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인일보 창간 48주년 기획 20년만에 다시찾은 섬]소청도

큰바다 품은 작은 섬엔 '얘깃거리 밀물'

정진오 기자

발행일 2008-12-24 제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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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술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특이한 암석구조인 선캄브리아기의 스트로마톨라이트. 세계적으로 호주 서부 샤베크 해안과 소청도에서만 발견되는 원생대(선캄브리아기 8억7천만년전)의 지층에서 식별할 수 있는 유일한 화석으로 천연기념물로 지정 고려중이다.

   
'먹고 남는 백령, 때고 남는 대청, 쓰고 남는 소청'. 인천시 옹진군 사람들이 백령도와 대청도, 소청도의 섬 특징을 꼽아 설명하는 말이다. 이 얘기는 예전부터 전해왔다고 한다. 가장 큰 섬인 백령도엔 해산물은 물론이고 농산물까지 풍부하다. 사시사철 먹을 게 부족하지 않다. 백령도가 의외로 들판이 많은 형국이라면, 대청도는 온통 산이다. 땔감이 많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규모가 가장 작은 소청에도 두 섬보다 많은 게 있었는데, 바로 돈이란다. 그래서 '쓰고 남는 소청'이라고 했다는 것이다. 소청사람들이 왜 큰 섬 주민들보다도 유난히 돈을 많이 썼는지는 확실치 않다. 다만, 대외 경제활동이 두 섬보다 활발했었을 것이란 짐작만 할 뿐이다. 소청도에는 또 공부 잘하는 학생도 많았단다. 옹진군 첫 사법고시 합격생이 이 소청에서 나왔을 정도란다. 그 사시 합격생은 지금 인천지방검찰청 검사로 근무하고 있다.

   
▲ 소청도 해안가 절경.

관광객들이 소청도에서 맨 먼저 찾는 곳은 아마도 등대일 터이다. 소청도의 서해바다를 밝히는 불빛이다. 정식 명칭은 '인천지방해양항만청 소청도 항로표지 관리소'다. 등대 높이가 18.9나 된다. 2005년 5월부터 짓기 시작해 2006년 12월 준공했다고 한다. 34억원이 투입됐다. 소청도엔 원래 1908년에 세워진 높이 10짜리 등대가 있었다. 이 등대는 2006년 4월 7일까지 썼다고 한다. 옛 등대가 있던 자리엔 해시계도 함께 있었다.

등대를 지키던 문공배씨는 전망 좋은 곳을 여기저기 소개해 줬다. 낯선 사람과 이야기하는 것이 오랜만인 듯 말보따리가 풀리자 거침이 없었다. 등대에 서자 날 좋은 때에는 저 멀리 중국 땅까지 보일 것만 같았다. 문씨는 "소청도 서해 끝자락이 마치 거북바위 형상을 하고 있는데, 등대가 그 거북의 어깨 위에 있다"고 소개했다. 여객부두에서 이곳까지 몇 년 전에 도로포장을 했는데, 그 뒤로는 1년에 등대를 찾는 방문객이 2천여명이나 된다고 했다.

   
▲ 소청도 예동마을 전경.

면적 2.93㎢의 작은 섬 소청도에는 우리나라에 단 한 곳밖에 없다는 진귀한 게 있다. 섬 동쪽 끄트머리에 있는 '분바위 지대'다. 대리석이 띠모양을 이루어 밤에도 달이 뜬 것같이 보여 분바위라고 불린다고 한다. 학술적으로도 중요한 의미를 갖는 선캄브리아기의 스트로마톨라이트(Stromatolite)라는 이름의 특이한 암석구조라고 한다. 소청도 말고는 호주 서부 샤베크 해안에서 볼 수 있는 세계적으로도 희귀한 것이란다. 우리가 흔히 하는 말로는 대리석이 널려 있는 것이다.

