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만석동 '아카사키촌의 새실험'

원주민 100% 정착하는… 쪽방촌 재개발

김명호·이현준 기자

발행일 2011-09-02 제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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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룻밤 자고 나면 고층 아파트와 대형 빌딩 등 마천루가 들어서는 인천 도심. 이런 인천의 도심 그늘에 '쪽방촌'이란 전혀 다른 동네가 숨쉬고 있다. 동구 만석동 일대에는 이런 쪽방 274세대가 옹기종기 모여 있는 마을이 있다. 6·25때 피란민들이 모여들어 자연스럽게 형성된 곳인데 일명 '아카사키촌'이라고도 불린다. 이웃의 숨소리까지 들릴 정도로 다닥다닥 붙어있는 집들, 한사람이 들어서면 꽉차는 좁디좁은 골목길, 대낮에도 좀처럼 밝은 빛을 찾기 어려운 동네, 너절한 쪽방촌은 성장이 멈춰버린 도심속 작은 '섬'인 셈이다.

이런 만석동 쪽방촌에 최근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번듯한 내집 하나 갖는 게 소원인 이들에게 내집 마련의 꿈이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인천시는 이곳 만석동 쪽방촌 일대에 새로운 방식의 도심 재생사업을 시도하고 있다. 도화지구나 루원시티처럼 구도심의 낡은 주택과 그 곳에 녹아있는 생활·문화를 송두리째 무너뜨리는 재개발이 아닌, 현재 살고있는 원주민들의 공간과 삶을 최대한 유지한 채 주거 공간을 개선하는 사업이다.

시 입장에선 처음 시도하는 방식의 개발사업인데, 지역에서 이를 지켜보는 기대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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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억을 지우는 도시개발사업에서, 기억을 남기는…

시는 기존에 있는 모든 것을 허물고 새로 짓는 재건축·재개발 방식을 탈피, 원주민이 100% 정착할 수 있는 새로운 개념의 도시개발 기법을 동구 만석동 쪽방촌에 도입할 계획이다.

시는 2013년까지 혼합형 주거환경개선 기법으로 이 일대(1만8천519㎡)에 대한 도시·주거지 재생사업을 추진할 예정이다.

이번에 도입된 혼합형 주거환경개선 기법은 기존에 있던 집들을 모두 철거하는 것이 아니라 낡은 집들을 개량하고 동시에 영구임대주택 100세대를 쪽방촌에 건설해 주민들에게 거주 선택의 폭을 넓히는 방식이다. 또 잔여 부지에는 공원 등 녹지공간을 확충할 예정이고 쪽방촌에 사는 주민들의 자활 능력을 키우기 위해 공동작업장도 함께 만들 계획이다.

이번 개발계획에서 눈에 띄는 것은 쪽방촌 주민들이 개발 전 과정에 참여하게 된다는 것이다.

시는 쪽방촌 주거지 재생사업을 위한 민·관 협의체를 최근 구성했다. 이 협의체에는 만석동 주민들뿐만 아니라 관련 공무원·설계사·교수·건축가 등이 참여해 개발에 따른 모든 정보를 공유하고 의견을 제시하게 된다.

개발 과정에 필요한 115억원의 예산도 이미 마련했다.

쪽방촌에 건설될 공동작업장은 정부에서 시행하고 있는 '희망만들기사업'에서 15억원의 예산을 지원받았고, 영구임대주택 건설에 필요한 총 50억원의 돈은 정부가 내년부터 10억원씩 순차적으로 주기로 했다.

주택 개량사업 또한 민간단체가 쪽방촌 주민들을 대상으로 실시하고 있는 '해피하우스센터'에서 지원받는다.

현재 대규모 개발사업으로 진행되고 있는 루원시티나 도화구역 사업이 예산 부족으로 표류하고 있는 것과 대조적으로 쪽방촌 주거환경 개선 사업은 이미 필요한 예산 전액을 확보한 상태다.

필요한 예산을 한꺼번에 신청했으면 예산 지원이 힘들었을텐데 시가 분야별로 정부와 민간단체 등에 예산을 신청해 보다 효율적으로 재원을 마련할 수 있었던 것이다.

