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그늘
산문/인천시장상- 양 광 현 (청량초 6년 박준영母)
내 고향집에는 커다란 미루나무가 한 그루 있었다. 사립문 옆으로 낮은 울타리 사이에서 저 혼자 높게 자란 미루나무. 아침 햇살이 바람을 만나면 어김없이 이파리들이 은비늘처럼 눈부셨던 나무를 떠올리다 문득 아버지 생각에 가슴이 먹먹해진다. 인생을 살아가다 보면 한번 쯤 환한 시절이 있을 것이다. 내겐 유년시절이 그러하다. 젊은 부모님이 계셨고 토닥토닥 다투던 형제들이 있었던 유년시절. 내 아버지는 농부셨고 아름다운 예술가이기도 하셨다.
마당은 앞마당과 뒷마당으로 구분되어 있었는데 온통 꽃으로 가득찼었다. 자잘자잘 여릿여릿한 채송화가 한 여름 땡볕에도 제 몫을 다하고 계절이 바뀔 때마다 색과 향기를 달리하며 피어났던 꽃밭을 바라보며 아름다운 것이 슬픔으로 다가올 수도 있음을 배웠다.
내 아버지는 어린 자식들을 위해 직접 나무그늘에 그네를 매달아 주셨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마루에 가방을 던져놓고 뒤뜰로 달려가곤 했다. 그네를 타면서 바라 본 하늘은 더 없이 맑았고 부시도록 아름다웠다. 아무리 뜨거운 햇살도 커다란 나무 그늘에 있으면 제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나무는 각각 그늘을 제 몸만큼 정직하게 만들어 낸다. 작은 나무는 작은 나무대로, 큰 나무는 큰 나무대로 말이다. 가지가 많으면 새들은 찾아와 집을 짓고 새로운 생명을 길러낸다. 사람도 마찬가지라 여겨진다. 큰 마음을 품은 사람은 큰 덕을 베풀기 때문이다. 자연을 바라보고 성장한 아이들은 정직함과 성실함을 저절로 배울 것이다. 한 그루 나무를 통해서 얻게 되는 삶의 비밀들을 나이 마흔을 넘기니 조금씩 배울 수 있다.
내 삶 속에 가장 큰 나무는 아버지였다. 아버지 그늘에서 수 십년을 살다 어느 날 문득 깨달은 것 하나! 언제나 큰 나무로 내 곁에 있을 것 같았던 아버지는 아주 작은 어린아이가 돼버렸다. 큰 나무로 큰 그늘을 만들어 주셨던 아버지는 지금 치매를 앓고 계신다. 사랑하던 자식들도 몰라보고 하루 종일 잠만 주무신다. 이젠 자식들의 그늘속에서 편하게 쉬는 고목이 돼버린 것이다. 그러나 자식들의 그늘은 옹졸하다. 끝없는 사랑을 베풀지 못한다. 우리들 어린 시절의 부모님 그늘은 언제나 평화로웠고 넉넉했다. 부모님 두 분의 그늘은 팔 남매가 쉬고도 남았는데 이젠 팔 남매가 한 분 계신 아버지의 그늘이 되어 주지 못한다. 온전한 그늘이 되지 못함을 아프게 인정할 수밖에 없다. 갑자기 아버지가 무척 보고싶어진다. 비록 나를 알아보지 못하지만 당신의 그늘이 있었기에 넉넉하게 자랄 수 있었으니 고마웠노라고, 사랑한다고 손이라도 잡고 말씀드리고 싶다.
그러나 그 눈을 바라보면 너무나도 고통스럽다. 아무런 욕심도 욕망도 없는 순진무구한 아버지의 눈빛은 나를 미치도록 슬프게 만든다. 이제 내가 큰 나무가 되어 내 아이에게 그늘을 만들어 줄 차례가 되었다. 나에게 깃들일 사람들에게 나무처럼 정직하고 편안한 쉼터가 될 수 있도록 늘 부지런하게 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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