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논단

배움이 무엇인고 하니…

깨닫는 과정이 즐겁지 않을땐… 내가 뭘하는지 자괴감에 빠져
   
▲ 강명구 (아주대 교수)
[경인일보=]"하루 공부한다고해서 현명함을 얻게 되는 것은 아니지만 무지에서는 멀어진다. 하루 나태하게 군다고 해서 무지해지는 것은 아니지만 현명함에서는 멀어진다. 공부하는 사람은 봄 뜰의 풀과 같아서 그 자라는 것이 눈에 보이는 것은 아니지만 나날이 자라는 바 있으나, 공부하지 않는 사람은 칼 가는 숫돌과 같아서 그 닳아가는 것이 눈에 보이는 것은 아니지만 사실은 나날이 닳고 있는 것이다." 작고한 소설가 이윤기가 '명심보감'의 한 구절을 스리 살짝 패러디한 문장이다. 너무 감동적인 문장이라 혼자 읽기 아까워 내 강의 수강생을 위해 전자 강의 노트에 올려놓았다. 클릭수가 꽤나 되었지만 아차 싶었다. 귀신 씨 나락 까먹는 수준은 아니지만 젊은이들 사고 주파수에 통 맞지 않는 고답적인 교훈조의 발언임을 뒤늦게 깨달았기 때문이다.

동틀 녘 즈음하여 집 뜰의 낙엽을 쓸면서 도대체 공부는 무엇 하러 하나라는 생각을 하였다. 배우고 가르치는 것이 직업인 나는 아닌 척 하면서도 실제로는 먹고 살기 위해 공부한 객관적 징후가 농후하다. 물론 처음부터 그런 것은 아니었다. 공부 열심히 하면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순진한 열정에 사로잡힌 적도 있었다. 그런데 하다 보니 그야말로 학문이 '학문'이 아니라 '직업'이 되었다. 취업 스펙 쌓으려고 (내가 보기에) 별로 쓸데없는 토익 공부하는 학생들이나 승진 논문점수 고려하여 편수 늘리는 교수나 뭐가 그리 다른가?

한데 정년을 보장받는 운 좋은 반열에 들어서게 되어 학문의 호구지책 인센티브가 줄게 되자 공부의 또 다른 얼굴이 나타났다. 깨닫는 즐거움이 그것이다. '때로 배우고 익히면 어찌 즐겁지 아니하랴'라는 공자 말씀 근처를 때때로 서성이는 시간이 늘었다는 말이다. 이 글 첫머리에 소개한 문구에 혹하는 늦바람이 난 것이다. 그러나 공자 수준 근처에도 못가니 깨닫는 과정이 항상 즐거운 것만은 아니다. 봄 뜰의 풀과 같지 못한 이유도 있지만 안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보니 내가 무엇을 아는지 알 수가 없다는 자괴감에 빠지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



그러다보면 철밥통의 편안한 유혹이 손짓한다. 학문의 바다에 논문이라는 물 한 방울 떨어뜨려보았자 티도 안 나는 것을 알게 되니 학문적 글쓰기 대신 신문에 신변잡기를 무슨 대단한 성찰이나 한 것처럼 쓰게 되고 (어험! 웬 헛기침 소리인가?) 좀 더 용감하면 정치판을 기웃거리게 된다. 정치판 가서는 학자 티내고 대학에 와서는 정치인 흉내 내는 최악의 주객전도가 나타나게 된다. 배움이 밥벌이에서 벗어나서도 깨닫는 즐거움으로 진화하지 못하는 과정이다.

나보다 10여년 정도 아래인 연하(年下) 친구 윤 누구는 소소한 농업, 건설 기계수리 전문점 일인 사장이다. 내가 내 정원의 황제 겸 노예이듯 그도 가게의 사장 겸 직원이다. 자칭 타칭 '(경기도)광주의 맥가이버'인 그는 가져만 가면 못 고치는 것이 없다. 수도권 주변 시골 생활 12년차인 내가 그와 친구관계가 된 연유이다. 얼마 전 친구될 이유가 하나 더 늘었다.

기름 때 절은 작업실 한 켠에 지금은 보기도 힘든 LP 레코드판이 꽤나 수북이 꽂혀 있다. 돈 좀 모이면 자신이 디스크 재키가 되어 멋진 음악다방 여는 것이 오랜 소망이란다. 언젠가 이루어질 꿈을 위하여 그는 사십대 중반을 살짝 넘긴 나이에 영어 학원에 다닌다. 한 젊은 시절 자신의 가슴에 불을 지른 팝송을 이해하고 싶어서란다. 그 놈의 꼬부랑 말만 더 잘 알아들으면 아무래도 더 멋진 DJ가 될 것 같단다. 이리하야 윤 모 사장은 봄 뜰의 풀 수준을 넘어 '때로 배우고 익히면 어찌 즐겁지 아니한가?'고 공부해서 밥 벌어 먹고 산다는 내게 온 몸으로 훈수하고 있는 것이다. 다만 수강생이 몇 달이나 자기 혼자라 월세도 못 내겠다고 사정하며 강좌를 접은 소도시 변두리 영어 학원 사장이 이해는 되지만 그래도 야속할 따름이다.

경인일보

제보안내

경인일보는 독자 여러분의 소중한 제보를 기다립니다. 제보자 신분은 경인일보 보도 준칙에 의해 철저히 보호되며, 제공하신 개인정보는 취재를 위해서만 사용됩니다. 제보 방법은 홈페이지 외에도 이메일 및 카카오톡을 통해 제보할 수 있습니다.

- 이메일 문의 : jebo@kyeongin.com
- 카카오톡 ID : @경인일보

개인정보의 수집 및 이용에 대한 안내

  • 수집항목 : 회사명, 이름, 전화번호, 이메일
  • 수집목적 : 본인확인, 접수 및 결과 회신
  • 이용기간 : 원칙적으로 개인정보 수집 및 이용목적이 달성된 후에 해당정보를 지체없이 파기합니다.

기사제보

개인정보 보호를 위해 익명 제보가 가능합니다.
단, 추가 취재가 필요한 제보자는 연락처를 정확히 입력해주시기 바랍니다.

*최대 용량 10MB
새로고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