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인일보 창간 48주년 기획 20년만에 다시찾은 섬]육도

팍팍한 섬살이 지켜낸 세월앞에 그리움 밀물치다

김선회 기자

발행일 2009-03-04 제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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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산시 대부동. 대부동 끝쪽에 있는 탄도선착장에서 배를 타고 바닷길을 따라 한 시간여를 달리면 올망졸망한 섬들이 마주보고 섰는데, 그 섬이 여섯개라 섬 이름이 육도(六道)다. 이곳의 행정구역 명칭을 정확히 따지자면 안산시 단원구 대부동 제20통 4반이다. 20통 1~3반은 바로 풍도라는 모(母)섬이 차지하고 있다. 육도는 원래 43㎞나 떨어진 인천시 옹진군에 소속돼 있다가 1994년도에 16㎞ 떨어진 안산시에 편입됐다.

   
▲ 아름다운 절경을 간직한 안산시 대부동 육도 해변에는 햇살에 반짝이는 조약돌과 갯바위가 함께 어우러져 장관을 이루고 있다.

# 여섯 형제로 이뤄진 섬 육도

   
북으로부터 말육도~종육도~육도(본육도)~중육도~무르여~미육도가 한 줄로 늘어서 있다. 본육도를 빼고는 모두 무인도다. 흔히 육도라고 하면 6개의 섬을 가리키기보다는 바로 이 본육도만을 일컫는다. 그런데 다들 '도'자로 끝나는데 '여'자로 끝나는 무르여는 무엇인가. 나무나 풀 등 식물이 살지 않고 바위로만 이루어진 섬을 순우리말로 '여'라고 한다. 간혹 서(嶼)라는 한자어를 붙이는 때도 있다. 섬의 면적은 0.13㎢, 해안선 길이 3㎞ 가량에 불과한 작은 섬에는 29가구, 남자 24명 여자 18명 등 총 42명의 주민이 사는 것으로 돼있다. 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서류상 통계이고 실제로는 30여명이 거주하고 있다. 여느 낙도와 마찬가지로 대부분 노인들만 남았고 젊은이들은 모두 육지로 나갔다. 주민들 평균 나이는 60세가 훨씬 넘는다. 섬에는 학교시설이 전무하다. 1960년 6월 개교한 대남초등학교 육도분교가 있었으나 27명의 졸업생을 남기고 1990년 4월 문을 닫았다.

이 작은 외딴섬에 볼만한 게 뭐 있으랴 싶지만 그게 아니다. 1시간이면 섬 한바퀴를 돌 수 있다. 선착장을 지나 소나무 숲이 보이는 곳으로 걸어가면 70m정도 밖에 안되는 산 정상에 곧 다다를 수 있다. 여기서 발 아래로 바다를 굽어보면 서해라고 믿어지지 않을 만큼 맑고 짙푸른 바다는 바닥까지 훤히 비치고, 낭떠러지 아래 바위틈을 때리며 부서지는 하얀 파도는 삶의 찌든 때와 아픔, 심지어 이루지 못할 그리움까지 한줌에 날려버릴 듯 신명나는 춤사위를 한바탕 벌인다. 때마침 썰물이라 열린 북쪽 해안으로 돌아서자 갯바위들이 층층이 쌓여 진경을 연출한다.

   

# 육도의 상징물 육도교회

최근 육도는 굴과 바지락 채취가 가능하고 고기잡이까지 가능해 가족나들이 코스로 각광받고 있다. 더구나 염분이 전혀없고 각종 미네랄이 풍부하게 함유된 샘물이 솟고 있어 휴양을 위해 이곳에다 별장을 짓고 생활하는 외지인들이 늘고 있다.

섬 안에는 '육도쉼터'라고 부르는 2층짜리 아담한 민박집이 있다. 콘도식으로 지어진 민박집이라 편의시설이 잘 갖춰져 있다. 관광객을 위해 여름 한철에만 문을 연다는 '육도슈퍼'도 보인다. 그러나 뭐니뭐니 해도 육도의 상징물은 역시 '육도교회'다.

