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밭위의 식사<319>

경인일보

발행일 2007-04-02 제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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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 백시종 그림 박성현

승마하기 좋은 날 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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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에 보이는 것은 온통 하나뿐이므로, 어느 누구도 말릴 수도 막을 수도 없다. 그야말로 의기양양에 유아독존이다.

기실 조봉삼은 프랑스 말도, 영어도, 베트남 말도 거의 한마디 구사할 수도 알아 들을 수도 없는 수준이다.

쟈크린느 역시 한국말에 대해서는 완벽한 벽창호다.

그렇다면 두 사람은 너무 확연하다. 대화 불통이다. 흡사 선 끊어진 전화기 꼴이다. 서구 세계와 아랍 세계처럼 소통이 안 되는 이른바 문명 충돌의 최일선 현장이나 진배없다.

한마디로 쟈크린느와 조봉삼은 기름과 물처럼 애당초 어울릴 수 없는 사이다. 비록 나이는 한참 연상이라 해도 프랑스 그랑프리자동차경주 파견 공식 닥터로 수십 년 유명 레이서의 인기를 독차지했던 가장 전형적인 프랑스 미인 아닌가.

두문불출을 생활 신조로 삼고 있는 지금이니까 그렇지, 2년 전만 해도 미리 스케줄을 잡아야 만날 수 있는 사람이 바로 쟈크린느였던 터다. 오죽하면 포뮬러 레이스를 3연패한 세계 에이스급 카레이서 주안 마뉴엘 같은 사람도 반년여 쟈크린느를 따라다니며 애걸복걸하여 결혼 승낙을 얻어냈을 정도겠는가.

그런 그녀에 비하면 조봉삼은 그야말로 모기 다리에 워커격이다. 솔직히 말해서 그동안 단련한 태권도, 합기도 따위 무예를 빼면 전혀 내세울 것 없는 시쳇말로 조폭의 조직원에 불과한 남자다.

일반적인 세상 이치로서는 전혀 이뤄질 수 없는 상대다. 한데 막상 뚜껑을 열고 보니 다르다. 하긴 세상사 중에 공식도, 법규도, 이치도, 나이도, 귀천(貴賤)도, 아니 오죽하면 국경조차 없는 유일한 관계가 바로 남녀 간의 사랑이라고 하지 않던가.

얘긴즉슨 이러하다. 코뿔소처럼 씩씩 불고 다니던 조봉삼이 그녀의 집무실을 쳐들어 간 것은 이날 오후 퇴근 무렵이다.

보무도 당당히, 노크도 없이 불쑥 들어선 조봉삼은 발꿈치를 내리찍는 소리와 동시에 빗장을 철컹 걸어 버린다.

그녀가 미처 의식하지 못하게끔 머리를 쓴 조봉삼이다.

그러는 조봉삼을, 쟈크린느가 문득 바라보았는데, 이건 뭐라고 표현할 수가 없다.

쌍불이다. 자동차 헤드라이트다. 불이 벌겋게 붙어 있다.

"웬일이세요?"라고 말해도 조봉삼은 대답하지 않는다.

"미안하지만……."

쟈크린느가 혹 못 알아들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재빨리 프랑스어에서 영어로 바꿔 계속한다.

"지금은 업무중이에요. 반 시간 후에 들러 주실래요?"

그래도 막무가내다.

"이봐요? 무슨 일이냐고 묻잖아요?"

마찮가지다. 그냥 뚜벅뚜벅 걸어 들어올 뿐이다. 조봉삼이 눈으로 말한다.

'아무리 씨부리 봐라. 아니, 괌 질러 봐라. 내가 콧똥이나 뀔 줄 아냐? 내는 지금 니를 묵으로 온기라. 내가 니를 묵기 전에는 절대로 여그서 꼼짝 안 헐끼다. 절대로!'

조봉삼은 주춤거리지 않는다. 머뭇거리지도 않는다. 곧바로 그녀가 앉아 있는 회전의자 쪽으로 책상을 비껴 돌아 들어선다.

쟈크린느 역시 너무 어안이 벙벙한 모양이다. 얼마나 어리벙벙했으면 벌린 입을 닫지 못할 정도일까.

조봉삼이 그녀 앞에 우뚝 선다. 거구의 몸이다.

"왜 이러냐구요?"

쟈크린느가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 서는데, 조봉삼이 그녀의 어깨를 왼손으로 움켜잡는다. 그리고 가볍게 눌러 앉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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