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백시종 그림 박성현

승마하기 좋은 날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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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주리는 두서가 없다. 앞뒤가 없는 말을 마구잡이 식으로 쏘아 대고 있다.



윤성식이 박준호를 쳐다본다. 어떻게 대답했으면 좋겠는가를 묻는 눈치 같다. 박준호는 대답 대신 시선을 외면해 버린다. 어떻게 대응하건, 그것은 철저히 윤성식 몫이기 때문에.

"아침에, 사장님은 침대에서 일어나시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병원으로 모시고 온 겁니다."

윤성식이 대답한다. 홍주리가 입을 연다.

"몇 시간 걸리죠? 서울서 하노이까지 말이에요."

"일단 비행기만 타면 대충 다섯 시간입니다. 사모님."

"알았어요. 비행기 예약 스케줄 나오면 전화할게요."

홍주리한테서 전화가 걸려 온 것은 서승돈의 수술이 아직 끝나지 않은 시간이다. 그러니까 한 시간도 채 안 되어 전화를 걸어 준 셈이다.

그녀는 아까처럼 두서없이 마구잡이로 쏴 대지 않는다. 어느새 본연의 자리로 돌아갔는지, 유별나게 격식을 갖춘 목소리로 말한다.

"낼 오후 도착하는 비행기예요. 십삼 시 정각 하노이 공항에 내릴 거예요."

그리고 끝이다. 더 이상 묻지도, 그쪽 사정에 대해 왈가왈부 설명하지도 않는다.

박준호가 예상했던 그대로다.

막힌 동맥을 뚫고 플라스틱 관을 연결했다는 데도 서승돈이 의식에서 깨어나지 못하는 반면, 무하마드는 언제 그런 일을 겪었느냐는 듯, 그 팽팽한 기력을 한껏 자랑해 마지않는다.

박준호가 무하마드의 부름을 받고 부랴부랴 병실로 찾아간 것은 이튿날 이른 아침이다.

박준호에게는 한참 명상에 빠져 있을 시간이다. 하노이에 도착하기 전에도 박준호는 새벽 4시면 정확하게 잠자리에서 일어난다. 그리고 달리기와 '솟구쳐차기'와 '얼렁발질'과 '얼러 메기기' 따위 기본 동작으로 몸을 푼다.

땀 투성이 새벽 몸을 샤워로 씻고 나오면 대개가 여명이 퍼렇게 물들기 시작하는 여섯 시이기 마련이다.

박준호는 명상에 들어간다. 단전호흡이다. 모든 집착으로부터 벗어난다. 대의를 위해 사사로운 욕심은 버린다. 오로지 세속을 이길 수 있는 것은 마음의 자유뿐이다.

마음을 비우면 새처럼 가볍게 날 수 있다. 자유롭게 날 수 있는 새. 허공에서 내려다볼 수 있는 새의 평화로운 눈…….

'위빠사나.'

'위빠사나.'

오늘 아침 박준호가 깊이 깊이 자맥질하는 명상의 끝에 마사요시가 우뚝 서 있다. 호치민 시에서 중국 제일의 무술인을 꺾었다는 일본 가라데 일인자 마사요시.

그에게 전격적으로 도전장을 내민 운명의 대결은 이제 하루밖에 남지 않았다. 내일 오후 2시다.

그를 이겨야 한다. 그를 쓸어뜨려야, 박준호가 우뚝 설 수가 있다. 그것도 많은 구경꾼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마사요시의 항복을 받아 내야 한다.

그렇다. 마사요시의 무릎을 꿇게 하기 위해서는 오로지 위빠사나의 경지에 오르는 수밖에 다른 방도가 없다.

'위빠사나.'

'위빠사나.'

또 있다. 홍주리다. 어쩌면 마사요시나, 베트남 대사로 공식 취임한 오카모토보다 더 두려운 상대가 홍주리인 줄도 모른다. 그녀가 오늘 오후 정각 한 시에 하노이 노이바이 공항에 도착한다.

벌써부터 초조하다. 가슴이 두근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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