육도교회는 21년전 이용준(77) 목사와 임옥임(65) 사모가 이곳에 정착한 후 현재까지 운영되고 있다. 30여명의 주민중 정기적으로 교회를 찾는 인원은 10명내외. 걷히는 헌금도 거의 없는 실정이다. 헌금이 거의 없다보니 목사와 사모도 직접 일을 해야 생활을 할 수있다. 그런데 추운 겨울날 이 목사는 땔감으로 쓸 나무를 하러 갔다가 찬바람을 맞은 뒤 동상과 혈압으로 몸져 누워있다. 사모는 굴과 바지락을 캐다가 손에 관절염이 걸려서 붕대를 친친 감고 있었다. 도시에 살다 섬에서 사는 게 불편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임 사모는 이렇게 대답했다. "섬에서 살면 생활비가 많이 들지는 않아요. 자식들이 좀 보태주기도 하고…. 단, 섬에는 땔감이 특히 부족해요. 이곳은 주로 나무보일러로 난방을 하는데 목사님이 나무를 하러 갔다가 그만 병이 났지 뭐예요. 그리고 여기서는 80 먹은 할머니도 바지락을 캐서 생활해야 합니다. 몸은 좀 힘들어도 하나님이 주신 사명이라고 생각하고 교회를 지키고 있습니다."

# 육도를 지키는 사람들

   
길을 걷다 한 주민을 만났다. 30여년 전 낚시를 하기위해 우연히 이곳에 들렀다가 섬의 절경에 반해 정착하게 됐다는 차모(81)씨는 그 당시만 해도 섬에는 여섯집밖에 없었다고 했다. "옛날에는 아침저녁으로 하루 두 차례 30분씩밖에 전화가 안 통했어. 태양열발전소도 2001년에 세워졌고 그 전에는 자가 발전으로 겨우 불을 밝혔지. 불편했지만 그때가 더 마음 편했던 것 같아."

그러나 그는 요즘 신경 쓸 일이 좀 많아졌다고 했다. "고기가 많다는 소문이 났는지 인천 같은 데서 대형 낚싯배가 와서 바다를 오염시키고 잠깐 섬 둘러보고 쓰레기만 잔뜩 늘어놓고가질 않나…." 달갑지 않은 불청객 탓에 우럭, 놀래미, 숭어 등 그 많은 고기들의 씨가 마르지는 않을까 걱정하는 기색도 엿보였다. 차씨는 어떻게 돈을 벌어 생활을 할까. 그 역시 겨울에는 굴을 채취하고 봄부터는 바지락을 캔다고 했다. "여기 전복 좋아. 섬사람들이 종패(씨조개)를 심으면 외지 해녀들이 와서 전복을 따요. 그럼 반반으로 나누는 거지. 굴은 갯벌에서 얼마든지 찍을 수 있어." 그의 설명이 재밌다. 굴은 '찍는' 것이고 조개는 '캐는' 것이란다.

이곳이 고향이라는 배영배(65) 반장은 부천에 있는 학교에서 기술직원으로 오랫동안 근무했다고 한다. 자식들 대학공부시키고 시집장가까지 보내놓고나서 그는 이곳에서 여생을 보내기로 결심했다. 왜 그는 섬으로 다시 돌아왔을까.

"섬은 조용하고 공기도 좋지요. 하지만 무엇보다 고향이기 때문에 다시 돌아왔죠. 섬으로 오가는 배가 하루에 한번밖에 없어서 아프면 조금 불편해요. 그때는 모터보트를 불러서 콜택시처럼 이용하기도 하죠. 허허…."

# 아름다움을 간직한 섬으로 남길 기대하며

   
육도주민들의 생활을 돌아보면 상황은 암담하기만 하다. 아름다운 자연환경을 갖고 있긴 하지만 불편함을 감수하며 억척스럽게 사는 그들의 모습은 도시사람의 눈으로 보기엔 좀처럼 이해하기 어려웠다. 또한 멋진 펜션과 민박집들이 늘어가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외지인들의 몫이고 오히려 그로인해 섬사람들이 불편을 겪지는 않을까 걱정이 됐다.

다시 해변으로 나갔다. 햇살에 반짝이는 조약돌이 하나같이 예쁘장하다. 공깃돌로 딱 알맞은 놈, 수저 밑받침하기 좋은 놈, 도마로 쓰기에 그만인 놈, 장식용 수석으로 제격인 놈 등 저마다 가지각색이다. 그러나 해변 주위의 풀섶에는 여름철 피서객들이 버리고간 쓰레기 더미가 뒹굴고 있었다. 가족들끼리 와서 아무 방해받지 않고 며칠 쉬었다 가면 딱 좋을 이 섬. 아름다운 절경을 간직한 이곳이 더이상 훼손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사진/김종택기자 jongtaek@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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