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인일보 창간 48주년 기획 20년만에 다시찾은 섬]대청도

20년전 경인일보 '낙타 한마리 세우면 중동의 사막… 우리나라에서 보기 어려운 풍경' 표현

정진오 기자

발행일 2008-12-10 제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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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탄동 해변은 모래가 바람에 실려가며 아름다운 곡선을 이루는 형상으로 1㎞가량 고운 모래가 깔린 완만한 해변으로 주변에 수백그루의 적송이 자생하고 있다.

   
대청도를 처음 구경하는 뭍사람이라면 입을 다물지 못할 광경을 보게 마련이다. 낚시 명소나 호젓한 해수욕장을 생각하고 대청도를 찾았다면 누구나 놀랄 수밖에 없는 것, 산 속의 모래언덕이다. 해안가에서 바람에 날려 쌓인 모래가 '사막'을 이룬 것이다. 억겁의 세월이 빚어낸 신비, 그 자체다.

1990년 2월 5일자 경인일보는 이 모래언덕을 두고 '낙타 한 마리만 세우면 중동의 사막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우리나라에서는 보기 어려운 풍경'이라고 표현했다.

그때와 달라진 것이라면 사막의 규모가 크게 줄어든 점이다. 10여 년 전에 일부 모래밭에 소나무를 심는 조림사업을 펼쳤고, 그 결과 전체 면적의 3분의 1 정도의 사막이 사라졌다. 예전에는 그 사막같은 곳에서 사람이 살았다고 한다. 그 집터는 이제 해병대원들이 훈련을 할 때 임시 막사를 세우는 장소로 쓰인단다.

대청도에서 가장 큰 산이 삼각산인데, 이 삼각산을 기준으로 북쪽에는 모래가 많고, 남쪽에는 돌이 많다고 주민들은 설명했다.

   
▲ 전형적인 어촌으로 대청도 선진동선착장에 100여척의 어선들이 빼곡히 정박해 있다.

대청도에는 자연이 만든 신비한 풍경 한 가지가 또 있다. 사탄동 고개에서 삼각산 줄기를 따라 올라가면 수리봉이란 이름의 바위가 있고, 여기서 해안가를 바라보면 산세가 날아가는 새 형상을 하고 있는 모습이 나온다. 날개를 펼치고 바다를 향해 고개를 쳐든 독수리를 닮았다. 이 독수리의 목 부위로 길이 나 있는데 그곳에 정자각이 있다. 지나는 길손에게 쉴 틈도 주고, 좋은 풍광도 감상하라며 2000년 11월에 세웠다.

사탄동(沙灘洞)이란 이름도 재미있다. 모래가 바람에 실려 아름다운 곡선을 이룬 여울이란 의미라고 한다. 이 마을에 붙은 학교와 같은 공공기관의 이름도 덩달아 '사탄'으로 시작한다. 그런데 교회만큼은 기독교에서 쓰는 '사탄'이란 말의 좋지 않은 느낌 때문에 이름을 바꿨다고 한다. 사탄초등학교는 10여 년 전에 폐교돼 지금은 여름철이면 야영장으로 쓰이고 있다고 한다.

17년째 대청면사무소에서 근무하고 있다는 김근수(48)씨는 수리봉에서 영락없는 독수리 모양의 산세를 바라보다 대청도의 매(鷹) 얘기도 꺼냈다. "대청도에는 매막골이라는 동네 이름이 있을 정도로 매가 많았다고 합니다. 옛날부터 사냥하는 매로 치면 대청도 매를 가장 알아줬다고 하고요."

   
▲ 동백나무 자생 군락지. 차나무과에 속하며 따뜻한 해안과 인접한 토지에 자생하는 상록활엽수로 최북단에 자생하고 있어 학술적 가치가 높아 지난 1933년 천연기념물 제66호로 지정보호되고 있다.

중국에서 날아오는 매가 처음으로 앉는 곳이 대청도였고, 가을이면 이 매를 잡으려는 사냥꾼들로 붐볐다고 한다. 대청도에서 잡은 매를 '해동청(海東靑) 보라매'라고 불렀다고 한다.

대청도 방문객이라면 꼭 둘러볼 데가 또 있다. 천연기념물 제66호인 동백나무 군락지다. 우리나라 동백나무 자생 북방한계지가 바로 대청도다. 동백꽃은 따듯한 남쪽 지방에서만 볼 수 있다는 우리의 고정관념을 이 대청도가 깨뜨리는 것이다. 동백나무 군락지를 울타리를 둘러 보호하고 있었는데, 염소를 방목해서인지 염소똥이 널려 있었다.

대청도는 낚시꾼들의 천국이다. 백령, 대청, 소청을 연결하는 여객선에 탄 낚시꾼의 대다수가 대청에서 내린다. 섬 해안가 주변에 골고루 퍼져 있는 갯바위 낚시터 때문이라고 한다.

인천 부평의 백운역 주변 상인들로 구성된 낚시 모임 회원들도 11월 초의 차가운 바닷바람을 이겨내고 낚은 물고기를 대형 아이스박스에 가득 담았다. 낚시 마니아라는 김진수(58)씨는 "다른 곳에서 하는 것보다 대청도에서의 낚시 맛이 유난히 좋다"면서 "한 달에 한두 차례는 꼭 낚시하러 온다"고 말했다.

   
▲ 사하라사막을 연상케하는 대청도 섬속의 모래사막.

대청도의 관문인 선진포항을 넓히는 건설공사가 한창이었다. 늘어날 관광객에 대비하려는 듯 보였다.

가장 번화한 마을인 선진포항 일대 선진포초등학교도 폐교됐다고 한다. 젊은 층이 줄어드는 데다, 아이들 교육을 뭍에서 시키기 때문이라고 했다.

"일제때 고래잡이… 까나리·홍어이어 근래 활어 주종"

대청도는 일제시대 때 고래잡는 회사가 있었을 정도로 포경으로 유명했다. 지금도 포경회사 건물 기초부분이 남아 있다고 한다.

대청도에서 잡히는 어류의 종류도 세월이 가면서 변해왔다고 한다. 일제 때는 고래잡이가 성행했고, 1950~60년대에는 조기와 까나리잡이가 전성기였다고 한다. 1970~80년대에는 홍어잡이가 주류를 이뤘고, 1990년대 이후 지금까지는 우럭 등 활어가 주력 어종이라고 한다.

대청도를 나오면서 선착장 주변에서 개인택시 기사를 만났는데, 1990년 당시 유일한 개인택시 기사 김명의씨로 기록된 김명익(57)씨였다. 19년째 이 일을 하고 있다고 한다. 그의 명함이 눈길을 사로잡았다. '대청 개인택시(렉스턴 Ⅱ) 대표 김명익'이라고 쓰여 있다. 예전에는 김 대표의 차가 유일한 택시였는데, 최근에는 1대가 더 늘었다고 한다.

대청도의 고기잡이가 예전같지 않다고 했다. 그래도 선진포항을 가득 메운 어선들의 위세는 대단했다.
사진/임순석기자 sseok@kyeongin.com

대청도/정진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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