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배명희 그림 박성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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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라진 바위틈에 손을 밀어 넣은 다음 주먹을 움켜쥐었다. 주먹을 쥔 손이 좁은 바위틈에 걸려 빠져나오지 않았다. 손등에 바위가 맞물려도 아프지 않았다. 손이 빠져버리면 바위에서 떨어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컸기 때문이다. 전병헌은 나를 그곳에서 잠시 버티고 있으라고 한 후, 거미처럼 손과 발을 움직여 바위를 타고 올랐다. 머리 바로 위가 바위의 끝이었다. 두어 발짝만 더 오르면 되는 곳이었는데 아래쪽에 비해 경사가 급했다. 전병헌은 잠깐 사이에 바위에 올라섰다. 잠시 후 전병헌은 끝에 둥근 매듭을 만든 줄을 내려주었다.

"손목을 밧줄 매듭에 넣고 당겨요."



그가 시키는 대로 왼손을 넣고 줄을 당겼다. 밧줄은 손목을 조이며 감겼다.

"당길 테니 바위에서 손을 뺀 후, 올라와요."

그가 시키는 대로 나는 손목에 잠긴 줄을 잡고 바위틈에 넣고 몸을 지탱하던 손을 뺀 후, 반동을 이용해 몸을 위로 올렸다. 순간 몸이 아래로 주룩 미끄러졌다. 나도 모르게 비명을 질렀다. 그가 재빨리 내 손목을 낚아채 끌어올렸다. 밭에서 무 뽑히듯 내 몸이 공중으로 쑤욱 올라갔다. 허리가 바위 정상에 걸렸다. 안간힘을 써 바위 위로 올랐다. 안전하다고 생각되는 편편한 곳까지 나는 엉금엉금 기어갔다. 그 사이 전병헌은 밧줄을 풀어 감더니 배낭에 집어넣었다.

온몸에 진이 다 빠진 듯 맥이 풀렸다. 나는 잠시 땅바닥에 뺨을 대고 엎어져 눈을 감았다. 몸뚱이가 마치 쏟아진 묽은 죽처럼 바닥으로 퍼지는 것 같았다. 사지를 헤매다 안전한 곳에 도착한 기분이었다. 검은 구름이 끝없이 펼쳐져있고, 어둠에 둘러싸인 구름위에 몸이 떠 있는 것 같았다. 중력이 없는 진공 속 같았다. 긴장의 끈이 스르르 풀려나갔다.

땅에 붙이고 있는 귓가에 빗방울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얼굴에 자잘한 물방울이 수없이 튀어 올랐다. 눈을 떴다. 전병헌은 바위에 앉아 멀리 아래를 보고 있었다. 몸을 일으켰다. 비안개와 구름 때문에 먼 풍경은 보이지 않았지만 방금 올라온 절벽 아래는 볼 수 있었다. 이 절벽을 기어올랐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았다. 몸을 추슬러 절벽 끝으로 조금 다가갔다. 올라올 때 느꼈던 극심한 공포에 비하면 그다지 위험하게 보이지 않았다. 안전한 장소에 서 있다고 생각하니 마음에 여유가 생긴 탓인지 몰랐다.

"어때요. 올라 온 바위를 보니 뿌듯하죠."

전병헌의 말을 듣자 머릿속에서 작은 전구가 켜져 반짝 빛나는 것 같았다. 해냈다는 기분, 난생처음 무언가 극복했다는 느낌. 바닥에서 한 단계 올라선 것 같은 성취감. 내게 앞으로 어려움이 닥친다면 충분히 헤쳐 나갈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전병헌의 말에 금방 맞장구치기 싫었다. 무언가 고양된 느낌과 함께 공포에 질려 두려워하던 내 모습이 공존하고 있었다. 겁에 질려 바닥을 드러낸 나를 전병헌은 보았다. 적나라한 나의 본질, 나약하고 겁에 질린 나를 날 것으로 보여준 것이 창피했다. 비명을 지르고, 울먹이고, 소리 질러도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도 못하고 공황에 빠져버린 내 자신. 화가 났다. 침착하지 못한 내가 견딜 수 없이 화가 치밀었다.

"이 정도 바위는 아무것도 아니에요. 처음이니까 무섭지, 아마 다음에 한 번 더 오면 우습게 보일 겁니다."

전병헌은 빙긋 웃었다. 아직도 내가 겁에 질려있는 줄 알고 긴장을 풀어주려는 것 같았다. 전병헌의 표정을 보고 나는 깨달았다. 경험이 없는 나는 혼비백산했지만 전병헌은 처음부터 위험하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무엇에 대해서 아는 사람과 모르는 사람, 미리 경험을 해 본 사람과 경험이 없는 사람, 프로와 아마추어, 세상은 그런 사람들로 이루어진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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