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쉬지 마세요<163>

경인일보

발행일 2007-12-10 제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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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배명희 그림 박성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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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이 어땠느냐고 남편이 물었을 때 나는 최대한 심드렁한 표정으로 "그냥 그랬어" 라고 대답했다. 한편은 이유를 알 수 없는 죄책감이었고, 또 한편은 사실이었다. 정신없이 이동을 한 탓에 여행의 의미와 즐거움을 음미하기는 어려웠다. 미서의 여행기를 미리 읽어보지 않았더라면 지명조차 기억에 남아있지 않았을 것이다. 내가 별로 깊이 생각지도 않고 여행을 따라 나선 것은 미서를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을까 해서였다.

하지만 나는 미서를 이해할 수도, 삶에 대한 성찰마저도 할 수 없었다. 내게 희미하게 남은 것은 이국적인 식도락에 대한 호기심과 역사의 현장을 확인해 본다는 세속적인 지적 만족감이었다. 또 하나는 익명의 존재로 낯선 곳을 부유하는 약간의 해방감과 지독할 정도로 치열한 이형수의 작업태도에 대한 감탄이었다. 그러느라 이따금 미서를 완벽하게 망각하기도 했다. 나는 죄책감에 떨면서 삭막한 가슴에 진저리쳤다. 내게는 기본적으로 인간적인 정서가 결핍된 것이나 아닌지 두려웠다. 만화 스토리를 쓰는 내게 그것은 치명적인 결함일 것이다. 이형수처럼 치열하게 일에 매달리지 못하는 것은 정서의 최대치인 열정이 부족한 탓일 수도 있었다. 일뿐만 아니라 사람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전병헌조차 까맣게 잊고 있었다. 강민기가 내게 글을 쓰라고 말했을 때 나는 전혀 마음이 움직이지 않았다. 선배의 권유가 목적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음에도 말이다. 강민기의 말을 들었을 때 최소한 마음은 움직여야 하지 않았을까.

나는 시야를 가득 채우며 다가오는 푸른 하늘을 보다가 눈을 감았다.

"밖에서 밥 먹고 들어갈까?"

남편이 핸들을 꺾어 방향을 틀면서 말했다. 밥을 먹고 가자는 말에 비로소 일상으로 돌아왔다는 실감이 났다.

실미도가 빤히 바라보이는 바닷가 식당에 들어가 조개구이를 시켰다. 연탄불 위에 석쇠를 얹고 여러 종류의 조개들이 놓여졌다. 식당 주인은 면장갑과 집게와 가위 등을 주었다. 남편은 장갑을 끼고 살아 꿈틀대는 조개를 뒤적거렸다.

"오라고 하는 곳이 있을 것 같아."

남편의 말을 알아듣지 못했다.

"응, 뭐라고?"

남편은 잠시 침묵을 지켰다. 나는 장갑을 끼고 집게로 익은 조갯살을 빼내는 남편의 손을 바라보았다.

"회사?"

머릿속으로 무언가가 섬광같이 지나갔다. 꿈에서 깨어난 듯 정신이 화들짝 들었다. 남편의 일도 잊고 있었다. 내 머릿속에는 대체 무엇이 들어있는지 알 수 없었다.

"다른 회사에 취직한단 말이야? 잘 됐네."

나는 큰 목소리로 과장되게 기쁨을 나타냈다. 죄의식을 탕감하기에는 어림도 없었지만 달리 내가 어떻게 할 것인가. 나는 혹시 내 얼굴 어딘가에 속마음이 드러날까 봐 불안했다. 나는 남편의 손에서 집게를 빼앗아 들고 익지도 않은 조개를 뒤집었다. 익어가는 조갯살에서 스며 나온 액체가 석쇠사이로 흘러 연탄 불 위로 떨어졌다. 마술사의 손에서 피어나는 꽃처럼 수증기는 피어오르다 잠깐사이에 사라졌다. 그것은 마치 연약한 생명이 꺼지는 것 같았다. 남편의 접시에 조갯살을 올리고 가위로 잘라주었다. 금속의 가위 날로 생명을 난도질하는 느낌이었다. 불 위에 올라가기 전 조개는 살아 꿈틀거렸다. 가위로 그런 조개 속살을 자르고 초장이나 겨자를 찍어 입에 넣었다. 인간은 살아있는 생명을 죽여 그것을 먹고 살다가 죽으면 자신을 자연에 내준다. 흙으로 물로 불로 바람으로 또 다른 생명체에게 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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