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배명희 그림 박성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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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은 번개처럼 지나갔고, 그 다음 일주일은 말처럼 달려갔다. 나는 그동안 아무 것도 하지 못했다. 물론 내 입장에서 한 것이 없다는 말이다. 시누이는 이곳에 온 목적을 이루었다. 서른 평형대의 아파트를 계약하기까지, 그러니까 대략 잡아 열흘 남짓되는 시간에 서울의 요지를 죄다 훑었다.

새벽부터 한 밤중까지 대기모드에 스위치를 고정시켜 두었다. 신호가 떨어지면 나는 즉시 야전 참모장인 시누이를 차에 태우고 현장으로 달렸다. 미래의 보금자리를 점령하기 위해서. 그러나 작전은 변경되기 마련이었다. 목적은 승리였다. 우리는 드디어 고지에 깃발을 꽂았다. 시누이는 고층아파트의 창가에 서서 아래를 굽어보았다. 발치에 한강이 유유히 흘렀고 멀리 빌딩들이 점령지의 백성처럼 조아리고 있었다. 계약금을 치르고 본부로 돌아오자 전쟁의 후유증이 불거졌다.

원고 마감일까지는 불과 이주의 여유밖에 없었다. 스토리를 짜기는 커녕, 독자들에게 전달해야할 지식조차 정리되지 않은 상태였다. 서점에서 사온 책과 도서관에서 빌려다 놓은 자료는 구식 노트북과 함께 책상 위에서 의식을 잃은 상태였다.



학습 만화스토리는 극 만화스토리를 쓰는 것보다는 쉬운 편이다. 과학적으로 증명된 객관적인 지식이 소재이기 때문이다. 극 만화스토리를 쓸때와는 달리 소분규가 대분규를 만들어내고 대분규에서 파생되는 위기와 절정에 이르는 클라이맥스, 그곳에서 모든 사건이 일단 해결되고 감동에 이르는 '험난한 창조'의 길로 가는 것을 크게 의식하지 않아도 좋았다. 험난한 길이 아닌 것이지, 학습만화라고 쉬운 것만은 아니다. 소재가 주어져있다 뿐이지 엄연한 창조행위다.

이런 너절한 설명이 무슨 소용이 닿는가. 나는 입술이 바짝바짝 타들어갔다. 이 주 만에 몸과 우주에 관한 스토리를 만드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몸에 관한 것은 그렇다치고 우주에 관한 책은 아직 펼쳐보지도 못했다.

150억년이나 180억년 전쯤에 빅뱅에서 시작된 우주, 원인도 밝혀지지 않은 큰 폭발로 태어난 우주가 수 억년동안 점점 식어가면서 별이나 은하가 생기기 시작했다. 별이 제 몸을 태우며 타오르고, 제 몸을 다 태우고 나면 다시 폭발하여 우주의 먼지로 돌아가, 그것들이 다시 모이고 뭉쳐져서 또다른 별로 태어나고, 이런 것들을 어떤 식으로 아이들에게 쉽고 재미있게 전달할 수 있을지 머리를 짜내야 하는 것이다. 말하기 부끄럽지만 전달은 커녕 내 자신조차도 우주에 관한 비밀은 채 정리되어있지 않은 상태였다.

게다가 아이들이 흥미있어 하는 부분은, 우주에 관한 과학적 지식보다는 별자리에 얽힌 이야기같은 것이다. 수업시간에 선생님이 삼천포로 빠져 자신이 학창시절에 저지른 비행이나 가출같은 것을 반은 뻥을 쳐가며 들려줄 때 시간가는 줄 모르고 귀 기울이는 것과 같다. 그러니 요령껏 이야기를 버무리는 묘기도 부려야 했다.

큰곰자리 이야기는 그리스 신화에서 나온 것이다. 칼리스토는 아들 아르카스를 낳았는데 이는 제우스신의 자식이었다. 제우스의 아내 헤라는 남편이 바람피워서 낳은 아르카스와 남편의 여자인 칼리스토를 저주했다. 여자라면 누군들 그렇지 않겠는가. 게다가 헤라는 가정의 수호신이다. 헤라의 저주로 칼리스토는 곰이 되었다. 사냥꾼이 된 아르카스가 어느 날 숲에서 곰이 된 자신의 엄마를 창으로 찔러 죽이려 했다. 하늘에서 이를 본 제우스가 당황하여 두 모자를 하늘로 올려 엄마는 큰 곰으로 아들은 작은곰자리로 만들었다.

초등학생용 만화니까 이런 경우 조심해야할 점이 있다. 제우스와 칼리스토의 불륜, 이것을 사랑으로 설득하기는 무리다. 책의 성격상, 그런 것을 요구하는 것도 아니고 말이다. 이럴 경우 헤라가 왜 화가 났는지, 제우스가 왜 특별히 이 두 모자를 구해주었는지에 대한 설득력이 사라진다. 이런 부분에서 비논리적이고 합리적이지 못한 싹이 돋는다고 한다면 지나친 억측일까. 어쨌든 초등학생용 책에 불륜을 그려낼 수는 없다는게 어른들의 입장이다. 이런 식으로 고리가 빠져버린 신화나 이야기나 사건들이 얼마나 많겠는가. 듣고 난 다음 이해가 가지 않아 고개가 갸우뚱 거리는 것들은 앞뒤, 전후, 고금을 연결하는 고리가 빠진 것이라 봐도 크게 틀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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