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인물 100人·98] 인천언론史

경인일보 제호 변천사

김장훈 기자

발행일 2007-11-28 제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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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60년 대 이래 인천 언론은 질곡의 세월을 보냈다. 서슬퍼런 군사정권과 유신정권의 지역 언론말살 정책에 인천의 신문사들은 제대로 정착하지 못하고 표류하기 일쑤였다.

   1960년 대 인천에는 모두 3개 일간 신문사가 있었다. 1946년 발간된 인천 최초의 일간신문인 경기매일신문(대중일보가 제호를 바꿈)을 비롯해 인천신문(1960년 창간, 현 경인일보), 경인일보(창간 연도 알려진 바 없음, 현 경인일보와 다른 신문) 등이다.

   1962년 박정희 군사정권의 언론에 대한 공격이 본격화됐다. 윤전기 도입 등을 골자로 한 시설기준공표를 발표했다. 현 경인일보와 관련 없는 이름의 '경인일보'란 신문사는 이 때 문을 닫게 됐단다.

   1966년엔 경기일보란 이름의 신문이 생긴다. 인천신문에서 편집국장과 부사장을 역임한 김응태씨가 경기일보로 자리를 옮겨 폐간 때까지 편집인을 맡는다.

   1969년 인천신문은 존폐 위기에 놓인다. 허합 사장이 사법 당국의 수사를 받게 된 것이었다. 허합씨가 무혐의로 풀려났으나 인천신문은 수원으로 본사를 옮긴다.

   인천신문은 수원에서 제호를 경기연합신문, 연합신문으로 잇따라 바꾼다.

   당시 정권은 1973년 다시 언론말살 정책을 편다. 이름하여 '1도 1사'다. 언론인들은 1973년 8월31일을 '언론 사망의 날'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다음 날 언론통폐합이 강제로 이뤄진다. 김응태씨 등 많은 언론인들이 이 때 붓을 꺾었다. 송수안씨가 경영하던 경기매일신문은 창간 27년 만에, 경기일보는 창간 7년 만에 모두 문을 닫게 된다.

   연합신문과 경기매일신문, 경기일보 등 3개 신문사가 통합된 것이다. 제호는 경기신문이었다. 그러다 1982년 지금의 경인일보로 제호를 바꾼다.

   오광철 전 경인일보 편집국장은 "여러 과정을 거쳤으나 60년 창간한 인천신문은 경인지역 언론의 뿌리이며, 허합은 지금의 경인일보를 있게 한 장본인"이라고 말했다.

<김장훈기자·cooldude@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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