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구도심 문화 르네상스' 이끌 대표 예술공간들

'소통'과 '연대'로 '구도심 문화 르네상스' 앞당긴다

김영준 기자

발행일 2011-09-02 제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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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길 화폭 삼아 美 창작… 진화하는 옛 중심가"

중구 신포동을 비롯해 인천 구도심 골목길의 매력은 '소통'에 있다.

사진기를 들고 신포동을 찾은 20대는 부모님에게 들은 골목길을 이야기하고, 40~50대는 이곳에서 옛 추억을 떠올린다. 이같이 인천의 구도심은 모든 연령대가 소통하고 공감하는 공간이다.

최근들어 신포동을 비롯한 구도심의 '소통의 위력'을 절감한 예술인들이 모여들고 있다.

1980년대 이후 신도심의 등장으로 인해 정치·경제·문화·교육의 중심지였다가 옛 영화를 간직한 구도심으로 치부됐던 이들 골목에 최근들어 문화의 향기가 스며들고 있는 것. 혹자는 바야흐로 인천에 '구도심 문화 르네상스'가 도래하고 있다고 평가한다.#유네스코 에이포트

지난 5월 인천 신포시장내 오래된 칼국수집 골목에 전시공간이 들어섰다.

미술관 '유네스코 에이포트(UNESCO A.poRT)'는 1930년대 지어진 일본식 목조 건물에 자리잡았다.

(사)유네스코인천시협회 부설 기관인 이 공간은 공항(Airport)과 항구(Port)의 영문을 합성해 'A.poRT'로 명칭을 정했다. 'A'와 'RT'를 대문자로 표기해 예술공간이라는 점을 부각시켰다.

2~3년 전까지만 해도 칼국수집이었던 낡은 2층 목조건물이 이같이 문화공간으로 변모했다.

1년여간 갤러리를 꾸민 이탈 유네스코 에이포트 아트디렉터는 당시 "재개발 바람을 피하면서 오히려 방치돼 있던 곳이에요. 80여년을 지나온 보통 사람들의 흔적 위에서 이제 예술가들이 드나들며 생명을 연장시키려는 것이지요"라고 의미를 설명했다.

또한 이 디렉터는 동시대 예술을 펼치고 있는 인천작가들을 초대할 것이며, 외국 예술 공간과도 교류하는 등 일반적인 기존 전시 형태에서도 벗어날 것이라고 했다. 사람 냄새 풀풀 나는 골목길에서 예술을 매개로 한 소통을 추구하고 있는 것이다.

   
 

#신포살롱

유네스코 에이포트가 문을 연 5월 신포살롱도 개관했다.

마을기업 '영씽크'는 신포동을 '문화의 거리'로 되살리고자 이 지역에 문화공간 신포살롱을 개소했다.

마을기업은 문화, 자연자원, 특색있는 상점 등 각 동네마다 있는 유·무형의 자원을 동네 사람들끼리 개발해 수익을 창출할 수 있도록 한 사업이다.

인천시는 지난 3월 14개의 마을기업을 선정, 사업비 등을 지원키로 했다.

선정된 곳 중 영씽크는 설립 취지와 신포동이라는 지역적 특성 등에서 단연 눈에 띈다.

인천대와 인하대 학생, 신포동에 사는 젊은이 등 17명의 청년들이 모여 만든 이 기업은 신포동 일대의 음식점·카페·술집·옷가게를 저렴한 가격에 이용할 수 있도록 온라인 티켓몰을 운영하고 있다.

또한 이들은 신포동 일대의 재즈카페와 라이브카페 등을 연계한 음악문화 활성화 사업을 펴고 있으며, 전시 공간인 신포살롱도 개관한 것이다.

지식과 문화를 공유하고 토론하던 서양의 공간인 '살롱'에서 착안한 신포살롱에선 학생부터 전문 예술인까지 누구든지 원하면 자신의 작품을 전시할 수 있다. 살롱에 와서 전시나 공연을 감상하고 쉬었다가 나가도 된다.

