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인일보 창간 48주년 기획 20년만에 다시찾은 섬]풍도

선착장 중심 50여호 구릉따라 옹기종기 촌락 형성…

갈태웅 기자

발행일 2009-02-25 제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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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풍도와 인천을 오가는 제3 왕경호가 화물을 싣고서 풍도 앞바다를 힘차게 가르고 있다.

바닷물과 선착장만 아니면 호젓한 여느 산골 마을을 연상케 하는데 부족함이 없는 섬이었다. 접안시설 문턱에 자리한 승선대기소는 시골 버스정류장과 다름없었고, 물양장 앞에 붙들어 매놓은 어선들을 마주한 채 서 있는 안산단원경찰서 대부파출소 풍도분소는 경찰서라기보다는 동네 도서관이자 마을회관이었다.

   
풍요로운 섬, 풍도(豊島). 동해의 대표적인 섬 울릉도를 빼다박은 것처럼 하나의 거대한 바윗덩어리인 섬 전체가 온통 구릉으로 이뤄진 가운데 선착장을 중심으로 50여호의 가구가 옹기종기 촌락을 형성하고 있다. 산 중턱에서 접안시설까지 굵은 전깃줄을 내려놓은 해군 레이더기지 1개 소대를 제외하곤 온통 민박집과 식당, 그리고 섬내 유일한 교회와 복지회관(경로당) 뿐이다.

   

지난 18일 오후, 육상에서 그나마 가장 친숙(?)했던 경찰, 대부파출소 풍도분소의 문을 열고 풍도 주민들과의 첫 대면의 장을 열었다. 마침 전날 인사발령 통보를 받고 가족들과 한참 짐 정리에 여념이 없던 임유정 소장이 귀밑까지 덮는 털모자를 쓴 채 기자를 반갑게 맞았다. 이삿짐을 싸면서도 주민들과 연방 차와 담소를 나누는 그의 모습에서 외유내강형 생활치안상을 엿볼 수 있었다.

"섬 치고는 다소 규모가 있는 110여명 주민이 모여 살지만 범죄나 그 비슷한 사건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곳이 바로 풍도입니다. 밤새 어르신들 잘 주무셨는지, 조업은 잘 끝났는지, 구릉길은 별 이상이 없는 지가 풍도 치안의 최대 관건일 정도입니다." 2층 살림공간마저 마을 도서관으로 개방한 임 소장은 입도 2년만에 어느덧 반백의 풍도 주민이 다 돼 있었다.

   
임 소장의 안내로 직접 야생화 군락단지가 있는 산 중턱까지 오르면서 자칫 다시 한 번, 이 곳이 사면 전체가 바다로 둘러싸인 섬이란 사실을 망각할 뻔했다. 가가호호 경운기와 농기계, 비료 포대 등이 집 마당을 차지하고 있었고, 산비탈 밭을 가로지르는 시멘트 골목길은 마치 화성이나 평택의 한 시골마을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했다. 단지 굳게 잠겨 있는 경로당 문만이 생업에 바쁜 섬 주민 일상을 그대로 대변하고 있었다.

신라시대 당나라 장수 소정방이 심어놓고 갔다는, 야생화 군락지 입구임을 표시하는 은행나무 정자에 다다를 무렵, 안산시청 직원들과 함께 마을 지하수 관정 수질검사를 나온 김계환(67) 풍도동 이장을 만날 수 있었다. 140여명의 풍도·육도 주민 전체를 대표하는 막중한 이장직을 맡고 있는 만큼 그의 업무 자부심과 애향심은 남달랐다. 아마도 단 1가구를 제외한 전 주민이 토박이란 사실이 그의 책임감을 더욱 다지게 했는지 모른다.

