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만에 다시찾은 섬

[경인일보 창간 48주년 기획 20년만에 다시찾은 섬]승봉도

한가로운 파도의 노래… 굴따는 아낙 '겨울살이' 위로…
   

   
겨울 섬은 고요하다. 시간이 멈춘 듯하다.

바다의 간조와 만조, 일정한 파도가 시간의 흐름을 알려줄 뿐이다.

겨울에는 섬 사람들이 온전하게 섬의 주인이 되는 때이다.



봄부터 가을까지 섬 사람들은 섬과 바다의 구경꾼이 된다.

여름을 정점으로 봄과 가을, 바다가 주는 시원함을 맛보기 위해 뭍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지기 때문이다.

   


봉황의 머리를 닮았다하여 이름 붙여진 승봉도(昇鳳島)의 겨울 풍경도 마찬가지다. 굴을 따는 일 외에는 뚜렷하게 손이 달릴만한 일도 없어 오붓하기까지 하다. 마침 섬을 찾았던 때가 설을 열흘 정도 남긴 시점이어서 시골에서 느낄 수 있는 '명절 가족 상봉'의 설렘과 기대감까지 푸근함이 짙게 남아 있었다.

'옛 정취 품에 안은 풍족한 마을'.

인천 앞바다의 섬을 소개하는 '섬·섬·섬' 시리즈가 경인일보에 연재되던 20년전, 당시 승봉도를 이렇게 표현했다.

"농토는 논밭을 포함해서 적게는 300여평에서 많게는 1만여평을 나눠 갖고 주민들이 생활했다. 농사일이 없을 때에는 김을 양식하거나 굴을 따고 배로 낚시꾼을 실어주기도 하며 살았다. 주민들의 소득이 다른 섬에 비해 낮은 편은 아닌 곳이다. 콘도 건설에 대한 섬 주민들의 기대감도 나타나 있다."

그럼 지금은….

   
▲ 승봉도 남대문바위.

승봉도는 인천에서 남서쪽으로 42㎞ 떨어진 군도(郡島) 중 하나로 연안부두에서 뱃길로 2시간 정도면 닿을 수 있는 섬이다. 면적 2.22㎢, 해안선 길이 9.5㎞인 승봉도는 자월도의 자도(子島)다. 행정구역은 옹진군 자월면 승봉리다.

전체적으로 구릉의 기복이 많으나, 중앙부는 분지가 발달해 농경지로 이용된다. 선착장 뒤편에는 소나무가 군락을 이루고 있고, 섬의 남쪽 백사장 뒤편에서 북동쪽으로 수령 20~30년의 곰솔이 우거져 있다.

승봉도는 전체 면적 중 10% 가량이 논과 밭이며, 전체 80가구에 201명(지난 연말 기준)이 거주중이다. 20년 전과 비교했을 때 농경지의 면적은 비슷하지만 인구는 20년전 290여명에서 3분의1 정도 감소했다. 교육 문제가 인구 감소의 주범이라고 주민들은 전한다. 학교라고는 인천 주안남초등학교 승봉분교 뿐이라 초등학교를 졸업한 학생들은 모두 인천으로 나가야하기 때문이다. 또 하나의 살림을 인천에 둘 수밖에 없는 이유다.

   
▲ 마을전경.

최근 승봉 주민 대부분은 농업에 종사하면서 바지락을 캐고 굴을 따는 맨손 어업과 외지 방문객을 위한 민박과 낚시배를 운영하는 관광업 등을 병행하고 있다.

농업은 논농사 위주다. 1년 농사면 섬 주민들이 5년간 먹을 쌀이 수확될 정도로 풍족하다. 섬의 노령화와 맞물려 손이 많이 가는 밭농사는 지을 수 없단다. 밭농사의 경우 밖으로 내다 파는 것이 아닌 자급하는 적은 규모로 짓는다.

20년전 새로운 소득 사업으로 시작했던 김 양식의 흔적이 사라진 것도 밭농사와 같은 맥락이다.

노인들이 많은 노동력을 요구하는 김양식을 감당할 수 없었던 것이다. 김의 가격이 10년전이나 지금이나 별로 차이가 나지 않는 것도 주민들이 김양식에서 손을 뗀 이유 중 하나로 꼽힌다.

   

종합해 보면 섬 주민들은 봄에 모를 심고 가을에 추수하는 것 외에 여름에 여행업을 하고 바지락을 캐고, 겨울엔 굴을 딴다.

선착장 옆 해안에서 굴을 따던 김명영(82·여)씨는 "물이 들어오지 않는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굴을 따는데, 하루에 2㎏ 정도 캔다"며 "젊고 잘 따는 사람들은 3㎏ 이상도 따는데, ㎏당 1만원을 받기 때문에 섬에서 하루 일당으로는 충분하다"고 말했다.

굴을 제외하고는 현재 섬의 전통적인 어업 소득원이 자취를 감추거나 쇠락의 길을 걷고 있다.

이같은 변화는 섬을 찾는 사람들의 발길이 빈번해진 것에서 원인을 찾아야 할 것 같다.

   
▲ 동양콘도미니엄.

승봉도는 서해 도서지역 유일한 콘도인 동양콘도(150실 규모)를 비롯해 섬 자체가 거대한 민박촌이라 할 수 있을 정도로 펜션과 민박집이 섬 곳곳에 자리를 잡고 있다. 선착장에서 이일레해수욕장으로 이어지는 길목에는 펜션과 민박집이 들어섰다.

황갑중(63) 승봉리장은 "주민들의 생각이 변했다. 힘들게 바지락과 굴을 캐봤자 하루에 몇 만원 벌지만, 가만히 앉아서 민박 손님 1명 받으면 4만~5만원을 쉽게 번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인터넷의 발달과 입소문을 탄 승봉도의 아름다움을 만끽하기 위해 섬을 찾는 관광객은 늘고 있다. 하지만 이같은 변화는 소득의 양극화라는 새로운 문제를 섬에 안겨주었다. 외지인들이 많은 돈을 들여 지은 고급형 펜션에 관광객들이 몰리면서 기존 가옥을 민박집으로 운영하는 원주민들의 상대적 박탈감이 크다는 것이다. 한 주민은 "고급 펜션과 경쟁하느라 무리하게 은행 대출을 받아 시설을 개선하다 어려움에 처한 주민도 있다"고 말했다.

   
▲ 이일레해수욕장.

섬이 도시화되면서 자본의 논리를 따르게 된 것은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어쨌거나 단순히 관광객 입장에서 볼때 승봉도는 가족과 함께 다녀오기에 더없이 좋은 곳이다.

아름다운 풍광에 해수욕·낚시 등 섬에서 할 수 있는 놀이 조건을 모두 갖추고 있는데다 물이 빠진 해안에선 바지락과 낙지·소라 등을 잡을 수 있어 해양체험 학습장으로도 손색이 없기 때문이다.

한겨울 승봉도에서 어렵게 만난 관광객 신정숙(54·여·경기도 안양시)씨는 "겨울방학을 맞은 아이들과 함께 2박3일 일정으로 승봉도를 찾았다"며 "생각보다 발전이 많이 됐지만, 고운 모래가 깔려 있는 이일레해수욕장과 울창한 소나무숲, 바위절벽 등의 경관과 조개를 캐는 등 해양체험 학습장으로도 훌륭하다"고 만족해했다.

사진/임순석기자 sseak@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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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준기자

kyj@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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