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인일보 창간 48주년 기획 20년만에 다시찾은 섬]백령도·下 자연

인당수 푸른물결 가르고… 때묻지 않은 신의 선물보따리 풀다

정진오 기자

발행일 2008-11-26 제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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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연기념물 제331호로 지정보호되고 있는 백령도 물범들. 물범바위주변에 200여마리가 서식하고 있다.

   
백령도는 사람을 겸손하게 한다. 아무리 뛰어난 화가도, 음악가도, 여기선 감히 재주부릴 엄두를 내지 못한다. 섬 전체가 사람은 도저히 흉내낼 수 없을 만큼 뛰어난 예술작품이랄 수 있기 때문이다. 백령도엔 천연기념물만 네 가지나 된다. 물범(제331호), 사곶해변(제391호), 콩돌해안(제392호), 감람암 포획 현무암 분포지(제393호)다.

11월6일 오후 1시57분 물범 휴식처인 물범바위를 향해 용기포항을 출발했다. 우리나라에서 물범과 가장 친하게 지낸다는 주민 김진수(51)씨의 작은 FRP배를 타고서다. 용기포항 방파제를 북쪽으로 돌자 신항건설현장이 나왔다. 그리곤 온통 흰색으로 물든 해안절벽이 나타났다. 이곳에 서식하는 가마우지의 배설물이 흰색 물감 노릇을 한 것이란다. 절벽에는 만삭의 임신부 모양을 한 바위도 있었다. 이름하여 임신부 바위. 2시 9분, 하늬해변이 먼발치에서 보이는 바다. 낮게 솟은 평평한 바위에서 뒤뚱거리며 물속으로 들어가는 물범 무리가 시야에 들어왔다. 100 정도 앞까지 다가갔는데 5마리는 끝내 내려가지 않았다. 물속으로 숨은 수십 마리의 물범 무리는 수시로 고개를 내밀며 이방인을 살폈다. 연구자들의 길 안내를 맡으면서 덩달아 '물범 박사'가 된 김씨는 멀리서도 물범의 암수를 구별했다. 이날 물범바위 주변엔 60마리 정도 된다고 했다. 해안가에서는 어렴풋하게 형체만 확인할 수 있었는데, 이렇게 가까이서 물범을 직접 보니 참으로 앙증맞고, 귀엽다는 생각뿐이었다.

   

예전에는 300여 마리씩 관찰되던 게 요즘은 200여 마리 밖에 안된다고 한다. 11월 말에 바로 위 북한해역을 거쳐 중국 쪽으로 건너갔다가 다시 내려 오는데, 이 과정에서 중국 어선들에 많이 잡히는 것으로 김씨는 파악했다. 실제 우리의 서해 최북단 백령도와 북한 서해 최남단 경계해역엔 중국 어선들이 길게 늘어 서 조업 중이었다. 한눈에 봐도 50여 척은 됐다. 이들은 비가 오나 바람이 부나 어떤 악천후에도 아랑곳하지 않는다고 한다. 마치 NLL을 맨눈으로 확인시켜 주려는 듯이 딱 우리와 북쪽의 가운데 라인을 형성했다. 남북을 오가는 물고기는 이들의 그물에 모두 걸려들 것처럼 보였다. 이들 중국어선의 무분별한 어족자원 남획으로 물범의 먹이가 되는 놀래미와 우럭이 줄어든다고 한다. 중국어선들은 물론 천연기념물 물범을 가릴 리 없다. 물범은 물범바위 부근에서 먹이를 구하기 어렵게 되자, 백령도와 대청도 중간 쪽까지 내려가 우리 어민들의 까나리 잡이를 망치고 있다고 한다. 20년 전에는 없었던 심각한 문제가 생겨난 셈이다.

   
▲ 형제바위 석양. 비슷한 모양의 바위가 정답게 붙어 있어 형제바위라고 불리고 있다.

