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배명희 그림 박성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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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는 음과 양이 자리를 바꾸는 시각에 개막되었다. 늦가을 오후, 사람들이 하나 둘,전시공간으로 들어왔다. 짙은 안개가 낀 것처럼 대기는 불투명했다. 산 중턱에 자리 잡은 동네 주택지가 별처럼 작은 불빛으로 살아났다. 관객은 많지도 적지도 않았다. 이름만 대면 알만한 평론가가 불쑥 나타나는가하면, 인터넷 신문에서 나온 풋풋한 젊은 기자가 카메라를 들이대기도 했다.

아래층 중국집의 '향수와 자장면'은 상당히 흥미를 끌고 있었다. 대부분의 관객이 참여했기 때문에 줄을 서서 기다리기까지 했다. 나는 출입구 부근에 서서 계단을 오르는 발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그렇게 삼십분쯤 온 신경을 모으니 남자인지 여자인지 정도는 구별할 수 있었다. 나는 더 이상 출입구에 가만히 서 있을 수 없었다. 강민기가 미술 평론 잡지 기자와 함께 내게로 다가 왔기 때문이었다. 흰색 면 티 위에 네이비블루의 재킷을 입은 기자는 나와 인터뷰를 하고 싶어 했다.



나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사람들이 작품 앞에서 둘씩 셋씩 둘러서서 낮은 목소리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천장에 매달린 조명이 벽에 걸리거나 바닥의 한 공간을 차지하고 서 있는 작품을 집중적으로 밝히고 있었다. 한 여자가 부스 안에서 찍은 사진을 지하철 노선표의 한 역에 압정으로 막 붙이는 중이었다.

나는 기자를 향해 입술 끝만 올리고 미소를 지었다. 전혀 웃고 싶은 기분이 아니었다. 인터뷰 같은 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작품에 대해 내가 할말은 아무 것도 없었다. 이제는 모두 관객의 몫인 것이다.

"사진은 누가 찍었습니까?"

나는 네이비블루의 재킷을 입은 기자를 쳐다보았다. 기자는 내 말을 기다렸다. 마치 자신의 말에 반드시 대답해야할 의무라도 있는 것 같은 태도였다. 누가 사진을 찍었건 그것이 작품과 무슨 상관이 있는가? 성가시다는 생각이 불쑥 들었다. 나는 가만히 서 있었다. 네이비블루는 끈질기게 답변을 기다렸다. 전시까지 한 마당에 인터뷰에 부정적으로 반응하는 것도 우스운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강민기를 쳐다보았다. 선배가 네이비블루를 창 문 밖으로 던져버렸으면 싶었다. 딱히 기자가 싫은 것은 아니었다. 그냥 모든 것이 우울했다. 작업에 몰두했던 시간들이 공허하게 느껴졌다. 어색한 침묵이 나와 두 사람 사이에 흘러갔다.

"이형수가 찍었어."

강민기가 대답했다. 선배는 여전히 나를 돌봐야 할 후배로 생각하고 있었다. 나는 강민기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몸을 돌렸다. 김상우가 입구에 나타난 것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나는 네이비블루에게 가볍게 고개를 숙인 후, 김상우에게 다가갔다.

"미서는? 함께 온 거 아니에요?"

나는 김상우의 어깨너머로 경사진 계단을 살폈다. 노란 불빛이 텅 빈 계단에 길게 걸려있었다.

"박 작가는 일정이 끝난 후 그대로 남았어요."

김상우가 실내로 들어서며 대답했다.

"그리스에 남았어요? 일정이 언제 끝났어요?"

"팔월 말이었는데. 이 학기 강의 때문에 바빠 연락도 못해봤어요."

팔월 말이라면 두 달이 가까운 시간이다. 지금 날아오는 엽서는 써 두었다가 나중에 보내는 것이란 말인가. 미서는 여전히 여행 중인가? 궁금해 미칠 지경이었다. 핏속에 뭔가 스며들어 몸속을 돌아다니는 기분이었다.

"여행은 어땠어요? 미서는, 건강하게 잘 다니던가요?"

"박 작가 때문에 일행들이 즐거웠죠. 다음에도 함께 여행하자는 사람들이 많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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