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48주년 기획 20년만에 다시찾은 섬]세어도

지난해서야 문명의 빛 밝힌 '도심속 오지', 가까이 있지만 외로운 이웃들…

김명호 기자

발행일 2008-09-17 제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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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위가 수역으로 둘러싸인 육지의 일부'. 국어사전에서 찾은 '섬'이란 단어의 사전적 의미다. 바다로 둘러싸여 있어 외롭고 육지의 일부라서 서러운 곳 또한 섬이다.

다리가 놓이고 바다가 매립되면서 더 이상 이런 표현들로 설명할 수 없는 섬들이 많아지고 있지만 우리가 인식하는 섬은 채워지지 않은 모자란 그 무엇이다.

세어도로 가는 행정선을 타러 동구 만석부두로 가는 내내 이런 생각들을 했다.

몇 년 전만 해도 인천에서 세어도를 아는 이들은 별로 없었다. 너무 가까이 있어 인식하지 못하다가 어느 순간 '아 이런 게 있었구나' 하는 느낌처럼 세어도도 그렇게 알려지기 시작했다.

   
▲ 행정구역은 서구지만 서구지역에 마땅한 선착장이 없어 5분이면 올 수 있는 섬을 동구 만석부두에서 배를 타고 40여분이나 돌아 세어도에 도착한 행정선.

특히 지난해 2월 200여년 만에 처음으로 전기가 공급됐다는 소식이 지역과 중앙 언론에 소개되면서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다. 섬에 모자란 무언가가 채워지기 시작하면서 사람들의 이목을 끌기 시작한 것이다. 여기에 도심과 가까운 곳에 위치해 있으면서도 이 섬으로 들어가는 마땅한 교통편이 없어 주민들이 수십년째 큰 불편을 겪고 있다는 소식이 더해지면서 사람들이 '도심속의 오지 세어도'를 인식하기 시작했다.

세어도의 행정구역상 주소는 인천광역시 서구 원창동이다. 조선시대 부평군 서곶면에 속해 있다 1917년 부천군에 편입된 후 1945년 해방과 함께 인천으로 바뀌게 된다. 인천 지역 대부분의 섬이 옹진군과 중구에 속해 있는 것과 비교하면 세어도는 주소부터 지역 다른 섬들과 동떨어져 있다는 느낌이 든다.

   
▲ 행정선이 영종대교 교각 아래를 지나고 있다.

안개 때문에 뜨지 못한다던 세어도 행정선이 약속시간 30분이 지나서야 만석부두에 모습을 드러냈다. 세어도는 오가는 민간 여객선이 없어 하루에 한 번꼴로 운행하는 행정선이 주민들의 '발' 노릇을 한다. "지금 들어가야 아무도 없을 텐데…. 다들 농어 잡으러 바다에 나갔어. 우리도 추석은 쇠야될 것 아녀." 세어도에서만 4대째를 살고 있다는 행정선 선장 채수정(55)씨가 배에 오르자마자 한마디했다.

세어도 사람들의 주 소득원은 농어잡이다. 6월에서 10월까지 한 달에 다섯 번꼴로 출항해 농어를 잡는다. 사람 팔뚝만한 크기의 농어는 ㎏당 2만5천원씩을 받는데 이 값이 10년 전과 별 차이가 없다고 한다. 또 섬 인근에 바다를 메워 인천공항이 들어서고 육지와 공항을 잇는 영종대교 등이 세워진 다음부턴 물길이 바뀌어 예전처럼 농어가 잡히지 않는다고 한다.

   
▲ 세어도 바로 앞에서 잡은 농어.대부분의 주민들이 주업으로 농어 낚시를 하고 있다.

채씨는 "인천공항 생기기 전까지만 해도 한 번 나가면 농어 200㎏씩은 잡아 애들 공부시키고 다 했는데 지금은 하루 꼬박 조업해도 2~3마리밖에 잡지 못한다"며 "이젠 여기서 농어 볼 날도 얼마 남지 않은 것 같다"고 했다.

배가 만석부두를 출발하자 북항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서부발전소와 동부제강 등 대형 산업시설들이 모여있는 항만을 빠져 나와 20여분이 지났을까. 저 멀리 수많은 차들이 시원스레 달리고 있는 영종대교가 눈에 들어왔다. 다리 교각 아래를 지나 10여분을 더 간 후에야 흐릿하게 세어도가 보이기 시작했다.

최첨단 설계와 공법으로 조성됐다는 영종대교와 인천공항, 바로 여기서 몇 ㎞ 떨어지지 않은 곳에 200년 만에 처음 전기가 들어왔다는 세어도가 있다.

   
▲ 10여분이면 동네 전체를 둘러볼 수 있는 조그만 섬. 도심과 가까운 곳에 위치해 있으면서도 섬으로 들어가는 마땅한 교통편이 없어 주민들이 수십년째 큰 불편을 겪고 있는 '도심속의 오지 세어도' 전경.

