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밭위의 식사<324>

경인일보

발행일 2007-04-09 제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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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 백시종 그림 박성현

승마하기 좋은 날 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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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치의?"

박준호는 또 한 번 놀라마지 않는다. 이번에는 호아가 나서 친절하게 배경 설명을 한다.

"우리 쟈크린느 원장님 아니었으면 보치콩 의장님, 파리에서 개죽음 당하셨을 거예요. 프랑스 망명 시절, 청년 보치콩이 길거리에 쓰러져 있는 것을 길가던 쟈크린느가 병원으로 데려가, 그것도 직접 집도하여 수술을 끝냈어요. 물론 급성 맹장염이었지만,…그대로 방치했으면 죽는거죠 뭐."

"그래서 주치의로 베트남까지 모셔 온 거군요."

호아도 아르므아르 양도 똑같이 고개를 끄덕인다. 순간 박준호는 아, 하늘이 돕는구나라고 혼자 소리치고 있다. 하늘이 저 무식하고 무지막지한 조봉삼을 통해 새 역사를 쓰도록 점지해 주시는구나. 드디어 보치 콩 의장을 움직일 수 있는 결정적인 의인을 만나게 해주는구나. 박준호가 고수길을 봤을 때, 그 역시 반짝이는 섬광이 핑글 돌고 있다. 고수길 또한 머리 회전만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니까.

박준호가 쟈크린느 원장을 대면한 것은 그녀의 집무실이 아닌, 무하마드 입원실이다. 쟈크린느는 급하게 샤워만 끝냈으므로 아직 머리조차 마르지 않은 어정쩡한 모습이다.

게다가 화장도 하지 않은 맨 얼굴이다. 한데도 그녀는 부끄러워하거나 멋쩍어 하는 기색이 아니다. 부끄러워하기는커녕 그렇게 당당할 수가 없다.

더구나 그녀는 조봉삼의 손을 놓지 않고 있다. 무하마드의 회복상태에 관해 세세한 설명을 늘어 놓으면서도 조봉삼의 어깨를 쓰다듬곤 하는 일을 그만두지 않는다.

언제 그런 일을 벌였느냐 오리발을 내놓는다기보다 왜 그것이 부끄러운 일이냐는 항의 같은 태도다.

하긴 박준호도 그것을 모르는 바 아니다. 예컨대 톰 라더 부인이 그러하지 않았는가. 배고플 때 빵을 집듯이 집무실이든, 소파든 끓어 오르는 욕구를 조용히 잠재울 수 있다면 그보다 더 아름답고 행복한 인생이 어디 있느냐는 식이다.

어쨌거나 박준호는 조봉삼을 따로 호출하지 않는다. 그녀가 그 왕성하고 시끄러웠던 작업을 끝내고 원장실 빗장을 풀고 난 뒤부터 조봉삼을 금이야 옥이야 끼고 돌았기 때문이다. 아니, 솔직히 쟈크린느 원장이 보치콩 의장의 주치의만 아니었어도, 박준호가 그만큼 자제력을 보였을 리 만무하다.

봉삼이 녀석을 화장실이나 병원 뒷뜰로 불러 내 헉 소리나게 육체적인 고통을 주었어도 수십 번 주었을 박준호다.

그런 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조봉삼은 아예 박준호를 쳐다보지도 않는다. 슬슬 눈길을 피한다.

'아이고 행님, 봐 주이소. 오랜만에 몸 한 번 풀었다 안 캅니꺼. 행님, 한 번만 눈감아 주이소 그마.'

녀식이 꼬리를 잔뜩 내리고 그렇게 사정하는 듯 눈길을 땅바닥에 박고 있다. 다행스럽게 무하마드의 상태는 아주 좋다. 워낙 건강 상태가 양호한데다, 일찍 손을 썼으므로, 잠에서 깨어나 식사만 제대로 하면 정상인으로 간주해도 좋을 것이라고 쟈크린느가 설명한다. 바로 그때다. 고수길이 병실로 뛰어든다.

"왜 그래?"

"서승돈 사장이 응급실에 도착했다는데요."

"서 사장이 밀르떼르 병원에 왔다구?"

"그렇습니다, 형님."

박준호는 고수길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몸을 날려 응급실을 향한다. 서승돈이 실려 있는 침상 옆에 의사들과 간호사들이 눌러붙어 있다. 한참 그렇게 승강이하던 의사 중 한 사람이 보호자로 망연히 서 있는 윤성식 동방실업 지사장에게 말한다.

"왜 환자를 이렇게 방치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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