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인천의 황금어시장을 찾아서·27]소래포구 대동굿은 사라지고 교회에서 출어예배

관광신도니 토착신 '용왕님의 귀환'

경인일보

발행일 2009-09-30 제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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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음전 만신의 신당
[경인일보=글·사진/강제윤 (시인·'섬을 걷다' 저자)]

# 축제마당의 호객꾼이 된 슬픈 토착 신들

소래포구에도 오랫동안 풍어굿이 있었다. 하지만 과학기술의 발달은 소래포구에서 풍어굿을 사라지게 만들었다. 과학기술의 위력 앞에서는 어업의 신인 임경업 장군이나 용왕도 기를 펼 수 없었다. 사람들은 더 이상 이들을 찾지 않을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어느 순간 다시 토착신들이 화려하게 귀환했다. 신들을 부른 것은 풍랑의 위협이 아니었다. 관광산업. 섬이나 어촌으로 관광객들이 몰려오면서 토착 신들도 새롭게 부활하고 있다. 소래포구 축제에 풍어굿이 포함되면서 소래의 신들도 돌아왔다. 그러나 그들은 풍어굿의 제물을 받아먹는 신이지만 이제 더 이상 어업의 신이 아니다. 관광의 신이다. 풍랑을 잠재우거나 풍어의 능력을 상실한 신들. 축제 마당의 배우가 된 신들. 포구의 신들은 축제 때만 잠깐 관광객을 부르는 호객꾼으로 전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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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러스트/박성현기자 pssh0911@kyeongin.com

# 안음전 만신, 선주 집 며느리에서 무교의 사제로

오랜 세월 소래포구 풍어굿을 주관했던 사람은 안음전(81) 만신이다. 만신은 황해도 연백에서 시집살이를 하던 중 22살에 첫 신 내림을 경험했다. 한국전쟁 때 피란 내려와 소래에 정착한 새댁은 노량진의 우주옥 선생을 신어미로 모시고 내림굿을 한 뒤 만신이 됐다. 만신은 신당에 연평바다 임경업 장군을 주신으로 삼고 일월성신, 단군님, 옥황상제님, 만성수, 아미타부처님, 관음보살님 등의 신을 함께 모셨다.

만신 집안에서 배를 부리면서 만신은 정초가 되면 뱃고사를 올렸다. 그것을 보고 동네 사람들이 하나 둘 뱃고사를 부탁해 왔다. 그 후로 마을 대동굿도 모시게 됐다. 나중에는 선착장 한 가운데서 굿을 했다. 만신 집안의 배에서 굿을 할 때는 앉은굿을 했지만 대동굿을 하면서는 선굿을 했다. 일어나서 하는 큰 굿판을 벌이게 된 것이다. 작두도 타고 공수도 내렸다. 소래의 산만이 아니라 천하명산의 신령님네를 다 불러서 축원을 드렸다. 징, 상장구, 북, 피리 등 5명의 재비와 신딸들을 데리고 굿을 했다. 황해도 굿은 본디 24 거리 굿이지만 모든 거리를 다하지는 못했다. 그래도 인시(새벽 4~6시)에 시작된 굿은 밤 8시가 돼서야 끝났다. 만신은 대동굿이 끝난 뒤에도 신당으로 돌아와 징, 장구를 치면서 사흘 동안 치성을 더 드려야 했다. 그래야 온전한 대동굿이 완성됐다. 그 후 만신은 전국 각지로 안 불려 다닌 곳이 없었다. 극장 무대에도 섰다. 사람들은 황해도 굿을 제일 좋아했다. 연희적 성격이 강해 타령도 하고 만신들도 신명을 다해서 굿을 했기 때문이다. 만신은 54년 동안이나 굿을 하며 살았다. 안음전 만신이 주관하던 풍어굿은 사라지고 이제 가을의 소래포구 축제 때면 김금화 만신이 와서 풍어굿을 주관한다.

# "기독교의 하나님이나 옥황상제님이나 다 같은 하느님"

소래에서 대동굿이 사라진 것은 1995년 무렵이다. 2004년, 안음전 만신이 은퇴하기 전에 이미 소래의 대동굿은 사라졌다. 포구에서 대동굿이 사라진 것은 교회의 영향이 크다. 하지만 풍어굿이 아주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교회가 풍어굿을 흡수했다. 주관자가 무당에서 목사로 바뀌었을 뿐 풍어굿은 계속된다. 요즈음에도 해마다 출어 전에 소래포구 어민들은 논현 감리교회에서 출어 예배를 드린다. 또 어촌계 공판장에서도 출어 예배를 드린다. 소래포구 350여명의 선주 중에 기독교 신자가 150명으로 가장 많고 무속신앙은 50명 남짓, 나머지는 무신론자들이다. 토착 신앙을 대신해 소래포구의 주도적인 신앙이 된 기독교의 출어 예배는 지역의 큰 행사가 됐다.

어선들은 그해 첫 출어 때나 설, 대보름이면 깃발을 달고 출항한다. 무속신앙이 있는 선주들은 뱃머리에 임경업 장군기를 달고 배 가운데는 오색기를 단다. 배 후미에는 위 상(上)자가 새겨진 깃발을 단다. 하지만 기독교인들은 임장군기나 오색기를 달지 않는다. 그래도 상기 비슷한 것을 다는데 깃 폭에는 상(上)자 대신 십자가를 그려 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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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음전 만신

소래에는 배를 타는데도 금기 같은 것이 많지 않았다. 여성들과 관련된 금기가 많은 타 지역과는 달리 소래에서는 1970년대부터 여자들도 함께 배를 타고 조업에 나갔다. 전국 각지에서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들어 형성된 어촌이기에 다들 관습의 제약에서 자유로웠던 까닭이다. 팔순의 안음전 만신은 여전히 정신이 맑다. 포구를 점령한 외래 종교에 대해서도 관용적이다. 타종교에 배타적이지 않은 토착종교의 포용력을 보여준다. 만신은 모든 신앙은 본질적으로 다 하느님을 믿는 것이라며 종교 간의 화해와 상생을 촉구한다. 그것은 종교인들 만이 아니라 이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이들에게 전하는 메시지이기도 하다.

"하느님 안 믿는 신앙은 없어요. 부르는 이름만 다르지 다 똑같아요. 기독교의 하나님이나 옥황상제님이나 같은 분이에요. 다 같은 하느님을 믿는 거예요. 서로 한 집안 같이 의지해 가면서 지내야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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