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쉬지 마세요<169>

경인일보

발행일 2007-12-18 제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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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배명희 그림 박성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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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몸에 한기가 들었다. 두 손이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그제야 이곳에 난방이 전혀 안된다는 것을 생각해 냈다. 외투를 걸치고 의자에서 일어섰다. 관절 마디에 석고를 부어놓은 것처럼 삐걱댔다. 주방으로 가 주전자에 물을 올리고 가스 불을 켰다. 사람이 살지 않는 건물은 급속도로 냉각되는 모양이었다. 의자를 끌어 당겨 불 곁에 앉아 물이 끓기를 기다렸다. 이곳에서 계속 작업을 하려면 난방 기구정도는 있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형수는 이곳에서 어떻게 겨울을 날까? 물이 끓는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겨울 동안 이형수가 지방으로 혹은 밖으로 오랫동안 출사를 나가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끓는 물을 컵에 부어 홍차 티백을 우려냈다. 남편이 데리러 온다는 시간까지는 아직 한참이나 남아있었다. 작업에 몰두했던 시간이 잠깐이었던 것 같았다. 뜨거운 차를 넘기니 몸이 조금 따뜻해지는 것 같았다.

방으로 돌아 와 커튼을 쳐 한기가 들어오는 것을 막았다. 두터운 커튼이 넓은 유리창에 드리워지자 기분이나마 한결 나았다. 그러나 의자에 앉아 책을 볼 수 없을 정도로 기온이 내려갔다. 실내를 서성대며 걸어 다녔다. 스토리에 살을 붙이는 작업은 더 이상 불가능했다. 이곳을 나가야겠다고 생각했다. 노트북과 책을 정리해 탁자 위에 올려두고 손가방만 집어 들었다. 나도 모르게 아래 위 턱이 마주쳐 소리가 났다. 남편이 올 때까지 기다리다가는 동태가 되어버릴 지도 몰랐다.

카페에서 남편의 휴대폰으로 전화를 했다.

"지금 여기서 출발하려고 해. 너무 추워서 기다릴 수가 없어."

남편은 다 왔으니 카페에 그대로 있으라고 말했다. 약속한 시간보다 두 시간이나 빠른 시간이라 나는 어리둥절했다. 전화기를 놓고 카페에 앉아 십분도 채 되지 않았을 때 남편이 나타났다.

"집에 있으려니 심심하고 할 일도 없고 해서 일찍 나왔어."

"이렇게 일찍? 일이 안 끝났으면 어떡하려고?""차 안에서 기다릴 작정을 했어. 작업은 잘 돼?"

"낯선 공간이라 잘 적응이 안돼."

그 말은 절반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나머지 절반의 진실을 나는 말할 수 없었다. 결혼을 한 후, 십여 년 동안 자신에게 온전히 몰입했던 적이 없었다고 하면 이해할까. 내 시간을 가졌던 시간이 한 번도 없었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하면 남편이 무어라 반응할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래서 뭘 할 것인지 사실 나도 알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내 자신? 그리고 자유? 어떤 자유? 뭘 위한 것들? 만화스토리의 주인공이 도달해야 하는 목표점처럼 스스로도 알 수 없었다. 현실로 돌아오면 내가 빈 껍질처럼 느껴져. 그렇게 말할 수는 없었다.

남편은 충실한 보호자처럼 나를 운전석 옆자리에 앉히고 히터를 넣었다. 발아래 쪽에서 더운 공기가 뿜어져 나와 딱딱하게 얼었던 종아리와 허벅지에 피가 돌기 시작했다. 추위에 갇힌 밤거리는 냉정하게 빛을 반사했다. 차가운 공기는 투명한 법이어서 멀리서 다가오는 건물과 길, 그리고 다른 차들이 손에 잡힐 듯 가깝게 느껴졌다.

나는 말이야. 혼자 있는 그곳에서 자유로웠어. 완벽하게 나를 잊고 작업에 몰두할 수 있었어. 아아, 이젠 집에서 작업을 할 수 없을 지도 몰라. 말하자면 자유의 맛을 본 노예가 뻔히 잡혀 죽을 것을 알면서도 도망을 치는 것과 같은 것이랄까.

그렇게 말할 수는 없었다. 남편은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아내와 현재의 생활을 유지하기위해 직장을 잡으려고 애쓰는 남편. 그런 남편도 자신의 존재이유가 직장이 아니라는 것쯤은 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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