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쉬지 마세요<173>

경인일보

발행일 2007-12-24 제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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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배명희 그림 박성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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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작품 사진이 어떻게 해서 인터넷에 떠돌아다니는지 알 수 없었다. 컴퓨터에 대한 내 능력은 파일을 첨부해서 메일을 보내는 수준이다. 그런 실력으로 사진의 출처를 알아낼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다행인 것은 나의 누드 사진이 단순한 흥밋거리인 것만은 아닌 거였다. 선정적인 시각으로 보는 의견들 옆에는 근원에 대한 탐구와 삶의 의미를 돌아보게 만드는 작품이라는 평가도 함께 있었다. 해설에 곁들인 사족과도 같은 언급에는 미서와의 우정, 미서의 여행기, 신화 속의 여신과 사랑의 스토리를 쓴 과정을 소개하고 있었다. 미서의 급작스러운 죽음과 그리스 여행을 소상하게 알고 있는 사람은 몇 명 되지 않는다.

마우스를 움켜잡고 나는 컴퓨터를 노려보았다. 독자의 반응이 좋은 책을 광고하기에 적절한 타이밍은 재판에 들어갈 때다. 운이 좋으면 마른 잎에 불이 일듯 독자가 따라붙는다. 아랫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출판사측을 비난할만한 아무런 근거가 없었다. 미서와 어릴 적부터 친구인 내가 여행기를 정리했고, 친구의 자취를 따라 여행을 하면서 만화 스토리를 썼다는 것은 틀린 말이 아니었다.

책이 많이 팔리면 출판사 뿐 아니라 작가에게도 좋은 일이다. 그러나 기쁨보다 분노가 먼저 일어났다. 내가 화를 낼 이유는 어디에도 없었다. 공개된 장소에 전시된 작품이 인터넷에 유포되는 것은 아무 문제가 없었다.

전시가 끝난 후, 내 작품을 회수하지 않은 것이 후회스러웠다. 작품을 회수했더라도 이런 일이 생겼을지 모른다. 전시회 날, 내 작품 앞에서 사진을 찍어대던 송기자가 떠올랐다. 최소한 선배는 미서의 죽음을 이런 식으로 이용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정신희일지도 모르겠다.

허깨비처럼 오래 컴퓨터 앞에 앉아있었다. 마음이 조금 가라 앉았다. 문득 이용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왜 이용이라는 단어가 갑자기 생각났는지 의아했다. 남편이 이 사실을 모르고 있었더라도 출판사가 나와 미서를 이용했다고 생각했을까. 아닐 것 같았다. 남편이 모르고, 책이 잘 팔리면 그런 단어를 생각할 리가 없을 것이다.

누드 사진 뿐이었다면 나는 어떻게든 남편을 설득했을 것이다. 쉽지는 않겠지만 남편은 이해하고 넘어갈 것이다. 그냥 작품일 뿐이다. 단순히 사진을 찍었을 뿐이라고 남편에게 말할 수 없었다. 나를 가로막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안개 자욱한 들판에 함께 가던 일행을 놓치고 홀로 서있는 것 같았다. 자정이 넘은 시각에 남편은 어디로 간 것일까.

나는 남편의 외투를 집어 들고 집을 나왔다. 발밑에서 눈이 밟히는 소리가 나를 따라왔다. 가로등 불빛이 떨어지는 길 근처는 은가루를 뿌린듯 반짝거렸다. 부는 바람에 흩날린 눈가루가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은빛 입자가 눈썹 끝에 내려앉아 작은 이슬이 되었다. 남편의 외투를 움켜잡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아무도 밟지 않은 길에 홀로 걸어 간 발자국이 길게 나 있었다. 발자국을 따라 갔다. 슬리퍼 속의 맨 발에 냉기가 스며들었다. 발자국은 주차장을 지나 편의점 쪽으로 가고 있었다. 밤새도록 문을 여는 편의점이 어두운 밖을 향해 자신의 내부를 드러내고 있었다. 불을 밝힌 편의점은 어두운 들판에서 쳐다보는 기차 같았다. 네모난 창마다 창백한 얼굴을 담고 있는 기차처럼 남편은 편의점의 유리문에 박혀있었다.

유리문을 밀고 안으로 들어갔다. 낯익은 종업원이 계산대에 앉아 잡지를 뒤적이고 있었다. 나는 남편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남편은 컵라면이나 커피를 끓여먹는 조리대 앞에 서서 어두운 밖을 향해 서 있었다. 남편의 어깨 위에 가져간 외투를 올려주었다. 남편의 손을 잡았다. 손이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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