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인물 100人·19] 박세림 제자 '청람' 전도진

"스승 서예세계 대전으로 옮겨져 인천 스스로 거목 푸대접 아쉬움"

김장훈 기자

발행일 2005-03-03 제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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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천은 스스로 대한 민국 서예계를 이근 거목을 버린 것입니다. 역사가 판단할 것이며 후세가 비웃을 일입니다."

   청람 전도진(58·서예·전각가·사진)은 "스승의 서예 삶이 고향 인천으로부터 버림받고 대전으로 옮겨졌다는 소식을 듣고 분통이 터져 몇날 며칠 동안 잠을 이루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는 "시절이 지나고 사람이 잊혀진다지만 역사를 버려서는 안된다"면서 "선생님의 일생은 인천의 역사인 동시에 인천 서예계의 발전과정을 보여주는 증거"라고 말했다.

   청람이 이처럼 분통을 터뜨리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그는 동정 박세림과 깊은 인연을 갖고 있다. 청람은 고등학교 다닐 무렵 동정과 처음 만났다.

   "중구 관동, 지금의 중구청 자리에 동정서숙이 있었어요. 무작정 붓글씨를 배우겠다고 이곳을 찾았고 당시 선생님은 당대 최고의 서예가 였습니다." 그는 또 "선생님은 185cm의 장신에 몸무게도 90kg이 넘는 거구였다"면서 "기골이 장대한 사내라고 표현하는 게 맞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항상 예를 중시하고 노력하는 진정한 예술인이었다"고 덧붙였다.

   청람은 늘 동정과 함께 했다.

   여름철 산사를 찾을 때는 묵동(墨童)으로 함께했고 동정이 마지막 예술혼을 펼치기 위해 서울행을 택했을 때도 함깨 했다.

   그러기에 스승의 자취는 청람에게는 너무나도 소중한 것이다.

   그는 "선생님의 가르침은 아직도 내 예술세계의 버팀목으로 존재하고 있다"고 말했다.

   청람은 다른 면으로 생각하면 스승의 서계가 대전으로 옮겨진 것이 오히려 잘된 일일지도 모른다고 했다.

   그는 "수많은 예술가의 작품과 유품이 지역에서 버림받은 채 종적을 감췄다"면서 "문화·예술인이 대접받지 못하는 지역이라면 오히려 대접받는 곳에 스승의 자취를 남기는 편이 나을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김장훈기자·cooldude@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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