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쉬지 마세요<167>

경인일보

발행일 2007-12-14 제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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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배명희 그림 박성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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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가 천천히 언덕을 올라갔다. 나는 고개를 돌려 자동차 뒤로 밀려나는 카페를 바라보았다. 마치 영원히 돌아오지 못할 장소를 눈에 넣어두려는듯 카페를 바라보았다.

"왜? 아는 사람이라도 있어?"

남편의 말에 후다닥 고개를 돌려 앞을 보았다. 나는 고개를 세차게 가로 저었다.

"아니야. 키 작은 나무에 감아놓은 전구들 말이야. 밤이 되면 불을 켤테고, 그러면 저 나무들이 괴롭지 않을까 해서."

"나무가 뭘 알겠어? 사람이 그렇게 생각하는거지."

"톱으로 썰려고 하면 나무가 두려워 소리친대."

"여기야?" 남편은 중국집 앞에 차를 세웠다. 아무 것도 변하지 않았다. 새 주인을 찾지도 않고, 건물 옆 공터에는 회색빛으로 변한 잡초 무더기만 누워있었다.

"여기서 잠시만 기다려. 올라가서 문을 열게."

나는 이형수에게서 받은 열쇠를 들고 건물 옆으로 난 계단을 올라갔다. 문을 열자 어두운 건물 내부의 냉기가 코끝에 스며들었다. 이층은 말끔히 정리 되어 있었다. 벽을 더듬어 전등 스위치를 올리고 한 바퀴 둘러보았다. 어디에도 내가 벌거벗고 찍은 사진 같은 것은 없었다. 그 사진은 누가 챙겨두었을까? 미서가 죽은 후, 나는 전시가 끝나는 날까지 한 번도 이곳에 오지 않았다. 빈 공간을 둘러보며 이층으로 내려가는 계단 쪽으로 갔다. 미서와 전병헌이 어두운 구석 어딘가에 앉아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하고 있는듯한 착각이 들었다. 나는 몇 번이나 텅 빈 공간을 뒤돌아보며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아래층은 커튼을 내려놓아 어둑했을 뿐, 사물을 분간할 만큼 빛이 있었다. 중앙 통로를 가로질렀다. 안쪽에 걸린 고리를 벗기고 문을 열었다. 밝은 빛을 등지고 누군가 문 앞에 우뚝 서있었다. 전병헌이었다. 나는 하마터면 반가워 소리지를 뻔했다. 그가 한 발을 앞으로 내디뎌 문을 들어서 중국집 안으로 들어섰다. 남편이었다. 등 뒤에서 비추던 빛이 사라지고 어둑한 내부에서 전병헌이 마술을 부려 남편으로 변한 것이 아닌가 생각했다. 무엇이었을까. 그런 마음은. 무의식이었을까. 자아의 어두운 그림자처럼 생각이 환영을 보게 만든 것이었을까.

남편은 가만히 서서 중국집 내부를 둘러보았다. 많은 문들이 복도를 사이에 두고 나 있고, 오래 사람 손을 타지 않아 모든 것들에 옅게 먼지가 쌓여 있었다. 나는 남편을 바라보며 머뭇거렸다. 전병헌으로 착각한 것이 미안했다. 나로서도 어찌할 수 없었다. 의도적은 아니지 않은가. 인간은 자신의 마음조차 마음대로 하지 못하는 존재인 것이다. 나는 전병헌을 마지막으로 보았던 방문을 열었다.

"여기야."

남편을 똑바로 쳐다보지 않고 우물거렸다. 남편은 성큼 안으로 들어오더니 한 바퀴 둘러보았다.

"춥지 않을까? 책상은?""난로 피우면 돼. 홀에 있는 탁자 아무거나 갖다 쓰면 되고."

목소리가 약간 갈라졌다. 나는 몸을 돌려 남편을 바라보았다.

"당신 좀 안아도 돼?"

나는 머뭇거리며 물어보았다. 남편은 말없이 내 등 뒤로 팔을 둘러 안아 주었다. 남편의 어깨에 얼굴을 올리고 눈을 감았다.

"왜? 심란해서?"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눈물이 찔끔 솟았다. 남편의 어깨에 눈을 갖다대고 눌렀다. 눈에서 삐져나온 눈물이 남편의 점퍼에 스며들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아니, 당신이 고마워서." 나는 눈을 감은채 나직이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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