소설 '괭이부리말아이들'의 무대가 돼 유명해진 이 마을의 특성을 살려, 주민들이 각종 문화생활을 즐길 수 있는 북카페나 도서관 등도 계획되고 있다.

송영길 인천시장도 자신만의 색깔을 낼 수 있는 개발사업이란 점에서 만석동 주거정비사업에 큰 애착을 갖고 있다. 이번 사업이 성공적으로 이뤄진다면 구도심 개발 방식의 새로운 이정표를 찍는 토대가 마련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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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석동 쪽방 사업 주민들이 주도한다

이번 사업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주민들이 자신의 동네를 새롭게 탈바꿈시키는 과정에 직접 참여한다는 것이다.

그동안 이 지역에 대한 개발사업은 여러 번 시도돼 왔다. 그러나 주민을 배제한채 관(官)이 주도해 사업을 진행하다 보니 원주민들 보단 공무원이나 사업자측 입장에서 일이 추진돼 사업 자체가 성사되기 힘들었다.

지난 2008년 동구청 등이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 조사대상 쪽방 161세대 중 25세대만이 동네 개발을 찬성했을 정도다. 나머지는 이대로 사는게 더 낫다는 입장이었다.

시는 이런 동네 분위기를 파악해 주민과 도시계획 전문가, 공무원, 시민단체 회원 등 16명으로 구성된 '아카사키촌 지역추진협의체'를 만들고 이들의 의견을 주거정비사업에 적극 반영할 방침이다. 추진협의체에는 쪽방촌 주민들뿐만 아니라 최흥찬 기찻길옆 공부방 대표, 민운기 스페이스빔 대표, 박종숙 쪽방상담센터 소장, 김윤이 한국도시연구소 연구원 등 각계각층의 사람들이 참여한다.

이들 협의체 위원들은 쪽방촌의 개발 콘셉트에서부터 원주민들을 정착시키기 위한 방안, 공공미술을 포함한 각종 문화사업 등 시가 구상하고 있는 여러가지 방안에 대해 의견을 제시하게 된다.

최흥찬 기찻길옆 공부방 대표는 "가장 중요한 것은 현재 쪽방촌에 사는 주민들의 자존심을 지켜주면서 그들의 입장에서 도시 개선사업을 실시하는 것이다"며 "시가 쪽방촌에 추진하려는 각종 문화사업 또한 타지 관광객들이 아닌 철저히 마을 주민들의 시각에서 추진돼야 한다"고 말했다.

민운기 스페이스빔 대표도 "가중 중요한 것은 쪽방촌 주민들"이라며 "마을 구성원들과 소통하며 가장 좋은 개선 방안을 만들어 나가겠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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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민 밀착형 문화시설도 쪽방촌에 건립

시는 이번 쪽방촌 주거정비사업을 문화사업으로까지 확장시키겠다는 방침이다. 주민들에게 단지 좋은 집을 제공하는 수준을 넘어서 마을을 살고싶은 공간으로 탈바꿈시키겠다는 구상이다.

시는 이에 따라 쪽방촌에 '희망키움터' 건립 사업도 병행해 추진키로 했다. 희망키움터는 쪽방촌에 있는 빈집들을 활용해 어린이도서관과 컴퓨터 교육·열람실, 주민체육시설 등을 만드는 내용이다. 문화시설이 부족한 이 동네에 아이들과 어르신들이 배우고 즐길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동네 사람들의 삶의 질도 함께 끌어 올려보겠다는 것이 시의 계획이다.

마을 벽면이나 허름한 간판을 특색있게 정비해 쪽방촌이 갖고있는 기존의 어두운 이미지를 한층 밝게 바꾸는 작업도 실시된다.

공공미술 개념을 마을에 도입해 보겠다는 것이 시의 생각이다.

주민들과 지역 화가들이 함께 참여해 벽화를 그리고 마을 가로등 또한 LED 조명으로 바꿔 마을 분위기를 밝게 연출할 예정이다.

