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인천의 황금어시장을 찾아서·16]민어떼가 몰려오면 덕적 바다가 온통 뻘겠다

섬과 바다 마주하고 펄떡펄떡 뛰는 추억… 옛 포구의 영화

경인일보

발행일 2009-06-24 제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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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 중턱까지 집들이 꽉 들어찬 1960년대 후반 북리 마을(작자 미상).
# 덕적도 어업의 중심 북리

덕적도에는 배가 드나드는 포구가 여러 곳이다. 도우, 서포리, 진리, 북리 등. 이들 포구 중에서도 황해가 황금어장이었을 때 덕적도 어업의 중심은 단연 북리였다. 북리 포구는 작은 쑥개에 있다. 북리 마을의 서북쪽에 덕적도 주산인 국수봉이 있다. 국수봉 아래 작은 쑥개와 큰 쑥개 사이 바다는 U자형의 만을 이루고 있어 배들이 피항하기 좋다. 수심이 깊지 않고 조수간만의 차가 크다는 단점이 있지만 만조시에는 수백 척의 어선이 정박할 수 있다.

   
작은 쑥개, 폐가가 된 옛 선주 집 마당으로 들어선다. 문짝은 떨어져 나가고 쓰다 버린 가구들이 나뒹구는 빈집은 쓸쓸하다. ㄷ자 한옥은 선주 가족이 살던 본채였을 것이다. 북리 선주 집을 상징하는 2층집은 문간채 옆에 서 있다. 2층집은 덕적도 북리에만 있는 부의 상징이었다. 2층은 전체가 하나의 넓은 방이다. 사방에 유리창을 달았고 각 방향마다 두 개씩의 창문을 넣어 어느 방향이나 전망이 탁 트였다. 선주는 이곳 마루에 앉아 북리 항으로 들어오는 자신의 배를 기다렸다. 만선의 북소리가 울리면 마질주(맞이술)를 준비하도록 지시하고 잔치를 서둘렀다. 먼지에 찌든 마루 한 쪽에는 엉킨 그물이 겹겹이 쌓여 있다. 면사(綿絲) 그물. 연평도에서도 보지 못한 면사 그물이 덕적도에 남아 있다. 손으로 한 땀 한 땀 짜서 만든 그물, 저 그물은 이미 문화재다. 경기만 연안의 섬들 어디에도 없고 오직 덕적도 북리에만 있는 이런 형태의 2층 선주 집 역시 어업문화재로서 가치가 크다. 이 집의 주인은 북리 선주 소창모씨였다. 한창 때는 4~5척의 어선을 소유한 큰 선주였다. 그는 어업 활동으로 번 자본을 투자해 인천에서 극장까지 운영했었다.

북리 마을 구석구석에는 과거 영화롭던 시절의 흔적이 남았다. 작은 섬 마을에 다닥다닥 붙여 지은 집과 골목길이 남아 있다는 것은 과거의 번영을 나타낸다. 작은 포구에 하나의 해상 도시가 세워졌다가 사라져 버렸다. 폐허는 상처가 아니라 영화롭던 시대의 기록이다. 파시 때 외지에서 온 선원들을 먹이고 재우던 여관들도 모두 문을 닫았고 주점들은 폐업한 지 오래다. 유정여관은 나무 간판이라도 남았으나 다방과 색주가는 흔적도 없다. 펄펄 끓던 공중목욕탕의 물도 식은 지 오래다.

   
▲ 신포동 민어 골목에서 건조 중인 조기와 민어알.

# 복달임에 민어탕은 일품, 도미찜은 이품, 보신탕은 하품

민어(民魚)는 농어목 민어과 민어속의 난류성 어류다. 민어는 갯벌 바다에서 산다. 낮에는 깊은 바다 속에 있다가 밤이면 수면으로 이동하는 습성이 있다. 새우류를 특히 좋아한다. 새우어장으로도 유명했던 덕적 바다에 민어가 많았던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지금이야 워낙 귀한 고급 어종이 됐지만 민어는 이름처럼 옛날에는 백성들이 즐겨 먹던 물고기다. 민어 중에서도 여름에 잡히는 것이 가장 기름지고 맛있다. 민어는 지역이나 그 크기에 따라 이름도 제각각이었다. 전남지방에서는 가장 큰 민어를 개우치라 했고, 법성포에서는 30㎝ 내외를 홍치, 완도에서는 작은 것을 불퉁거리라 불렀다. 서울이나 인천에서는 두 뼘 미만의 것을 보굴치, 세 뼘 내외는 어스레기, 네 뼘 이상만을 민어라 했다. '자산어보'에도 민어의 특징이 상세하게 그려져 있다.

