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추칼럼

랜드마크 콤플렉스

개발광풍에 휩싸인 지방자치단체들 가시적 성과위해 서슴없이 山河파괴
   
▲ 승효상 (건축가·2011광주디자인비엔날레총감독)
[경인일보=]서양에서 역사가 오래된 도시들의 원형을 추적하다 보면 거의 로마제국의 흔적, 특히 군단 주둔지를 발견하게 된다. 파리의 원도심인 시테섬, 런던 시가의 발상지인 시티, 비엔나의 빈도보나나, 프랑크푸르트의 뢰머광장 등이 다 그렇다. 이들은 레기오(Regio)라고 부른 로마 군단의 캠프를 중심으로 발달된 도시들인데, 그 당시 로마가 세계의 중심이었으니 지방을 뜻하는 Region이라는 단어도 그래서 생겼다. 카스트라라고 부른 이 캠프는, 로마에서 오는 길을 연장시킨 카르도라는 길에 데쿠마누스라는 길을 직교시킨 후, 그 교차점에 포럼을 놓고 그 정면에 사령부, 그 주변에 인슐라라는 군막사를 설치하여 담장을 두르는 게 표준적 배치였다. 세월이 흐르면서 이 배치가 그대로 그 도시의 광장이 되고 시청사가 되었으며 완고한 성벽을 가지는 서양도시의 전형이 된다.

중세에는 봉건 영주의 거주지를 중심에 놓고 높은 성벽으로 둘러싼 방사형의 도시가 이상도시라는 이름으로 유행처럼 유럽의 방방곡곡에 세워졌는데, 그 도면들을 보면 전부 기하학적 구성이어서 이를 손쉽게 건설하기 위해서는 또한 반드시 평지를 찾아야 했다. 운하를 뚫어 강물을 끌어낸 후 해자를 만들고 성벽을 쌓은 다음 주변과는 섬처럼 단절된 요새를 만들었으니, 이는 자연과 주변을 배척하는 도시였다.

근세에 들어와서도 마스터플랜이라는 이름으로 건설된 신도시들은 그 기반을 여전히 평지에 둔다. 주거지역 상업지역 공업지역 등 기능적 용도를 설정하고 땅을 평면적으로 구분해야 하는 구조는 최고의 토지 효율을 목표로 삼은 까닭에, 이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평지의 확보가 필수적이었던 것이다. 이 평지의 도시가 다른 도시와 구별되는 시각적 정체성을 확보하기 위해 내세우는 게 랜드마크라는 인공구조물이다.



그러나 우리가 도시를 만드는 방법은 달랐다. 예를 들어, 서울이 조선의 수도로 정해질 때, 서울이 가지고 있는 산세와 물길 등 지형적 형상이 우선적 요소였으니 이미 서울은 아름다운 자연적 랜드마크를 가진 도시였다. 집들은 이 산세를 거스르지 않으면서 양지바른 땅 위에 작은 단위로 지어져서 이루는 집합적 아름다움이 서울에 짓는 건축의 아름다움이다.

서울만이 아니었다. 전국토의 70%가 산인 우리의 땅에 지은 지방의 마을들이 모두 그러했다. 평지는 쌀농사를 위한 경작지여야 했으므로 마을은 배산임수라는 전통적 조성방식을 좇아 산자락 아래 양지바른 곳을 찾아 만들어졌다. 그 배산임수 자체가 랜드마크였다. 지형과 물길이 다 다르듯, 지형을 따라 지은 우리의 마을들은 다 다른 랜드마크를 가졌으며 그것으로 독특한 마을의 이미지를 형성했던 것이다. 주변을 압도하듯 솟아오르는 인공적 랜드마크는 그런 배산임수의 땅에 도무지 어울리지 않았고, 자연을 경외해온 우리의 심리로도 금기시되고 불가능한 구축물이었다.

그러나 지난 60, 70년대 이후 온 나라가 경제개발의 격랑에 휩싸여 근대화(Modernization)라는 말이 서양화(Westernization)와 동일한 말로 간주되었을 때, 개발의 광풍에 휩싸인 우리의 국토는 산이 있으면 깎고 계곡은 메우며 서양의 평지도시를 추종하여 개조되었다. 당연히 자연과 부조화하였고 주변과 부조화하였으며 우리의 삶과도 유리되어 끝내 우리의 도시는 갈등과 분쟁의 용광로가 되고 말았다.

그러나 여기서 멈추질 않았다. 민선의 지방자치시대에 이르러 지방도시들은 가시적 성과에 급급한 나머지 랜드마크 심기를 지금도 사생결단하듯 외친다. 심지어는, 우리의 산하풍경과 전혀 다른 사막 위에 세운 두바이까지 벤치마킹하며 세계 최고, 세계 최초 같은 선정적 구호를 내세워 우리 땅의 생리와 인문적 역사를 철저히 무시하고 있으니, 가히 랜드마크 콤플렉스에 걸린 것 아닌가. 한탕주의 같은 이런 천박한 개발이 끝난 후 우리가 빚은 이 부조화한 풍경을 우리의 후손들은 어떻게 기억하게 될까. 필시, 우리의 산하와 고유한 풍경을 파괴한 반달리즘의 세대로 우리를 규정할까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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