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수복과 떠나는 즐거운산행

[송수복과 떠나는 즐거운 산행]강원 평창 강릉 선자령

순백의 대지위 펼쳐진 '눈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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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국(雪國)의 땅, 봄은 오려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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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일보=송수복 객원기자]횡계IC에 가까워오자 급격히 주변 풍경이 변한다. 다른 세상으로 나온 듯하다. 지난주만 해도 봄이 코앞이라 성급한 청춘들이 반팔을 불사했는데 전국적으로 눈이 내리는 상황이 연출됐다. 평창을 지날 때만 해도 별반 다를 것 없던 풍경이 횡계에 접어들자 전혀 다르게 펼쳐진다. 마치 옷장 문을 열고 들어가면 전혀 다른 세계인 '나니아'라는 마법의 세상으로 들어가는 것처럼. 위대한 사자 아슬란이 창조한 '나니아'로 들어서는 순간 영혼이 있는 나무들을 만나듯 신비로운 자연을 만난다. 마녀에 의해 지속되는 겨울. 누군가에 의해 마법은 중지돼야 하고 정의가 승리한다는 전제에서 시작하는 옷장속 전쟁이 한창인 이곳 선자령은 누구를 기다리는 것인가. '정의가 승리한다'는 지극히 평범한 명제가 실현되는 과정을 증명해 보이는 힘은 우리가 사는 이땅에선 결국 자연일 게다. 우리네 인생은 봄이 온다는 희망과 믿음으로 추위를 이겨내고 삶을 지속해가는 게 아닐까.

■ 봅슬레이 경기장같은 등산로

황태덕장에서 풍기는 비릿한 내음이 차창을 열기 무섭게 들어온다. 횡계IC를 나오자마자 나타나는 덕장을 구경하기 위해선 조금의 용기가 필요한 이유다. 온통 순백의 대지와 점점으로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무수한 눈송이들이 끊임없이 이어지기에 도로 사정은 갈수록 태산이다. 대관령으로 가는 길조차 힘겹기는 마찬가지. 비틀거리는 차량이 겨우 도착한 양떼목장 입구에 내려 배낭을 멘다. 국사성황당 입구까지 걸으며 "왜 왔을까"하는 후회가 여러 번 뇌리에 스친다. 등산화를 덮은 눈덩이들이 무겁다. 국사성황당 갈림길까지 오는 동안 만난 두어명의 등산객들이 되돌아가는 중이라며 선자령까지 가는 길이 쉽지 않을거라 걱정해 준다.



평상시 평탄하고 널찍한 길이 아니라 봅슬레이 경주로 같은 외길이다. 차라리 좁은 통로에 가깝다. 발밑으로 족히 1m는 눈이 쌓였을 법하고 등산로 옆으로 허벅지까지 차오른 외길에서 사람을 만난다는 건 차라리 눈밭에 굴렀다 나오길 기대하는 것과 같다. 비스듬히 비껴선 채 마주오던 사람들을 보내기엔 다소 부족함이 있기에 오른발을 길 밖으로 내어본다.

"허걱" 비명도 아닌 놀람에 숨이 멎는다. 허리까지 빠진 몸을 다시 빼오는데 한참이 걸렸다. 저 무게를 어찌 버티고 있나 싶은 나무들의 힘겨움이 느껴지는 숲길을 지나 전망대가 있는 갈림길에서 주저없이 좌측으로 우회한다. "좌파가 분명해…. 저 봐 좌측길로 가잖여." "그럼 돌아올 때 우측길이 되는데 그럼 우파로 변절한단 말인가?" 출발할 때부터 줄곧 뒤따라오던 두 등산객들이 필자를 보고 한 농담이 씁쓸한 현실을 반영하는듯 결국 한 길로 합류되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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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풍한설(北風寒雪)이 두려운 만주벌판과 같은 선자령?

깊게 파인 발자취 위로 다시 눈이 쌓여 발목을 덮는다. 발걸음이 더뎌지고 숨도 가빠온다. 머리와 배낭위에 쌓인 눈을 털어가며 걸어도 곧 다시 덮이는 눈으로 인해 몸도 무거워져 간다. 숲길을 빠져 나와 능선에 서니 우려하던 바람이 사정없이 얼굴을 강타한다. 눈송이가 얼굴을 때리고 눈을 뜨기 힘들어 고글을 꺼내고 마스크로 얼굴을 가리고 나서야 안정을 찾는다. 아름다운 계곡에서 선녀들이 아이들을 데리고 놀러와 목욕을 즐겼다는 유래에서 붙은 선자령. 이곳의 겨울산행은 등산장비를 얼마나 잘 갖췄느냐에 따라 기쁨이 되기도 하고 고통이 되기도 한다.