일제 때부터 이곳에서는 대리석 반출이 있었다고 한다. 분바위를 배로 실어 나를 수 있는 크기로 자른 터와 배터도 있다. 이 배터가 소청도의 원래 포구였다는 '분암포'다. 지금도 그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40여 년 전에는 이곳에 '동양 대리석'이란 회사가 있었다고 한다. 근로자들에게 한 끼에 당시 돈으로 80원씩 받고 밥장사를 하는 주민도 있었다고 한다. 몇 년 동안 동양 대리석이 작업한 뒤로는 이 일대에 해병대와 해군이 주둔해 왔다고 한다. 뭍으로 참 오랫동안 여기서 대리석을 조달했던 듯싶다.

   
▲ 소청도 특산물인 삼식이를 건조하는 모습.

소청도에 돈이 많았던 것은 아마도 이런 대리석 회사가 예전부터 있었고, 또한 수산물이 많이 잡혔기 때문으로 보인다.

작년에 처음 공무원 생활을 시작했다는 대청면 소청출장소 직원 김동훈(32)씨는 "섬 생활을 하면서 좋은 점이 있다면 여유롭다는 것"이라고 했다. 김씨는 그러면서도 "한창 일을 배워야 할 시기에 그렇지 못한 점이 아쉽다"고 털어놨다. 김씨의 여자친구도 옹진군 자월도에서 공무원 생활을 한다고 한다. 소청출장소에는 김창원 소장과 2명의 직원이 근무한다.

소청도에도 대청도에서 볼 수 있었던 동백나무 자생지가 있는데, 대청도 것보다 더 컸다.

   
▲ 소청도를 찾는 낚시꾼들.

소청도에서는 정말 특별한 사람을 만났다.

나이 일흔에 초등학교 1학년에 다니는 김정자 할머니다. 대청초등학교 소청분교 1학년 1반 4번이라고 한다. 김 할머니는 올 초에 아들과 이야기하다가 얼떨결에 초등학교에 입학했다고 한다. 글자를 깨치지 못한 것을 못내 아쉬워하던 어머니의 마음을 아들이 달래준 것이리라.

"남들은 나이 70이 되어서 배워 뭐 하냐고 하기도 하는데, 내가 보니까 (배우지 않고 산 그동안의)70평생을 헛것으로 산 것 같아요."

김 할머니의 배움에 대한 열정은 대단했다. 입술이 부르터 있어 그 연유를 물었더니, 받아쓰기 연습 때문이라고 했다. 새벽 2시에 일어나 일기를 쓰고 받아쓰기 공부를 한단다.

   
▲ 1908년 초점등(석유백열등)된 소청도 등대. 지난 2007년 인천지방해양항만청이 40억원을 투입해 초현대식 등대로 새단장 했다. 섬의 서단 83m 산 정상에 19m높이로 등탑을 설치, 청정바다를 내려다 보고 있다.

"집에서 할 때는 100점인데, 선생님 앞에만 가면 60점이나 80점밖에 안 돼요. 어쩔 때는 40점, 20점짜리도 있고요. (시험 볼 때면)왜 이렇게 긴장이 되는 거예요." 막내 딸(38)보다도 담임 교사의 나이(35)가 어린데, 그 선생님 앞에만 서면 떨린다는 것이다. 김 할머니를 포함해 소청분교 학생은 모두 7명이라고 했다. 김 할머니는 2학년 박수빈(9)양에게서도 가끔 받아쓰기 '과외수업'을 받는다고 했다. "몸 아프지 않고 졸업했으면 더 바랄 게 없다"는 김 할머니. 그의 연필깎이는 고등학교 1학년 손녀가 사줬고, 공책은 작은 손주가 사줬단다. 김 할머니는 집 안방 벽에 고운 분홍색 가방을 걸어놓고 다닐 정도로 학용품을 애지중지했다.

한나절 둘러본 소청도는 참 많은 이야깃거리를 품고 있었다.

사진/임순석기자 seok@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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