세어도 선착장 주변에는 농어를 잡으러 나갔다 점심을 먹기 위해 들어온 조그만 배들이 모여 있었다. 대부분 부부로 보이는 이들은 섬으로 들어오는 시간도 아까운 듯 배 안에서 도시락을 먹고 있었다.

"우리 집에서 라면이라도 먹고 가. 나도 빨리 농어 잡으러 가야 해서 집에서 한 끼 먹는데 같이 들자고." 채씨가 배에서 내리자마자 자기 집으로 안내했다.

동네 언덕에 오르자 해안을 따라 빛바랜 슬래브 지붕들이 다닥다닥 붙어있는 마을이 한눈에 들어왔다. 마을 뒤편 해안 너머로 보이는 웅장한 영종대교의 모습과 마을의 빛바랜 슬래브 지붕들이 대비되면서 이곳 세어도 주민들의 애환을 대변하는 듯했다.

"20년 전만 해도 여기에 송현초등학교 분교도 있었고 100여명이 넘는 사람이 섬에서 농어를 잡았는데 지금은 다 떠나고 한 30명밖에 없어. 그땐 사는 건 불편해도 바지락이며 민어, 농어가 많이 잡혀 돈 걱정은 안했지." 채씨는 라면을 먹으며 옛날 얘기를 했다.

그러나 채씨는 "지난해 전기가 들어오고 구청에서 급수시설도 해줘 몸은 편해졌지만 뭔가 허전한 느낌이 많이 든다"고 말했다.

밥을 먹은 후 동네를 한바퀴 둘러보기 위해 나섰다. 한낮 마을은 조용했다. 다들 농어를 잡으러 나간 탓에 마을은 노인 2~3명이 지키고 있었다.

10여분이면 동네 전체를 둘러볼 수 있는 조그만 섬이지만 이곳 사람들의 이야기는 하루를 다 들어도 못 들을 듯했다.

   
▲ 지난해 2월 처음으로 전기가 공급되면서 설치된 한전 전신주.
40여년 전에 충청도에서 세어도로 시집와 지금껏 살고 있다는 오향환(76) 할머니는 전기 이야기를 먼저 꺼냈다. "몇 년 전만 해도 전기가 안 들어와 발전기를 돌려 썼는데 발전량이 부족하다 보니 가전제품이 고장나기 일쑤였다"며 "그나마 지금은 텔레비전이라도 마음껏 볼 수 있어 심심하진 않다"고 했다.

오 할머니는 "발전기고 뭐고 아무것도 없던 시절엔 동네 끝 해변가에 있는 우물에 김치를 싸서 보관했는데 비바람이 몰아치는 날에도 김치 건지러 가던 기억이 생생하다"고 회상했다.

동북아 허브도시를 자처한다는 인천, 그 속의 작은 섬 세어도는 마치 이제 막 깨어나 도시 문명의 혜택을 받는 원주민들이 사는 곳 같았다.

세어도의 행정구역은 서구지만 서구지역에 마땅한 선착장이 없어 5분이면 올 수 있는 섬을 동구 만석부두에서 배를 타고 40여분이나 돌아가야 한다. 이 때문에 이곳 사람들의 육지 생활권은 대부분 동구 지역이다. 장을 보러 갈 때도 동구 송현시장이나 중앙시장 등을 찾는다고 한다.

지역과 중앙 언론에 이 문제가 몇 번 언급된 후 관할 구청과 군부대가 서구 지역에 선착장 부지를 찾기 위해 협의하고 있지만 반년이 다 되도록 뚜렷한 해결점을 내놓지 못해 섬 주민들의 불만이 크다. 또 세어도 인근은 군사 취약지역으로 묶여 있어 선착장 건설은 물론 밤에 사람들의 왕래도 통제돼 불편한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세어도 통장으로 일하고 있는 김오현(55)씨는 "언론에 몇 번 나오면서 세어도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지만 때론 이런 관심 때문에 뜻하지 않은 오해가 생겨 상처를 받기도 한다"며 "마을이 발전하고 외지 사람들이 많이 들어온다고 꼭 좋은 것만은 아닌 것 같다"고 했다.

오후 4시가 다 돼 농어를 잡으러 갔던 채씨가 돌아왔다. 새벽 4시부터 나가 조업했다는 채씨가 이날 잡은 농어는 한 마리. 그의 어깨는 축 늘어져 있었다.

다시 만석부두로 돌아가기 위해 행정선에 올라탔다. 채씨가 하루종일 일해 잡은 농어의 배를 가르고 있었다. "기자양반, 그래도 여기까지 왔는데 농어맛은 보고 가야지."

농어회 몇 점과 소주 한잔을 먹으며 그와 이야기를 나누는 내내 세어도 상공 위로는 인천공항을 이륙한 비행기가 쉴 새 없이 날아올랐고 영종대교에는 수많은 차들이 속도를 내며 달리고 있었다.

사진/임순석기자 sseok@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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