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48주년기획 20년만에 다시찾은 섬]백아도

사람손길 드문 낙도 '홀로 아리랑'

강승훈 기자

발행일 2008-08-06 제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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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은 언제나 그대로입니다. 복잡한 일상에서 탈출하려는 여행객들의 심정이 각기 다르겠지만 섬은 항상 그 자리를 지키고 있을 따름이죠."

백아도(白牙島)에서 태어난 송진호(58) 선장. 인천 덕적도를 모도(母島)로 한 인근 도서에 하루 한 차례 닻을 내리는 해양호의 키를 잡고 있다. 이 배와 인연을 맺은 지 올해로 14년째 접어든다. 문갑, 굴업, 울도 등 고만고만한 섬을 돌면서 젊은 시절을 다 보냈다고 한다. 청춘을 바다에 바친 그는 이제 고향을 지척에 두고 근무할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고 있다.

적면 일대 섬 주민들의 손과 발 역할을 하는 해양호에 몸을 실은 이들은 서로가 낯설지 않다. 전체 도서를 합쳐봐야 인구가 많지 않을 뿐더러 송 선장과의 오랜 인연 때문이다. 약한 빗줄기가 내리던 지난 7월 중순, 해양호가 출항에 나섰다.

선박이 바다 한가운데로 나가자 금세 파도가 거칠어졌고 정원이 고작 80명에 그치는 작은 선체가 심하게 흔들렸다. 따가운 햇살이 내리쬐던 오전과 완전 딴판이다. 배를 탄 10여명의 승객은 갑판으로 나갈 엄두를 내지 못했다.

   
▲ 마을 보호수 밑에 마련된 작은 마을 공동 우편함.
굴업을 지나 외곽 섬에 3개의 붉은 기암절벽이 우뚝 솟아 있다. 백아도에 살던 남매간의 이뤄질 수 없는 애달픈 사랑을 간직한 '선단여'다. 잠시 후 1시간이 걸려 도착한 목적지에는 반기는 이도, 반가운 사람도 없었다. 외부 발길이 뜸한 섬 분위기를 설명하는 듯했다.

선착장에서 배분열(75) 할머니를 만났다. 불혹을 넘긴 노총각 아들과 함께 생활하는 배 할머니는 큰말에 산다. 정확한 시기를 알 수는 없지만 한때 주민들이 몰려 살아서 다들 그렇게 부른다고 하는데 현재 9가구에 16명이 전체 인원이다. 12가구, 15명이 살고 있는 작은말은 이곳 반대편에 있다.

20년 전 연재된 경인일보 기사에서, 작은말을 더 큰 동네로 소개한 것과 달리 인구는 큰말이 많다. 발전소 직원 4명이 여기에 숙소를 마련했기 때문이다.

큰말 입구에는 지난 2000년 5월 준공된 내연발전소가 있다. 발전소를 자체적으로 운영하기 전에도 백아 주민들은 전력 공급에 불편을 겪지 않았는데 이는 1990년 중반까지 해군 부대가 주둔했기 때문이다.

   
▲ 섬 주민들의 손과 발 역할을 하며 인천 덕적도를 모도(母島)로 한 인근 도서에 하루 한 차례 닻을 내리는 해양호가 백아도 큰마을 선착장에서 승객을 하선시키고 있다.
발전소장 차준덕(47)씨에 따르면, 산을 다져서 시설물을 갖춘 해군 8×××부대는 낙도에 각종 혜택을 안겨줬다. 전기를 비롯해 군(軍)의 레이더기지는 일반 가정에서 유선 전화기 사용을 가능하게 했다. 군인 자녀들의 교육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덕적 서포초교 백아분교도 문을 열었다.

1996년 단계적으로 해군 철수와 함께 백아도는 점차 생명력을 잃기 시작했다. 장병이 떠난 자리에는 공허함만 남았고 학생 수요가 없는 학교는 폐쇄 조치가 내려졌다.

군의 도움으로 매년 수확의 기쁨을 맛본 논 농사는 황폐해졌다. 노인들 자력만으로 가꾸기 힘든 논에는 무성하게 잡초가 뒤덮였다. 옹진군 보건소 집계에서 섬에 거주하는 주민 연령이 평균 65세에 이르는 데서 초고령 사회임을 확인할 수 있다.