"큰 놈은 길이가 4~5척에 달한다. 몸은 약간 둥글고 빛깔은 황백색이며 등은 청흑색이다. 비늘과 입이 크고 맛은 담담하면서도 달아서 날 것으로 먹으나 익혀 먹으나 다 좋고 말린 것은 더욱 몸에 좋다. 부레는 아교를 만든다."

<자산어보>민어는 제사상이나 잔칫상에 가장 많이 오르는 물고기였다. 회나 탕, 구이뿐만 아니라 포, 알포, 알젓으로도 명성이 높았다. 자산어보의 기록처럼 지방이 적고 단백질 함량이 많아서 맛이 담백하다. 서울, 경기 지방에서는 복날 민어탕으로 복달임을 했던 전통이 있었다. 복달임에 민어탕은 일품, 도미찜은 이품, 보신탕은 하품으로 쳤다. 민어는 쓸개를 빼고는 버릴 것이 하나도 없다. 민어는 머리 살과 껍질의 맛이 특히 뛰어난데 껍질은 데치거나 날로 먹기도 한다. 민어 껍질의 뛰어난 맛은 "민어 껍질에 밥 싸먹다 논밭 다 팔았다"는 식담을 만들기도 했다.

옛날 민어 부레는 부레풀을 만드는 재료로 썼다. 지금 남아 있는 고가구들 대부분은 접착제로 민어풀을 사용했다. 부레는 속에 소를 채워 순대로 만들어 먹기도 했다. 또 부레는 생으로 먹거나 약재로도 이용됐다. 아이들의 발육과 노인, 환자에게 특히 효과가 크다고 한다. 참조기와는 달리 민어는 알이 찬 암컷보다 수컷을 더 귀하게 친다. 알 밴 암컷은 알이 워낙 커서 살이 적고 살 속의 기름기가 빠져 맛이 없다. 민어는 활어보다 선어가 맛이 뛰어나다. 대부분 잡히는대로 피를 빼서 얼음에 저장한 뒤 선어로 먹는다. 얼리면 민어 특유의 맛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대체로 어류의 맛은 아미노산의 양에 따라 결정된다. 어류는 사후 일정한 시간이 지나 강직도가 떨어졌을 때 아미노산의 양이 가장 많다. 이때가 가장 맛이 좋다. 활어는 바로 잡으면 사후 강직 탓에 맛이 덜하다.

민어는 조기처럼 군단으로 몰려다녔다. 민어떼가 몰려들면 "뻘건 민어의 등이 물에 비쳐서 덕적 바다가 온통 뻘겠다" "민어는 개구리처럼 우는데 톱을 갖춰서 (떼로 함께)왁왁왁 울어대니 귀가 아프고 민어 소리 때문에 시끄러워서 낮에는 잠을 잘 수 없을 정도"였다. 민어의 울음은 산란철에 암수가 서로를 부르는 소리다. 어부들에게 민어는 성질이 순한 물고기로 알려져 있다. 다른 물고기들은 그물을 걷어 올리면 도망치려고 발버둥을 치고 튀어 오르는데 민어는 체념한 듯 가만히 있다. 그래서 어부들은 그런 민어가 '순하다'고 표현한다. 하지만 그것은 민어의 성질이 순해서가 아니다. 다른 어류에 비해 부레가 큰 까닭에 그물에 걸리면 수압 때문에 부레로 바람이 들어가 다시 바다 속으로 들어가지 못한다. 민어가 그물에 많이 걸리면 그물이 떠오르는 것도 그 때문이다. 부레에 바람이 차서 못 움직이는 것을 민어가 성질이 온순하다고 한 것이다. 바늘로 가스를 빼 주면 재빠르게 도망쳐 버린다.

   
글·사진/강제윤 (시인·'섬을 걷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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