유명상 영씽크 대표는 "인천의 친구들이 문화 소스를 찾아 서울로 빠져나가고 매력있는 동네 신포동이 구도심으로 밀려나 소외받는 현실이 안타까워 이 사업을 시작했다"며 "일본과 중국, 새것과 옛것 등이 공존하는 신포동의 매력을 살려 서울의 인사동이나 홍대거리와 같은 인천의 문화거리를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다락 소극장

극단 떼아뜨르 다락은 지난 7월 신포동 신한은행 인천중앙지점 건너편 상가 건물 3층에 '다락 소극장'을 열었다.

43㎡ 규모의 무대와 80석의 객석을 갖췄으며, 66㎡가량의 로비는 갤러리로 운영되고 있다.

인천지역 민간 예술공간 중 복합시설 형태를 띤 곳은 이 곳이 유일하다.

극단측은 순수 연극을 중심으로 음악·미술·무용·영화·사진·회화 등 다양한 장르가 어우러진 문화공간으로 만들어 나간다는 계획을 세웠다.

다양한 문화 장르들을 통해 주민과 소통의 접점을 넓혀가겠다는 것이다.

   
▲ 공연 중인 다락소극장.

개관 당시 극장에서 만난 백재이 떼아뜨르 다락 실장은 "경계를 넘나드는 문화예술 장르를 만날 수 있는 공간, 만남과 상생의 의미를 높이는 공간으로 꾸며가고 싶다"고 말했다.

쌓인 물건만큼이나 켜켜이 묵혀 둔 이야기를 꺼내들 수 있는 곳을 의미하는 '다락'이라는 이름만큼 다양한 장르의 문화로 신포동을 찾는 모든 사람들과 만나겠다는 것.

하지만 이 공간은 규모도 있거니와 위치도 신포동 상권의 중심 부근이어서 세(貰)도 제법 된다.

당초 극단 후원자의 제안으로 이 공간이 생겼지만, 예상치 못한 일들로 인해 후원자 없이 극단이 극장 운영의 주최가 됐다.

이에 대해 백 실장은 "운영에 따른 현실적 어려움이 있겠지만 중구와 지역 상인, 문화계 관계자 등 많은 분들이 도와주겠다고 힘을 불어넣어주고 있다"며 " 청년층부터 중·장년층에 이르기까지 이질감을 느끼지 않고 문화를 공유하는 공간으로 만들어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다락소극장은 개관 공연으로 기획한 연극 '챕터 투(Chapter Two, 닐 사이먼 극본)'를 잘 치러냈으며, 조만간 지난해 인천아트플랫폼에서 공연돼 호평받았던 '아내가 집을 비운 사이'도 다시 무대에 올릴 예정이다.

#한점 갤러리

지난 5월 배다리 헌책방 거리에도 작은 갤러리인 '한점 갤러리'가 개관했다. 배다리 헌책방 거리는 행정구역상 동구 금창동과 창영동 일대이지만, 신포동과 인근 중구 구도심과 무관하지 않다.

과거 인천의 문화 교류는 신포동과 싸리재(기독병원 부근), 배다리를 거쳐 경인선 철도를 통해 서울로 이어졌다.

행정과 상권이 형성된 중구지역이 근대 건축물로 대표된다면 주거지가 형성됐던 배다리 지역은 1970년을 전후한 인천시민의 삶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다는 점에서 '구도심 문화 르네상스'를 이끌고 있다.

이 곳에 위치한 한점 갤러리는 명칭처럼 소박하게 '한 점'을 보여주겠다는 의지로 개관했다.

윤미경 한점 갤러리 대표는 "전문 큐레이터는 아니지만 평소 열심히 작업을 하고 있는 작가들과 함께 하는 공간을 꾸미고 싶었다"며 "특히 배다리에 애착을 갖고 있었던 터여서 이 공간이 비었다는 소식을 듣고 덜컥 계약했다"고 말했다.

