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배명희 그림 박성현
매미를 퇴치해 달라고 도시 한복판에 사는 주민들이 구청에 진정을 하는 것을 보면 도심의 매미소리는심각한 모양이었다. 매미는 7년을 땅속에서 기다리다가 허물을 벗고 땅위로 올라온다. 나무에서 열흘 가량 사는 동안 짝짓기를 해서 개체를 퍼뜨려야 한다. 상대방을 유혹하는 수단은 소리다. 나 여기 있어. 이리로 와. 내게로 와 라고 열심히 외친다. 구애의 소리는 자동차의 소음에 묻혀버린다. 날짜는 지나가고 모래시계에서 생명의 모래는 점점 줄어든다. 매미는 점점 더, 도심의 소음보다 더욱 큰 소리를 내야한다.
나 여기 있어. 여기 있다고.
매미는 오토바이의 폭음과 앰뷸런스의 숨 가쁜 소리, 질주하는 자동차의 소음과 세상의 온갖 소리에 맞서야 한다. 악을 쓰면서 자신을 알려야 한다. 귀청이 찢어질 듯 시끄러운 소리는 매미의 존재이유인 것이다. 한가하게 느린 소리로 이따금 울던 시대는 지나가버렸다.
아마 오래지 않아 내 방 창 아래의 나무에 붙어 우는 매미들도 점점 목청이 커질지도 모르겠다. 길 건너 강변 쪽에 새로 생기는 도시 고속화 도로가 완성되어 자동차가 쉴 새 없이 오고가면 말이다. 시내로 오가는 시간이 지금보다 반쯤은 단축될 거라고 주민들은 도로공사를 반기는 분위기다. 공사가 끝나면 지금의 한적한 모습은 더 이상 볼 수 없을 거다. 나는 도로 공사를 못마땅한 시선으로 보았다. 그러나 오늘 아침, 매미소리를 듣다가 문득 생각이 바뀐 것을 깨달았다. 시내를 오가는 시간이 반으로 줄어드는 것이 싫지 않았다. 싫지 않은 게 아니라 빨리 도로가 완성되었으면 싶었다. 매미가 악을 쓸 테고, 새 도로를 달리는 자동차 때문에 조용하던 동네가 들썩거릴게 뻔했다. 그런데도 시내를 오가는 시간이 줄어든다는 것은 내게 분명 희망적이었다.
목표가 있을 때 사람들은 옆을 돌아보지도 않고 달리게 되는 모양이었다. 선배의 출판사에서 나온 책 중에는 느림의 미덕 같은 종류도 있었다. 세상이 빨라지는 것에 대한 방증인 모양이었다. 나는 세상에 속해 함께 흘러가는 유형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이제 비로소 나는 세상의 흐름에 섞여들어 간 것일까. 새로 생기는 도로를 기꺼운 마음으로 바라보게 되는 것만으로 소외에서 벗어났다고 생각해도 되는 것일까. 그게 그리 쉬울까.
창 아래 책상 앞에 앉아 나는 책을 뒤적거렸다. 몇 번째 같은 페이지를 넘겼다 다시 돌아오는 중이다. 내용이 파악되지 않아서다. 내 신경은 온통 거실로 가 있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거실에 놓여있는 전화기에 집중되어있다.
전화벨 소리가 힘차게 울리기를, 나 여기 있어. 라고 외치기를 기다리는 중 이었다. 아무리 작은 소리일지라도 울리기만 한다면 나는 단번에 달려갈 준비가 되어있었다. 정오가 가까워지는 지금까지 나는 세 차례나 주방을 들락거렸다. 모두 석 잔의 커피를 타 마셨다. 주방에 붙어있는 작은 방에서 나와 싱크대 위에 놓인 전기 포트에 물을 붓고 스위치를 올리고 물을 끓였다. 두 스푼의 커피가루를 병에서 덜어 잔에 넣고 물을 붓는 동안 내 귀는 줄곧 거실로 열려있었다. 두 발은 허공에 떠 있는 것 같았다. 잔을 올린 받침접시를 들고 다시 작은 방으로 들어왔다. 모두 세 번 같은 방식으로 물을 끓이고 커피를 타 마셨다.
정오의 해가 다시 비스듬히 이울 때까지 부동산투자를 권유하는 전화 한 통 오지 않았다. 헛되이 이메일의 편지함을 뒤지다가 일어났다. 빠른 걸음으로 방을 나와 거실 한 귀퉁이에 놓여있는 전화기를 들어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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