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승재 / 인천본사 사회부 |
제법 쌀쌀한 날씨였다. 하지만 그들이 임시 숙소로 쓰고 있는 곳은 맨바닥에 깔아놓은 담요와 이불, 전기난로 두 대가 전부였다. 숙소에서 만난 조합원들은 계속된 농성으로 몹시 지쳐보였다. 식사도 아침과 저녁 하루 두끼 뿐이다. 주머니 사정 때문이다. 부산에서 영업사원으로 일했다는 이희태(50)씨를 만났다. 그는 올해 대학교 4학년이 된 딸과 고등학교 2학년에 올라간 아들이 있다고 했다. "아빠 노릇을 제대로 못해 고개를 들 수가 없어요." 지난 2006년 대기발령을 받기 전까지 이씨는 남부러울 것이 없었다. 그는 이때부터 최저임금 수준인 100만원이 조금 넘는 월급으로 버텼다. 지난해 3월부터는 이마저도 깎여 이것저것 제외하고 나면 30만원으로 한 달을 생활해야 했다. 그러다보니 아파트를 담보로 받은 대출금도, 다른 마이너스 통장도 바닥이 났다는 것이다. 그는 "둘째 다니는 학원도, 집에서 먹던 우유도 끊은 지가 오래됐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하다못해 집에 있는 가족들이 전기장판 하나로 한겨울을 날 만큼 한계에 왔다고 했다. 다른 이들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빚은 쌓일대로 쌓여 몇몇 조합원은 신용불량자가 되기도 했다.
노조와 경영진의 대화는 단절된 상태다. 이대로 간다면 평범한 40~50대 가장들의 삶은 지금보다 더 피폐해질 수밖에 없다. 벽보 문구대로 이들에게 실직은 곧 죽음과도 같다. 하지만 대우자판 정리해고 사태에 대해 지역사회에서 별다른 움직임이 보이지 않는다. 합리적인 방안을 찾기 위해 머리를 맞대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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