3개월여가 지난 현재 한점 갤러리는 여섯 번째 기획전을 이어가고 있다.

한점 갤러리의 전시 작품들은 장소의 특성상 우리의 삶을 보여주는 작품 위주로 전시되고 있다.

8월 셋째 주말, 이곳에선 윤 대표 외에 전시를 진행중인 중견 서양화가 안성진씨, 우연히 들른 나이든 신사분도 만날 수 있었다.

안씨는 "소외된 것들을 주요 소재로 하는 창작 활동을 펴는 탓에 배다리에 위치한 한점 갤러리에서 전시 제의가 왔을 때 흔쾌히 승낙했다"며 "이 거리와 공간은 옛 시절의 삶과 추억을 머금고 있는 곳"이라고 말했다.

   
▲ 인천 아트플랫폼 전경.

"신진작가 양성 노력 '개항지문명 영화' 되살린다…"

길을 걷다가 갤러리에 들렀다는 최석주(64)씨는 "인근의 동산고를 졸업했는데, 수십년이 흐른 지금도 헌책방에 들러 책을 사고 동네 골목을 걷기 위해 이 곳을 한 달에 1~2회는 찾는다"며 "생활속 소재의 작품들이 눈길을 끌어서 갤러리에 들어오게 됐다"고 말했다.

윤 대표는 "이같은 분들이 많다"며 "공간과 전시 작품의 성격으로 인해 옛 추억을 떠올리려고 헌책방 거리를 찾은 어르신들과 이같은 이야기를 들은 젊은이들이 지나가다가 갤러리를 찾고 있다"고 설명했다.

가장 최근인 지난 8월 중순, 동시대 예술과 문화 활동가 연대 '컬렉티브 커뮤니티 스튜디오(CCS)525'가 남구 주안에서 중구 개항장 지역으로 이전하며 또다른 문화단체의 중구 입주를 알렸다.

이미 올초, 중구 일대에서 청소년과 성인을 대상으로 지역 관찰과 생활문화 체험 등 문화예술교육프로그램을 운영한 CCS525의 지역밀착형 프로그램이 본격적으로 가동되며, 중구와 동구 배다리 지역에 둥지를 튼 문화시설들과 네트워킹 및 교류 또한 보다 긴밀하게 이뤄질 전망이다.

실제로 최근 부평아트센터·쉬필라움·신세계갤러리·신포살롱·유네스코에이포트·한점갤러리·해시 등의 인천 문화 공간들과 현장에서 문화예술교육을 담당하는 활동가(CCS525의 윤종필 대표 등), 미술비평 활동을 벌이는 주체(박석태 미술평론가 등) 등이 일종의 연대를 표방했다. 이들은 인천을 활동의 기반으로 삼는 신진 작가들의 인큐베이팅을 위한 '젊은, 미술, 이어달리기' 프로젝트를 추진중이다.

   
▲ 부평아트센터 전경.

올해 처음 시작되는 이 프로젝트는 1회성의 신진작가 기획전을 지양하며, 지역의 미술대학과 긴밀한 교류를 바탕으로 작가로서의 정체성을 찾는데 도움이 되는 세미나, 비평가 매칭 프로그램, 자체 토론회, 작가간의 인적 네트워크 타진 등을 동시에 운용할 계획이다. 9월부터 이같은 프로그램을 거쳐 오는 11~12월 상기한 지역 문화공간들에서 전시회를 여는 것이다.

이 프로젝트에서 눈길을 끄는 부분도 참여 공간 7곳 중 신포동과 배다리 지역에 위치한 쉬필라움·신포살롱·유네스코에이포트·한점갤러리 등 4곳이 가담하고 있다는 점이다. 공간은 아니지만 CCS525까지 포함하면 5개 단체가 구도심에 본거지를 두고 있다.

