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쉬지 마세요<166>

경인일보

발행일 2007-12-13 제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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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배명희 그림 박성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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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려했던 것과는 달리 남편은 순순히 수긍을 하는 눈치였다.

"시내는 좀 멀지 않아? 어떻게 다니려고."

"한 달 가량인데 뭐. 대신 저녁에 좀 늦게 올게."

점심을 먹고 나가서 저녁 늦게까지 작업을 하고 돌아오기로 했다. 일이 너무 쉽게 해결되어서 약간 어이없었다. 남편에게 자신의 노력과 능력으로 안되는 게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인간의 겸손함 같은 것이 느껴졌다. 시련을 겪은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너그럽게 마련일까?

다음 날, 남편은 작업실까지 나를 태워주겠다고 했다. 나는 노트북과 우선 봐야 할 책들을 챙겼다. 그리스에서 사온 시디를 가방에 넣을까말까 망설이다가 그만 두었다. 오디오는 이형수의 스튜디오에 놓여있었다. 미서의 여행기의 사진을 넘긴 이형수는 지방으로 출사를 떠났다. 언제 오냐고 물었을 때 이형수는 오고 싶을 때 온다고 대답했다.

이형수다운 말이었다. 그가 없을 때 그의 물건을 멋대로 사용하는 것은 내키지 않았다. 물론 이형수라면 그런 일에 그다지 개의치 않을 것이다. 당장 음악을 못 듣는다고 별일이 생기는 것은 아니었다.

나는 남편의 옆자리에 앉아 안전벨트를 묶었다.

"실업자 되니까 좋은 점도 있네."

"영원히 이렇게 살까? 당신 운전사 노릇이나 하면서 말이야."

"내가 돈 잘 버는 작가가 된다면 그것도 괜찮지. 매니저가 되어 계약도하고 판권 관리도 하고 말이야."

"내가 팍팍 밀어줄 테니 한 번 해봐. 당신 덕에 놀면서 살아보게."

"당신이 밀어서 잘나가는 작가가 되면 얼마나 좋겠어. 글이란 놈은 어디로 튈지, 어디로 사라져버릴지 모르니 문제지."

나는 과장되게 한숨을 내쉬었다. 좋은 작가를 보면 그의 빛나는 재능이, 재능을 놓치지 않고 한 손에 틀어쥐는 능력이 부럽기는 했다. 내게는 먼 나라의 일이었다. 내 앞에 놓인 일을 하기에도 나는 숨이 차다. 글이 끝난 후는 늘 조마조마하다. 내 글이 어떤 평가를 받을 것인지에 확신이 없기 때문이다.

강민기가 이번 책은 내 이름으로 출판을 한다고 말했다. 그러니 신인 공모전에 출품을 해서 객관적으로 평가를 받을 기회마저 사라졌다. 출판시장에서 잘 팔리느냐 아니냐에 글의 생명이 달렸다. 어찌 보면 공모전이나 시장이나 결국에는 마찬가지이지만 시장으로 바로 들어가는 것은 좀 더 가혹한 상황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몇 번씩이나 공모전에서 탈락하는 사람들은 그럴 것이다. 바로 시장으로 진입하는 것이 얼마나 큰 행운인가 하고. 내 일이 다른 사람의 일보다 더 힘들고 어렵고, 남의 손에 든 떡이 더 커 보이는 법이다. 사람은 그렇게 생각하게끔 만들어진 존재인 것이다.

남편은 자동차의 내비게이션에 돌로 벽을 두른 미술관 이름을 입력했다. 전철과 버스를 번갈아 타고 오면 한 시간도 더 걸리는 곳이 삼십분도 채 안 걸렸다. 남편은 비스듬히 경사진 언덕길을 올랐다. 길옆에 가로수는 잎이 다 떨어졌거나 바싹 마른 잎을 빈 가지에 몇 개 달고 있었다. 전병헌과 앉아 맥주를 마시곤 하던 카페는 외부 테라스 쪽에 유리처럼 비닐을 둘러놓았다. 안개등이 서 있는 작은 정원에 키 낮은 나뭇가지에는 작은 전구 알을 감싸놓았다. 밤이 되면 수많은 전구들이 명멸할 것이다. 마치 크리스마스트리처럼 카페는 순식간에 동화의 나라로 변신할 것이다.

나무에 휘감긴 빛이 없는 알전구들을 바라보았다. 날 위해 빛나던 많은 별들이 일제히 빛을 거둔 것 같았다. 카페 테라스에 앉아 맥주를 마시던 전병헌을 떠올렸을 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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