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쉬지 마세요<159>

경인일보

발행일 2007-12-04 제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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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배명희 그림 박성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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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은 몹시 빡빡한 일정이었다. 우리는 미서가 다녀온 곳을 죄다 돌지 못했다. 건너뛴 곳도 있었고 바로 곁에서 그냥 지나친 곳도 있었다. 코코루의 돌다리가 보고 싶다는 내 청을 가이드는 완곡하게 거절했다. 그곳에 가면 하루 일정은 접어야 한다고 했다. 게다가 출국일은 내일이었다.

미서가 보낸 엽서 속에는 자고리아 산맥의 계곡사이에 걸린 아치형 돌다리가 있었다. 다리 아래는 산에서 흘려보내는 차가운 물이 흐르고 몇 백 년 전에, 포개진 책처럼 생긴 돌로 만들어진 다리에는 슬픈 전설이 전해 내려온다고 했다.

깊은 산속에 다리를 놓기 위해서 그리스 전역에서 유명한 장인들이 모여들었다. 다리는 거의 완성되어 이제 중심을 지탱하는 돌 하나만 끼워 넣으면 된다. 그러나 마지막 돌을 끼워 넣자 다리는 번번이 무너져 내린다. 다리를 만드는 장인들은 각자 고향에 편지를 띄운다. 다리가 거의 완성되었으니 한 번 다녀가구려. 갈아입을 옷과 고향의 음식도 몹시 그립소. 내용은 대개 그런 거다. 산을 넘고 물을 건너 먼 고향에서 누가 가장 먼저 현장에 도착하는가. 애타게 남편을 기다리던 아내. 먼 길 마다않고 단숨에 험준한 골짝으로 뛰어오는 여자. 누구보다 먼저 현장에 도착하는 아내를 남편은 슬픈 눈으로 맞이한다. 아내가 들고 온 고향 음식과 포도주를 마시고 밤은 깊어진다. 오래 떨어져 있던 부부는 애틋한 하룻밤을 보내고 새벽을 맞이한다. 남편은 옷을 챙겨 입은 후, 아내에게 그대로 자라고 이르고 방을 나간다. 남편을 기다리고 있던 아내는 창을 막고 문을 막으며 점점 높아지는 돌 벽을 본다.

여보, 왜 그래요?

남편은 말이 없고 돌이 사방을 가로막아 외부 세계를 차단한다. 남편을 부르던 아내의 말소리는 더 이상 들리지 않는다. 마무리 돌을 끼워 넣는다. 다리는 무너지지 않는다. 드디어 다리가 완성된 것이다.

아름다운 다리를 만들기 위한, 힘든 공사일수록 완성은 어렵다. 그럴 때는 다리를 만드는 장인들 중 누군가의 가장 사랑하는 여자를 다리에 바치면 완성된다고 한다. 제일 먼저 도착한 여자가 남편을 가장 사랑할 것이다. 그 역도 성립한다. 우리나라의 봉덕사 신종을 만들 때 종이 자꾸 깨지자 어린아이를 쇳물에 넣어 종을 완성했다는 전설과 비슷하다.

소중한 것을 만들 때는 가장 소중한 것을 희생해야 한다는 생각은 동과 서가 다르지 않은 모양이었다.

발칸반도의 숨겨진 보물이라는 자고리아 산맥을 빠져나오며 나는 뒤돌아보았다. 깊은 골짝의 절벽 사이에 걸려있는 아치형 돌다리 속에 사랑하는 남편을 만나러 왔던 여자의 애처로운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마치 에밀레 에밀레 하며 우는 종소리처럼 말이다.

나는 내 소중한 것을 위해서 무엇을 희생해야 할까. 내게 가장 소중한 것이 대체 무엇일까. 그것조차 알 수 없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누구인지 안다면 내게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으려나. 소중한 것이 없다는 것은 곧 내가 누구인지 모른다는 말에 다름 아니다.

너 자신을 알라라고 쓰여있던 델포이 신전. 신탁을 받던 그곳에는 자신이 누구인지 아는 것이 얼마나 중요했을까.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도 되는 은유와 상징으로 가득한 신의 말은 그가 누구인지 알 때만 정확하게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자신이 누구인지 몰라서 몰락한 자가 오이디푸스뿐이던가.

내가 누구인지 안다면 삶이 얼마나 명쾌해지겠는가. 머릿속에 어렴풋이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웠다. 아무 것도 알 수 없는 세계, 어두운 구름 속을 더듬거리며 걸어가는 세상. 무거운 무게로 어깨를 짓누르는 어두움. 절망의 검은 옷자락이 망막을 힐끗 스쳐가는 것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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