이같은 문화 네트워킹의 예는 4년전 배다리 지역에서도 보여진다. 2007년 초여름, 인천 근대문화의 보고(寶庫)였다가 개발 열풍에 사라질 위기에 처한 '배다리'가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유형문화재가 밀집해 있으며 헌책방 거리, 양조장 거리 등으로 유명한 배다리에 문화예술인이 자발적으로 모여들면서 인천 문예부흥의 '선구자'를 자처한 것이다.

당시 '헌책방의 사나이'로 불리며 전국적 이목을 끌던 젊은 작가 최종규씨가 고향 인천(배다리)에 둥지를 다시 틀었으며, 인천작가회의도 남동구 구월동에서 이곳으로 사무실을 이전했다. 곧이어 인천의 대표적 대안문화공간이었던 스페이스빔도 양조장 건물로 들어왔다.

이같은 요소들을 기반으로 지난해에는 동네 주민과 함께 '배다리 역사문화마을만들기 위원회'를 출범했다. 배다리를 주민주도형 마을가꾸기 사업의 모범 사례로 키우려는 움직임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이다.

배다리위원회의 궁극적 목표는 '역사·문화·생활·생태 공동체 조성'이다.

위원회 관계자는 "주민들이 주체가 되고, 전문가가 결합하는 배다리의 사례가 인천의 도시철학적 기반을 형성하고 도시정책에 연결될 수 있도록 동네를 가꿔나갈 계획"이라고 했다.

배다리에 이어 구도심의 문예부흥은 중구로 이어졌다.

복합문화공간 '인천아트플랫폼'이 2009년 9월 중구 해안동에 문을 열며 문화 거점으로 자리했다.

아트플랫폼의 레지던시 입주 작가들은 인천 구도심과 관련된 작업들을 많이 하고 있다. 핀란드와 미국 등 레지던시 기관에 머물며 사람과 사회의 근간을 이루는 배경과 문화에 관심을 담은 사진 및 영상작업을 했던 타케시 모로(미국)는 올해 초부터 아트플랫폼에 거주하며 인근의 신포시장을 배경으로 창작활동을 폈다.

그는 열 명의 시장 상인들을 직접 만나 신포시장에 정착하게 된 배경과 이곳에서의 삶을 묻는 인터뷰를 진행했다. 군중의 한 명일 수 있는 시장 사람들 각각을 조명함으로써 이곳의 삶과 문화를 새롭게 바라볼 수 있는 결과물들을 아트플랫폼 C동 전시장에 선보인다(8월19일~9월4일).

   
 

지역 문화계 관계자들은 "중구는 주로 방치돼 있던 장소에 예술가들이 자리잡고 있다"며 "아트플랫폼과 같은 거점이 생겼기 때문에 앞으로도 민간 문화공간의 중구 집중은 어느 정도 예상되는 부분"이라고 한다.

2009년 12월 기독병원 인근 싸리재에 자리잡은 플레이캠퍼스의 존재도 의미 있다. 배다리와 중구를 연결하며 옛 돌체소극장 자리에 문을 연 이 공간은 '교육·지역·공연을 위한 문화공간'을 표방했다.

1960~1970년대 인천문화예술인들의 사랑방이었던 돌체소극장의 장소와 의미까지 이어받은 이 공간은 지역사회와 연계된 지역 문화 콘텐츠를 키우는데 몰두하고 있다. 이처럼 4년여 사이에 이뤄지고 있는 문화공간의 '설립'과 '연대'를 통한 구도심은 지역만의 유·무형의 자산으로 '구도심 문화 르네상스'를 넘어 인천을 외부에 알리는 문화 랜드마크로까지 자리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취재중 "시민의 혈세를 들여 공연장을 짓고 유명 지휘자와 오케스트라(정명훈이 지휘하는 아시아 필하모닉을 지칭)를 사와서 운영하는 것보다 지역 문화예술인들의 이같은 작은 활동에 관심을 갖고 애로사항을 들어주는게 관에서 할 일"이라고 강조하던 지역 문화계 인사들의 격앙된 목소리가 아직까지 귓전을 때린다.

/김영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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