백령도에서 현대화를 시도했다가 다시 옛 모습으로 되돌리려는 곳이 있다. 기암괴석과 싱싱한 횟감이 널려 있는 두무진 포구다. 두무진 포구는 유람선과 어선 선착장이 있고, 여느 포구와 마찬가지로 콘크리트 구조물이다. 그 위에 횟집거리가 형성돼 있다. 이 콘크리트를 헐어낼 예정이라고 한다. 예전에 이 곳은 작은 돌이 해변을 이루었단다. 그 해변에 바로 배를 댔다고 한다. 여기도 콩돌해안이었던 것이다. 20년 전 경인일보의 지면(1989년 10월 19일자)에도 자연 그대로의 두무진 포구 풍경이 실렸다. 당시 어민들은 콩돌해안에서 잡은 물고기도 말리고, 어구손질도 했다. 두무진 포구에서 서쪽으로 조금만 가면 기암절벽이 뽐내는 '패션쇼'를 감상할 수 있다. 서해안에서는 좀처럼 보기 어려운 장관이 펼쳐진다. 두무진 기암괴석은 아침에 보는 것과 한낮에 보는 것, 해질녘에 보는 것이 각기 다르다. 햇빛의 농도와 방향에 그만큼 민감하게 반응한다. 이곳은 대표적인 유람선 관광 코스이기도 하다.

   
▲ 천연기념물 제393호인 감람암 포획 현무암. 백령도 진촌리에서 동쪽으로 1.3㎞ 정도 떨어진 해안에 위치, 두께 10m 이상으로 검은 현무암으로 이루어져 있다.

백령도에선 특히 '공짜'로 북쪽 최남단 장산곶을 구경할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날 좋을 때는 두무진이나 심청각, 하늬해변 등 백령도 북쪽 해안 어디서나 북녘 땅을 훤히 들여다 볼 수 있다.

백사장이 비행기가 오르내릴 수 있는 활주로 역할을 하는 사곶해변도 백령도에서는 빼놓을 수 없다. 말 그대로 천연비행장이다. 세계에 단 두 곳 뿐이란다. 안내판에는 '인천에서 228.8㎞ 떨어진 백령도 동남쪽 해안에 위치하고 길이는 4㎞, 폭은 100m'라고 쓰여 있다. 여기는 비행장 말고도 백령도의 종합운동장 역할도 한다. 얼마 전 면민의 날 행사 때는 이곳에 라인을 그려 놓고 주민들이 축구도 하고, 족구도 하고, 달리기도 했단다.

   
▲ 백령도 콩돌해안.

찾는 사람마다 '조물주가 뿌려 놓았나, 바닷물의 장난인가'라는 식의 혼자말을 내뱉게 하는 콩돌해안도 있다. 아기 주먹보다도 작은 돌들이 모래를 대신해 해변을 이룬다. 파도에 떠밀릴 때 딸그락거리며 내는 소리도 환상적이다. 돌 하나하나가 신기하다. 6년 전부터는 콩돌해안 입구에 '지킴이'가 등장했다. 관광객들이 늘면서 너도나도 이 돌을 가져가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콩돌의 외부반출을 막기 위해서라고 했다.

사실 백령도에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오군포의 콩돌해안 말고도 대다수 해변이 콩돌로 돼 있다. 연화1리 해안가 역시 환상적인 콩돌해안이다.

   
▲ 관광객이 백령도 심청각에서 북녘 땅인 장산곶 등을 바라보고 있다.

사곶해변 서쪽 끝자락엔 작은 댐이 있다. 바다를 메워 농지를 늘리는 간척사업을 하면서 담수호를 남겨 둔 것이다. 1991년 6월 3일부터 2006년 11월 30일까지 사업이 진행됐다.

아직도 끝나지 않았는지 안내판에는 '미완공간척사업'이라고 이름이 붙어 있다. 백령도의 '자연'은 여전히 우리 한반도의 모습을 가장 원초적으로 간직하고 있는 '천연 기념물'이다.

   
▲ 아름다운 섬 백령도 해안선 곳곳의 경관을 훼손하는 철책.

사진/임순석기자 sseok@kyeongin.com

백령도/정진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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