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배명희 그림 박성현


334766_43719_856

출판 기념식장은 한강변의 선상 레스토랑이었다. 고래 사냥이라는 레스토랑의 상호가 저물어가는 수면 위에 떠서 희미하게 빛나기 시작했다. 수면을 가로지르는 다리를 지나 선상 레스토랑으로 들어갔다. 파티가 시작된 지 한 시간이나 지난 터라 분위기가 무르익어 있었다. 뷔페식으로 벽을 따라 놓여있는 기다란 테이블 위에 몇 가지 음식이 푸짐하게 차려져 있었다.

술과 음료는 강이 내다보이는 유리창 아래를 따라 놓여있었다. 예상외로 참석한 사람들이 많았다. 포도주 잔을 든 사람들이 서너 명씩 모여서 있었다. 선배는 양복을 입고 출구 가까운 곳에 있었다. 평소에 주로 청바지를 입고 다니던 정신희도 치마를 입은 정장 차림이었다. 아는 사람이라고는 그들 둘밖에 없었다. 전병헌은 물론이고 미서와 나머지 스터디 멤버들이 와 있을 터였다. 레스토랑은 앞쪽에 작은 무대가 있었다. 이따금 주말 저녁 같은 시간에 가수가 나와 라이브로 노래를 하는 모양이었다. 장소는 그다지 넓지 않았다. 그러니 마음만 먹으면 금방 누구라도 찾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미끄러지듯 안으로 스며들었다. 이럴 때 미서가 공중에서 떨어지듯 나타나면 좋으련만. 음식이 놓여있는 테이블을 지나 주류가 놓여있는 창가 테이블 까지 가는 동안 누구도 눈에 띄지 않았다. 선배의 사무실에서 한 번 본적이 있는 여직원이 아는 척하며 내게 포도주를 따라 주었다. 음료를 서비스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주변을 둘러보았다. 나를 발견한 선배가 다가왔다.



"늦었구나. 저녁은 좀 먹었어?"

"미안해요. 나오는데 갑자기 집에 일이 좀 생겨서요." 새빨간 거짓말이었다. 숨은 작가를 어떻게 소개할 것인지 걱정이 돼서 일부러 미적거렸다. 선배는 나를 데리고 대학생처럼 보이는 여자 앞으로 갔다.

"이번에 나머지 세권의 콘티를 쓴 한규리 작가. 이쪽은 인체와 우주콘티를 맡은 김선영."

선배가 나를 소개하는 말을 듣자 비로소 파티의 일원이 된 기분이었다. 책에 찍은 이름과는 상관없이 선배는 나를 작가로 소개하고 있었다. 내 앞에 선 여자를 살펴 볼 여유가 생겼다. 요즘 애라고 해도 좋을 만치 발랄해보였다.

"글 쓰느라 고생 많으셨죠?"

한규리는 귀엽게 웃었다.

"이쪽은 대학 졸업하기도 전에 만화 시나리오 공모에서 대상을 탔어. 엄청 화려하게 데뷔했지."

이미 술이 꽤 오른 선배가 장난스럽게 말을 이었다.

"실력은 별로였는데 십년 대운이 시작되는 해였어요. 초짜인 제게 선생님께서 일을 맡기신 것만 봐도 알 수 있죠."

대학을 졸업하기도 전에 공모전에서 대상을 탔다면 분명히 재능이 있을 터였다. 얼굴은 작고 체형은 기다란 서양 인형처럼 생긴 외모와 달리 성격은 툭 터져보였다. 미서와 비슷한 느낌이 들었다. 재능 있는 사람들은 일정한 특징이 있는 걸까. 한규리를 보고 있으니 엉뚱한 생각이 떠올랐다. 한규리 역시 이미 포도주를 상당히 마신 것 같았다. 작가니까 오늘의 주인공이다. 이곳저곳에서 술잔을 받았을 것이다.

"어제 책을 받아 읽었는데 글이 참 좋았어요."

한규리가 내 글에 대해 의견을 말하려는데 사람들을 헤치고 미서와 전병헌이 나타났다. 나도 모르게 한 발 뒤로 물러섰다. 어디론가 숨고 싶었다. 오기 전부터 전병헌을 보면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스러웠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자연스럽게 대응을 하는 수밖에 없겠다고 생각을 하고 있었다. 정작 당사자가 나타나자 갑자기 심장이 쿵쿵 뛰기 시작했다. 얼굴이 확 달아올라서 나는 얼른 포도주를 쭉 들이켰다. 몹시 목마른 여행객처럼 숨도 쉬지 않고 반 너머 들어있던 술을 물처럼 마셔버렸다.



경인일보

제보안내

경인일보는 독자 여러분의 소중한 제보를 기다립니다. 제보자 신분은 경인일보 보도 준칙에 의해 철저히 보호되며, 제공하신 개인정보는 취재를 위해서만 사용됩니다. 제보 방법은 홈페이지 외에도 이메일 및 카카오톡을 통해 제보할 수 있습니다.

- 이메일 문의 : jebo@kyeongin.com
- 카카오톡 ID : @경인일보

개인정보의 수집 및 이용에 대한 안내

  • 수집항목 : 회사명, 이름, 전화번호, 이메일
  • 수집목적 : 본인확인, 접수 및 결과 회신
  • 이용기간 : 원칙적으로 개인정보 수집 및 이용목적이 달성된 후에 해당정보를 지체없이 파기합니다.

기사제보

개인정보 보호를 위해 익명 제보가 가능합니다.
단, 추가 취재가 필요한 제보자는 연락처를 정확히 입력해주시기 바랍니다.

*최대 용량 10MB
새로고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