채기병 인천시 주거환경정비팀장은 "그동안 만석동 쪽방촌에 대한 여러 개발 계획들이 모두 실패했다"며 "이번 실시되는 쪽방촌 주거개선사업은 주민들이 중심이 돼 추진되는 새로운 방식의 개선사업인만큼 성공 확률도 클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김명호기자

※ 추진위원에 듣는다 / 최흥찬 기찻길옆공부방대표

인간 삶·역사, 공동체 가치 포괄… 쪽방촌 '살가운 재개발'을

원래 거주민이 계속 살 수 있다니… 시작부터 끝까지 지원·감시·견제

"인간과 삶, 가족의 역사와 공동체적 가치를 포괄하는 개념의 재개발이어야 합니다."

인천시 동구 만석동에서 '기찻길 옆 공부방'을 운영해 온 최흥찬(49·사진) 대표의 말이다.

그는 "지금까지의 재개발은 해당 지역에 살아온 사람들의 삶의 자리가 뺏길 수밖에 없는 구조로 진행돼 왔다"며 "그런 식의 재개발은 있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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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석동은 그에게 25년 넘게 삶의 공간이 되고 있다.

공부방을 운영하면서 접하게 되는 아이들의 부모와 주민들의 주된 관심거리 중 하나는 재개발이었다.

그가 이곳에 정착한 1987년 이후 재개발에 대한 이야기는 끊임없이 나왔다. 주거환경개선사업을 추진한다 했다가 사업성이 약하다며 중단됐고, 당시 한국주택공사가 국민임대아파트 건설도 추진했지만 역시 같은 이유로 무산됐다. 2~3년 전쯤엔 인근의 만석부두와 북성부두의 친수공간 조성계획까지 포함된 종합개발 계획도 마련됐다고 한다. 하지만 이마저 흐지부지됐다.

그리고 지난 5월께 이번 만석동 재개발사업이 추진된다는 소식을 접했다. 원래 살던 주민들이 그 자리에 계속 살 수 있는 형태의 재개발이라는 설명을 들었다. 재개발 사업의 새로운 롤모델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갖게 했다. 사업의 방향과 의미, 가치 모두 바람직했다.

한국전쟁 때 이곳으로 피란와 정착한 주민, 경제개발의 붐을 타고 농촌에서 이곳으로 온 주민 등이 모인 곳이 인천 만석동이다. 넉넉지 못한 형편이지만 소박한 정을 이웃과 나누는 동네다. 주민 중 한사람으로서 이런 동네를 재개발 사업으로 흐트러트리고 싶지 않다. 그리고 그는 '만석동 행복마을 만들기 사업'의 추진협의체 위원으로 참여했다.

최 대표는 "주민중심의 사업이 될 수 있도록, 시작부터 끝까지 지원하고, 감시하고, 견제할 것"이라며 "지역주민들의 삶의 방식을 유지하면서 주거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책임의식을 갖고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 추진위원에 듣는다 / 박종숙 쪽방상담센터소장

원하는 주민은 모두 재정착 가능… 지속적 의견 수렴·관심 필요

60~80대 거주민 공동작업장 계획… 주거개선만이 아닌 자활지원 의미

"만석동 재개발 사업은 원래의 주민들이 100% 다시 정착하는 데 그 의미를 둡니다."

박종숙(54·여·사진) 내일을 여는집 인천 쪽방상담소장은 이 지역의 어려운 사람들을 최우선에 두고 이번 사업이 추진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벌써부터 '내가 쫓겨나가야 하는 것 아니냐'고 걱정하는 주민들도 있는 만큼 재개발을 하더라도 자신이 원하면 이 지역에 계속해서 살 수 있도록 이번 사업을 추진해야 한다는 것이다.

재개발을 통해 정주여건이 개선되더라도 월세를 내기도 힘들어 하는 원주민들의 재정착이 이뤄지지 않으면 이번 사업에 의미가 없다고 그는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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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사업을 통해 주택 리모델링이 진행되고 문화공연장과 미니도서관, 쉼터공원 등이 마련될 예정이다. 100가구 규모의 임대아파트도 계획돼 있다.

특히 60대부터 80대까지 지역주민을 중심으로 팬시나 문구류를 만드는 공동작업장은 이번 사업을 통해 기존의 역할이 더욱 강화될 전망이다. 비교적 젊은 층이 참여할 수 있는 일자리 사업도 마련된다.