마을 이장 고용현(70), 신풍금(67)씨 부부는 작은말에 산다. 이 마을에 닿는 유일한 수단은 걷는 것이다. 전신주를 따라가라는 배 할머니의 설명대로 산을 오르내리길 반복했다. 사람 발길이 드물었던지 인도 구분이 확연하지 않다. 습한 산길의 바위 모퉁이에 온통 빨간색으로 단장한 게들과 마주쳤다. 부엌에 들어가서 음식물을 훔쳐 먹는다고 이름 붙여진 바로 '도둑게'다. 집게 다리까지 3~4㎝도 안 돼 보인다. 30분쯤 산을 내려오니 도로 공사가 멈춘 현장에 닿았다.

섬 외곽을 잇는 회주도로는 2006년 초 착공됐지만 아직 준공까지 절반가량 공정이 남았다. 토지주 반대와 예산 부족 등으로 이미 세 차례의 중단을 경험했다.

군은 올해 7억3천만원의 사업비를 앞서 확보했으며 곧 공사를 재개해 내년 상반기 중으로 개통한다는 계획이다. 작은말 어귀에는 신축 보건진료소의 막바지 공사가 한창이다. 한결같이 빨간 페인트로 칠해진 지붕 사이로 한 가구만이 파란색이다. 유독 눈에 들어오는 이 집에 고 이장 부부가 산다.

"20년 전에는 꽃게 그물을 손질하면 못해도 1년에 수천만원은 손에 넣었지. 인천을 떠난 수십척의 조업선이 며칠을 묵으면서 섬 사람들에게 일감을 줬어."

   
▲ 백아도에서 태어난 재준,수민 남매. 하늘색 자전거를 타고 동네를 누비는 게 취미인 재준이 옆에서 수줍음을 많이 타는 동생 수민이가 낯설어하고 있다.
고 이장은 돈이 넘쳐났던 시절을 회상했다. 이마저도 서해 전반에 불어닥친 흉어기로 오래 가지는 못했다. 그렇다고 마을 사람들이 경작지를 늘리기에도 역부족이었다. 임야가 차지하고 있는 비중이 워낙 컸고 소규모 토지는 지나치게 척박했기 때문이다.

1년을 꼬박 땀 흘려야 수확이 가능한 쌀 농사는 아무도 짓지 않는다. 여기서 소비되는 쌀의 전 물량은 외지에서 모두 사온다. 낚싯배가 아닌 근해조업이 가능한 어선 또한 1척이 있지만 바다로 나간 게 언제인지 정확히 기억하기 힘들다.

여느 섬들과 달리 백아도에서는 아이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큰말에서 태어난 발전소 총무과장 이철호(34)씨는 과거 인천공항에서 근무하던 지금의 부인 김재화(26)씨를 만나 가정을 꾸렸다.

외부와의 단절을 극복하기 힘들 것이라는 주위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20살 새색시는 아무 탈 없이 1남1녀를 키우고 있다. 성격이 좋아서인지 힘든 일상에도 불만을 내색하지 않는다. 이들 부부 사이에는 재준(5)·수민(3)이가 있다.

백아에서 태어난 남매는 무척이나 건강하다. 아직껏 잔병치레를 한 적이 없단다. 하늘색 자전거를 타고 동네를 누비는 게 취미인 재준이는 '어부'가 꿈이란다. 산과 바다만을 접하고 자란 때묻지 않은 순수함 때문일까. 오빠의 뒤를 따르던 수민이는 낯선 이들의 접근을 경계하는 듯했다. 말을 건네기가 무섭게 총총걸음으로 엄마 재화씨 뒤에 숨어 버렸다.

   
▲ 지난 외환위기이후 경찰병력이 철수해 건물만 남아 있는 덕적파출소 백아초소.
연말이 되면 남매는 섬을 떠날 예정이다. 내년 6살이 되는 재준이가 유치원에 가야 하는데 이곳엔 교육시설이 전무하기 때문이다. 젊은 부부는 아이들을 위해 부득이하게 당분간 떨어져 살기로 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자식들과 따로 살아야 한다는 생각에 철호씨는 벌써 그리움이 앞선다.

얼마 지나지 않아 보이지 않게 될 아이들의 모습은 예전 섬 사람들에게 편의를 제공했던 군 부대와는 또 다른 소중한 기억으로 남을 듯싶다. 한순간의 기억보다는 섬을 지탱하는 활력의 부재로 다가설 수도 있겠다.

백아에서 태어난 어린 남매가 10년이 지난 먼 훗날, 고향을 찾는다면 그들을 기억하는 어르신들로 면적 1.75㎢의 작은 섬은 다시금 활기를 되찾을지도 모르겠다.

사진/임순석기자 sseok@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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