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배명희 그림 박성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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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화기를 귀에 바싹 갖다 댔다. 방사형으로 퍼져나가는듯한 신호음이 들렸다. 고장은 아니었다. 전화기를 몸체에 올려놓았다가 다시 들어올렸다. 미서의 휴대폰 번호를 눌러보았다. 신호음이 떨어졌고 한참 후, 휴대폰을 꺼두었다는 기계음이 들렸다. 전화가 연결되어도 오래 통화할 생각은 아니었다. 그런데 막상 전화를 꺼두었다는 말을 듣자 버림을 받은듯 조금 외로워졌다. 거실을 서성거렸다.

누군가 마음속을 막대기로 휘젓는 것 같았다. 막대기의 방향에 따라 마음의 물길이 뒤엉켰다. 가슴 속에서는 불이 활활 타오르는데 머릿속은 깊은 물이 소용돌이쳤다. 이럴 땐 미서와 수다라도 떠는게 도움이 될 것 같았다. 몇 번이나 전화를 했지만 연결이 되지 않았다. 아침부터 오후까지 나는 열에 들뜬 사람처럼 집 안을 서성거렸다.



책을 펼치고 음악을 틀고, 샤워도 해보았지만 한 번 헝클어진 생각은 수습이 어려웠다. 아침부터 들락날락하던 컴퓨터 앞에 다시 가 앉았다. 주소창을 치고 들어가 인명 검색에 들어가 전병헌을 입력시켰다.

전병헌이 그동안 펴낸 책들이 주르르 떴다. 만화책이 주종이었고, 미술에 대해 수필 형식으로 쓴 책이 한 권 있었다. 전병헌에 대한 좀더 자세한 사항을 알기 위해 클릭을 했더니 천원을 결제하라는 창이 떴다. 핸드폰이 없어 집 전화번호를 넣었다. 결제가 확인된 후 곧바로 전병헌에 대한 정보가 컴퓨터 창에 나타났다.

생년월일과 출신 학교, 그리고 그가 쓴 책이 전부였다. 그의 가족, 더 정확히 말하자면 그의 아내와 가족관계가 궁금했었다. 천원의 가치는 전병헌에 국한되는 모양이었다. 전병헌의 천원어치의 정보가 떠있는 컴퓨터 창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겉으로 내가 볼 수 있는 전병헌이 아닌 그의 내밀한 풍경이 궁금했다. 어릴 적의 그, 청소년기의 모습, 선배와 나와 미서가 청춘을 함께 보낸 대학시절의 그, 그의 여자들, 그의 아내와 아이. 모든 것이 알고 싶었다. 전병헌의 과거와 연결된 현재, 가능하다면 그의 미래까지 내 머리 속에 정리되었으면 하고 바랐다. 무슨 까닭인지는 나도 알 길이 없었다. 전병헌이 왜 궁금한지, 이토록 알고 싶은지 나도 이유를 알고 싶었다.

다른 주소창을 치고 들어가 전병헌에 대한 검색을 해보았지만 천원어치 정보 이상의 사실은 나오지 않았다. 나는 전병헌의 만화책 몇 권과 그림 감상 책을 인터넷으로 구입했다. 그것만으로도 한결 마음이 안정되었다. 며칠 후, 책이 도착해 읽는다면 그에 대해 좀더 많이 알 수 있을 터이다. 그가 쓴 책을 읽는 것만으로 그가 어떤 생각과 사유방식을 가졌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나는 그가 쓴 책보다 더 가까운 시간에 그를 보았고, 그와 이야기했고 그의 곁에 있었다. 그것이 전병헌이었다. 산을 걷고, 밥도 먹고 술도 마셨다. 사무실 바닥에서 그는 내 몸을 안았다. 그 외 다른 사람이 있다고 나는 생각하고 있는 것일까? 내가 찾는 전병헌은 누구일까. 혹시 그것은 내가 바라는 전병헌이 아닐까. 그와는 전혀 상관없는 내가 만든 이상형. 내가 생각하는 곳에 가 서있어야 하는 전병헌. 미서가 내게 늘 하는 말. 너는 왜 다른 사람이 생각하는 곳에 가 서 있는거야? 라고 하는 것을 그에게 요구하는 걸까?

나를 전병헌에게 투사하고 있는 것이나 아닌지 모르겠다. 가장 위험한 방법으로 나는 전병헌에게 다가가고 있는 것인지도 몰랐다. 내게는 스스로 자신을 냉철하게 바라볼 능력이 없는 것일까. 그런 의문이 생기자 갑자기 위축되었다. 자신 없음. 그런 기미가 감지될 때면 여지없이 나타나는 신호였다. 그가 이렇게 많은 책을 썼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를 자세히 알고자 하는 것이 사랑이라고 믿고 싶었다. 존경이나 경이로움은 사랑과는 다른 차원의 감정이었다. 내가 원하는 것은 의지로는 거부할 수 없는 운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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