"딱 10일만 늦게 왔어도 절정에 달하는 풍도 별천지 꽃잔치 전경을 보는 건데, 왜 이리 일찍 왔어"라며 기자를 타박(?)한 김 이장은 "충남 변산반도 야생화가 아무리 유명하다 해도 풍도 근처에도 미치지 못한다"며 자아도취에 가까운 고향 애착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그런 김 이장도 요즘 마을 식수 문제로 마음이 편치 않다. 1990년대 초부터 섬 뒤편에 파고들어온 석산이 그 원흉으로, 60t짜리 지하수 관정이 개설돼 있지만 깨끗한 물은 충분히 올라오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보다 못해 지난해 11월 안산시의 도움을 받아 각각 100t과 50t짜리 지하수 관정 2곳을 새로 뚫어 격월제로 물을 올리고 있지만 이번엔 소금기가 주민들의 혀를 괴롭히고 있다. 때문에 김 이장의 하루 일과는 온통 공구가방을 둘러멘 채 관정과 섬 지하수맥 곳곳을 누비는 일이다.

그토록 바쁜 김 이장이지만 동네 대표를 자부하는 일상을 반영하듯 이방인들을 친절히 야생화 군락단지로 안내해 줬다. 섬 어르신 대여섯분이 이미 꽃망울이 막 피어오르려는 꽃밭 주변에서 가시풀섶 넝쿨을 다듬느라 분주한 모습이었다. 노루귀, 복수초, 꿩의 바람꽃, 변산바람꽃 등 풍도의 각종 희귀 야생화들이 전국적인 입소문을 타고 있는데다 늘그막에 일터가 부족한 마을 어르신들의 품을 위해 시에서 1천만원을 들여 노인소득사업을 마련해 준 덕분이다.

인근 육도와 달리 갯벌이 없고 수심만 깊어 굴과 바지락같은 패류도 캘 수 없고, 어업 인구 6가구와 민박집 7가구에 불과한 이 곳 풍도에서 하루 5만원의 벌이는 최대 수입원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인천에 나가 있는 세 자녀들이 보내주는 돈으로 근근이 생계를 이어나간다"는 강봉환(79)씨는 "갯바위 낚시꾼 뿐인 진장수리해변에 하루빨리 해수욕장이라도 하나 조성돼 여름 피서객이라도 유치했으면 하는 게 섬 주민들의 소박한 바람"이라며 깊게 파인 눈가 주름살 속 땀방울을 훔쳤다.

   
충남 당진에서 뱃길로 20여분, 여기까지 온 김에 풍도 최고의 젊은 집, 대남초등학교 풍도분교를 가보지 않을 수 없었다. 바다를 앞마당처럼 끼고 앉은 2층짜리 아담한 건물 앞 단상에는 여느 학교에서나 볼 수 있는 태극기가 힘차게 휘날리고 있었고, 운동장 건너편에는 김수(39·분교장) 선생님과 여환선(48·여) 선생님이 지내는 관사까지 마련돼 있다. 하지만 아쉽게도 전교생은 단 3명, 이마저도 임유정 풍도분소장의 딸 다예(9)양이 뭍으로 나가게 되면 2명으로 줄어들게 된다.

이처럼 잔잔하고도 여유로운 섬, 풍도에도 골칫덩이가 하나 있다. 식수난의 주범이었던 석산 문제가 여전히 해결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해안선 나무블록을 따라 30여분을 걸으면 나타나는 최대 170m 높이의 거대한 석산은 지난 10여년 동안 이 곳 풍도의 아름다운 풍광을 여지없이 깨뜨려놓고 말았다. 이미 2004년 채석 허가가 끝난 석산 입구엔 대형 덤프트럭과 굴삭기 등도 녹슨 채 방치돼 있어 주민들의 마음을 더욱 어둡게 만들고 있다. 게다가 복구가 이뤄진다 하더라도 제2의 섬 파괴가 불가피할 것이라는 걱정도 좀처럼 지울 수가 없다.

마치 청일전쟁 시절의 풍도해전을 연상케 한다는 석산 채석장. 그럼에도 섬 기암괴석과 해안가를 타고 올라 길게 섬 전체에 늘어뜨려진 풍도 오후의 낙조는 가히 일품이었다. 사람의 욕심이 닿고, 넉넉잖은 살림살이에 수차례 애환이 거쳐 갔어도 풍도는 여전히 서해의 아름다운 섬이었다. 그게 바로 풍요로운 섬, 풍도였다.

사진/김종택기자 jongtaek@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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