겨울산행에 스패츠없이 면바지를 입고 와선 낭패를 겪는 일이 종종 있지만 아쉽게도 관광지일 뿐 계도하는 인력이 없기에 스스로 준비해 산행해야 한다. 매서운 겨울바람이 쉼없이 불어대는 탓에 저체온증에 걸리지 않게 옷을 껴입어야하고 신체의 일부분이라도 노출이 되면 상당한 고통을 겪는다. 물론 바람이 불지 않는다면 문제될 건 없다.

하지만 준비만큼은 하고 가자. 어느 때 바람이 불어닥칠지 아무도 모르는 일이니. 2시간 30여분만에 선 선자령 정상은 한적하고 을씨년스럽기 그지 없다. 새봉을 지나면서 전망이 좋기로 손에 꼽는 곳인데 눈보라에 막혀 아무 것도 볼 수 없는 상태다. 맑은 날이면 백두대간의 준령과 내륙으로는 계방산, 백덕산 등이 보이고 고개를 돌리면 동해바다의 푸른 빛을 담은 바람이 이마에 맺힌 땀방울을 닦아주는 곳이다. 하산길로 이용되는 곤신봉~보현사 방향의 길이 막혔다. 초막골도 흔적이 희미해진 상태여서 원점 회귀하기로 하고 발길을 돌리니 바람이 더욱 거세지고 있다.

러시아의 대문호 톨스토이의 '부활'에 등장하는 '네흘류도프'가 자신의 과오를 뉘우치며 '카츄샤 마슬로바'의 뒤를 쫓다 시베리아 벌판에서 마주친 눈보라가 떠오른다. 모든 부귀영화를 포기하면서까지 자신의 신념과 의지에 따라 걷던 길이 이런 길이 아니었을까. 결국 '네흘류도프'의 끊임없는 노력으로 '카츄샤'가 석방되었듯이 고난을 이겨내는 것은 결국 자신의 의지인 것이다. 춥고 어려운 시절을 견뎌낼 의지만 있다면 자신만의 새 세계를 열어 갈 수 있을거란 생각을 하며 걷다보니 어느새 대관령이다. 겨울은 지나갈 것이다. 계절이 그러하듯 우리네 사는 것도 마찬가지니 힘내어 살아가는 것이 최선의 방법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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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행안내

■ 교통

영동고속도로 횡계 IC ~ 대관령 옛길 ~ 대관령

■ 등산로

대관령 ~ 새봉 ~ 선자령 ~ 초막골 (4시간)

대관령 ~ 새봉 ~ 선자령 ~ 대관령 (4시간)

대관령 ~ 국사성황당 ~ 새봉 ~ 선자령 ~ 삼양목장 ~ 대관령 (4시간30분)

■ 산행 TI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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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계절 산행시 어려움은 없다. 식수와 먹거리만 준비하면 아이들도 따라 나설만한 완만한 길이다. 표고차가 300여m 이르지만 그다지 힘든 길은 아니어서 가족이 함께 찾는 경우가 많다.

다만 겨울산행에서는 문제가 조금 달라지는데 우선 복장과 장비 문제는 확실하게 짚고 넘어가야 한다. 바람이 불지않을 때의 선자령은 온화하고 동해바다를 전망하기 더할 나위없이 좋은 장소지만 일단 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급격히 체온을 떨어뜨리므로 주의해야 한다.

또한 주말의 단체 산행은 많은 눈으로 인해 좁은 통로처럼 길이 형성되므로 교행에 지장이 많다. 가급적 국사성황당으로 우회를 하도록 한다. 하산길로 초막골을 선택할 경우 계곡까지 떨어지는 급경사 지대를 조심해야하며 보현사 방향으로 하산하려면 곤신봉을 지나야하는데 겨울에는 길이 나있지 않은 경우가 많으므로 경험자와 동행하도록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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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수복기자

gosu8848@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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