주거환경을 개선하고 경제적 여건이 좋지 않은 주민들의 자활을 지원하는 개념의 이번 재개발 사업은 전국적으로도 본보기가 될 것이라는 판단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주민들의 의견이다.

아직까지 전반적으로 주민들의 의견수렴이 안 돼 있지만, 재정착이 가능하다는 부분에 주민들의 동의가 있는 것으로 그는 파악하고 있다.

하지만 보다 세세한 부분까지 주민들의 의견이 모두 반영될 수 있도록 하려면 지속적인 의견수렴 과정이 필요하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그는 이번 사업을 통해 만석동 지역이 완전히 새로 탈바꿈되는 것이 아닌, 향수가 묻어있는 마을로 조성되길 바라고 있다.

박 소장은 "주민 입장에 서서 주민이 보다 편해지고, 도움이 될 수 있도록 하겠다"며 "주민들의 의견이 제대로 반영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 "미 루럴 스튜디오와 아카사키촌"

쇠락지역 '사회적가치' 담아낸 메시지 통했다

"건축은 기술이나 심미적 부분만이 아닌 사회적 가치를 담아야 한다."

미국 오번(Auburn)대학교에서 건축학과 교수로 활동했던 고(故) 사무엘 막비(Samuel Mockbee) 교수의 말이다. 건축은 사회와 환경, 교육과 연결될 수 있어야 한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그런 그가 1991년 교수로 임명되자마자 학생들과 함께 활동을 시작한 것이 '루럴 스튜디오'다. 학생 12명과 함께 건축학과의 무료 집짓기 실습 프로그램을 실행할 프로젝트였다.

그는 루럴 스튜디오를 통해 인종불평등, 살 수 없을 지경의 주거환경 등을 개선해 나가는 작업을 하고자 했다.

사람을 위한 건축소, 지역사회의 삶을 향상시키기 위한 공간이라는 목적을 실현시키기 위해서다.

루럴 스튜디오는 쇠락해버린 미국 앨라배마주 헤일카운티 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했다.

방치된 헛간, 무너져 내린 오두막집, 녹슬 대로 녹슨 이동주택 등은 모두 좋은 소재였다. 철로 조각과 오래된 벽돌, 기증받은 목재, 마른 풀, 종이박스, 타이어, 자동차 번호판, 도로표지판 등 값싸고 쉽게 얻을 수 있는 재료들을 적극 활용했다.

이를 통해 작은 식품점은 지역 청소년들을 위한 청소년센터로 탈바꿈됐고, 방치된 빈 건물은 어린이센터로 조성됐다. 빈 공터엔 놀이터가 마련됐다.

루럴 스튜디오는 저소득층을 위한 주택을, 지역 학생들을 위한 야구장을 만들기도 했다. 재원은 우리 돈으로 2천500만원 정도. 주 정부와 기금을 가진 각종 재단의 후원을 이끌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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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목할 점은 이 같은 건축프로젝트에 주민들의 의견을 충실히 반영했다는 것이다. 소통하고 또 소통했다. 지역사회 전반을 고려했다. 그리고 사회적, 윤리적 책임을 다하려 노력했다. 그 결과 새로 마련된 건축물은 주민들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을 수밖에 없었다. 이는 가난한 사람들의 주거환경을 개선해야 한다는 건축가로서의 윤리적 책임, 공동체에 기여하겠다는 도덕적 감성을 실천하겠다는 의지 등이 반영된 것이다.

루럴 스튜디오를 만든 사무엘 막비 교수는 2001년 57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지만, 2004년 미국건축가협회 최고상 골드메달 수상으로 그 업적을 인정받았다. 그리고 지금도 루럴 스튜디오는 이 같은 사회적 가치를 실현하고 있다.

쇠락한 지역을 중심으로, 그 지역의 사람들과 함께 지역사회 전반을 고려하고, 이를 통해 사회적 가치를 창출한 루럴 스튜디오의 건축프로젝트.

멀고 먼 미국 사무엘 막비 교수의 '루럴 스튜디오'가 원도심의 고유성과 정체성을 보존하면서 지역주민 중심의 재개발사업 추진을 앞둔 인천 동구 만석동에 전하는 메시지인 듯싶다.

/이현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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