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쉬지 마세요<161>

경인일보

발행일 2007-12-06 제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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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배명희 그림 박성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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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형수는 좀처럼 오지 않았다. 직화에 구워 낸 양고기는 약간 짠듯했지만 맛있었다. 시골 분위기가 나는 식당은 구운 양고기로 유명한 집이라고 가이드가 알려주었다.

"이곳 사람들 저녁 식사는 보통 9시가 넘어야 시작돼요. 잠자리에 들 시간이기 때문에 가볍게 먹지만 손님을 초대할 경우는 음식을 엄청 많이 준비해요."

가이드는 양고기를 집어 먹으며 이야기를 계속했다.

"처음 그리스에 와서 저녁 초대를 받았어요. 저녁 9시쯤 오라는 말을 듣고 한국식으로 저녁을 먹고 갔어요. 그런데 식사가 나왔고, 계속해서 기름진 음식이 나오는 거예요. 예의상 안 먹을 수도 없고 억지로 음식을 다 먹느라 엄청 고생 했어요."

"왜 그렇게 저녁이 늦어요?"

"기후 때문인 것 같아요. 아침 8시부터 오후 2시까지 일하고 해 질 때까지 휴식을 취해요. 여름은 섭씨 40도를 오르내리고 햇볕은 강렬해 모든 것을 녹일 듯한 기세죠. 어떤 일을 해도 능률이 오르지 않아요. 특히 오후 2시에서 5시 사이의 태양이 가장 뜨겁죠. 이때 잠깐 낮잠을 자고 해가 진저녁 시간을 효율적으로 쓰는 거죠. 가게는 수요일와 토요일을 제외한 평일 저녁 5시부터 8시까지 다시 문을 열어요. 관공서와 은행도 요일을 정해 이 시간에 근무해요. 그러니 저녁시간이 늦어질 수밖에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형수가 자리로 돌아왔을 때 접시에 양고기는 거의 사라졌다. 가이드는 또 한 접시의 양고기를 주문했다. 식사를 마치고 호텔로 돌아왔을 때는 10시 가까운 시각이었다.

모닝콜을 부탁해놓고 우리는 방으로 올라갔다. 여행 내내 나는 싱글 룸을 이형수는 가이드와 같은 방을 썼다. 샤워를 한 후, 나는 바로 침대에 누웠다. 베개에 머리가 닿자마자 잠이 들어버릴 정도로 여행은 강행군이었다.

오늘 오후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출생지인 펠라와 베르기나를 마지막으로 여행은 무사히 끝나간다. 내일은 오전 중에 에게 해의 진주라 불리는 테살로니키를 둘러보고 로마로 떠난다. 올 때와 마찬가지로 로마 공항에서 4시간 기다린 후, 서울로 가는 비행기를 탈 예정이었다. 바쁘게 다니느라 선물을 사거나 기념품 같은 것을 살 여유가 없었다. 선배에게는 뭔가 작은 물건이라도 사가야 할 것 같았다. 그리고 남편에게도 기념이 될만한 선물을 하나 사다주고 싶었다.

공항에서 냉정하게 가버린 남편의 뒷모습이 떠올랐다. 가이드와 운전사까지 함께 여행을 한다고 생각하지 못했다. 개인적으로 가이드를 동반한 여행을 한 적이 없어 예상하지 못했던 것이다. 조금만 깊게 생각해보았더라면 남편에게 불쾌한 기분을 주지 않을 수도 있었을 텐데. 강민기가 가이드와 운전사가 나올 것이라고 말했는데 왜 이형수와 단둘이 여행을 한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모를 일이다.

어쨌든 남편에게 상황을 설명할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다소 비굴한 생각이 들었지만 마음은 편했다. 잠이 들 때까지 사 가져갈 만한 선물이 떠올랐으면 싶었다. 내일 아침에 가이드에게 그리스의 특산품에 대해 물어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았다. 침대 머리 장에 놓여있는 스탠드의 전등을 껐다. 커튼을 친 방 안이 먹물처럼 어두워졌다.

내일이면 이곳을 떠난다고 생각하니 쉬 잠이 오지 않았다. 해가 뜨기도 전에 호텔에서 나가 저녁 늦은 시각에 들어오는 나날들이었다. 자동차를 타고 이동하면서 잠깐씩 졸았다. 목적지에 도착하면 메모를 하고 유적을 둘러보고 필요한 장면과 상황을 찍거나 머릿속에 넣어야 했다. 시간은 늘 모자랐고 이형수의 작업이 끝나면 무조건 이동했다. 여행에 열중한 시간 속에서 미서를 오래 된 과거처럼 잊었던 적이 더 많았다. 미서야, 나직이 이름을 불러놓고 보니 가슴이 아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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