고 정의한다. 세상 일이 무서운 줄 아는 사람, 두려워 할 줄 아는 사람, 예의에 어긋나는 일은 가능한 피할 줄 아는 사람, 당장의 작은 이익보다 뒤에 올 큰 손해를 미리 계산할 줄 아는 사람…….

그런 상식적인 사람들은 전혀 무서울 것이 없다. 두려워 할 것도 없다. 한데 조봉삼처럼 오로지 한 가지만 알고 아홉 가지는 알려고도 하지 않고, 또 알 필요도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 예컨대 럭비공처럼 언제 어디로 튈지 예측 불허인 사람이야 말로 세상에서 가장 무섭고 두려운 존재일 수밖에 없다. 뭐랄까. 무식이 사람 잡는다기보다, 사람을 잡으려면 반드시 무식해야 된다는 논리라고 할까.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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