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창간특집

[창간 51 대토론·발제1]대중일보와 경기신문 그리고 경인일보

"해방직후 최초 발행 대중일보는 경인일보의 뿌리"
   
 

[발제 1 - 대중일보와 인천 문화사 김창수 인천발전硏 연구위원]

[기조강연 - 인천과 언론… 브나로드운동 다시보기 최원식 인하대 교수]

※ 김창수 연구위원



-인천대 인천학연구원 상임연구위원(전)
-인천문화정책연구소 소장(전)
-고려대 강사(전)

"창간기점 45년 아닌 60년 납득안가…"

감격의 해방을 맞아 일제강점기 후반 언론활동을 억압했던 '신문지법' 등 각종 법규와 행정적 통제가 백지화되자 10월말까지 서울지역에만 '조선인민보'를 비롯한 11개의 일간지, 8개의 주간지, 3개의 부정기 신문 등 다양한 언론매체가 출현했습니다. 해방 후 우리말 신문 발간은 지방에서 먼저 시작되었습니다. 충남 대전을 근거로 한 '중선일보'는 해방 당일부터 발행되었고, 전주의 '건국시보'(8.17), 광주의 '전남신보'(8.31), 부산의 '중보衆報'(9.1), '대구일보'(10.3)가 차례로 창간되었습니다. 해방후 경기·인천 지역 최초의 우리말 신문인 '대중일보'도 10월 7일에 그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대중일보'는 인천의 신망있는 중소자본가들과 식민지기부터 활동해온 진보적 문화예술인들이 협력하여 창립한 언론기관이었습니다. 창간 당시의 경영진은 의사로 이름난 고주철, 피복업으로 자수성가하였고 매신 인천지국을 운영했던 송수안, 20년 이상 인현동에 '선영사'라는 인쇄소를 운영해 온 이종윤이었습니다. 대중일보의 또 다른 주역은 인천에서 활동하고 성장한 지식인들과 문인들입니다. 편집국장 엄흥섭을 비롯한 손계언·이원창·김도인·진종혁·송종호·김차영 등은 1920년대의 연극 동인 '칠면구락부', 문학 동인 '습작시대', 30년대 문학동인 '월미' 등 문화예술운동의 주역이었으며 청년운동, 언론 활동을 통해 성장한 지식인들이었습니다. 이들의 다양한 경험과 진보적 성향은 일제잔재의 청산과 새 국가 건설이 과제였던 해방기 언론이 가장 필요로 하는 소중한 자질이기도 했습니다.

   
▲ 김창수 연구위원

'대중일보'의 역사는 해방후 한국사회, 인천사회가 겪었던 분열과 혼란상을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습니다. 창간 직후부터 신문의 편집 기조를 둘러싸고 상대적으로 보수적인 경영진과 진보적인 성향인 편집국간의 갈등이 시작되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갈등은 국내정치 정세가 점차 좌우 대결의 양상으로 귀결됨에 따라 더욱 심각해졌습니다. 결국 '대중일보'는 창간 3개월만인 46년 1월 13일 편집국장 엄흥섭을 비롯한 정경부장, 사회부장, 문화부장 등 7명의 기자들이 퇴사하는 사태를 맞게 됩니다. 퇴사한 기자들은 46년 3월, 진보적 성격을 강화한 '인천신문'을 창간하여 출발하지만, 곧 적산재산 비리 보도와 관련한 미군정청과의 갈등, 운영자금 의혹사건으로 인한 간부들의 구금, 우익 테러, 자금난 등의 곤란을 겪으며 파행을 거듭하다가 결국 1948년 3월 스스로 전사원을 권고사퇴시키면서 사실상 폐간되고 말았습니다.

한편 '대중일보'의 경우는 창간 초기의 필진이 대부분 퇴사하면서 신문의 성격도 진보적 정론지에서 소박한 향토지로 변화하였으며, 정치적으로는 보수적 성격이 강화되어 50년도에는 이승만 정권의 정치노선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할 정도로 창간 당시의 목표와는 멀어져 갔습니다. 해방후 시민들의 여망에 부응하여 창간되었던 '대중일보'와 '인천신문'이 겪어야 했던 분열과 난관은 언론사 운영과 관련된 내부적 문제이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격화일로를 걷던 좌우대결, 한국전쟁과 같은 사태와 같은 외부적 요인이 더 큰 영향을 미쳤던 것으로 보입니다.

   
▲ 사회 : 김왕표 (경인일보 인천본사 정치부장)

'대중일보'는 지금까지 해방직후 경기지역에서는 처음으로 발간된 향토언론이라는 점 때문에 주목의 대상이 되고 있으나 본격적인 검토는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대중일보'는 1945년 창간 이후 내외의 어려움을 겪었고, 한국전쟁 발발로 발행이 일시 중단되었지만, 인천상륙작전 직후 '인천신보'로 속간되었으며, 1950년대 후반에는 '기호일보'로, 1960년대에는 '경기매일신문'으로 개제(改題)하면서 전통을 이어왔습니다. '대중일보'는 1973년 유신정권의 언론통폐합정책에 따라 '경기신문'으로 통합되면서 9018호의 지령을 끝으로 28년간 지속해온 명맥이 끊어졌습니다. 이 때 온갖 난관에도 지역 언론을 지켜온 지역의 대표적 언론인들도 분루를 삼키며 언론계를 떠났습니다. '대중일보'도 73년까지는 '살아있는' 언론이었으나 언론 통폐합 조치로 '사라진' 언론이 되고 만 것입니다.

'대중일보'는 인천과 경기도가 겪은 수난의 현대사이기도 합니다. 대중일보의 경영난과 신문의 성격 변화로 인한 혼란상과는 별도로 이 신문에는 해방 후 인천문화계의 구체적 활동상을 살필 수 있는 풍요로운 자료이기도 합니다. 대중일보에 실린 문학은 윤기홍·표기해·함효영·박영욱·김차영·조일민·조수일의 시, 김도인의 소설, 이경성의 문화시평 등이 대표적입니다.

언론 통합으로 '대중일보'의 적자(嫡子)였던 '경기매일신문'이 사라진 지 다시 38년이 흘렀습니다. 정상적인 통합이었다면 가장 유서 깊은 언론사의 역사를 근간으로 삼는 것이 온당한 처사였을 터입니다. 양보해서 통합 당시 주도권을 가졌던 '연합신문'의 역사로 세 언론사의 역사를 대체해버린 몰상식까지 이왕지사라 해도, 경인일보가 자신의 가장 깊은 뿌리가 무엇인지를 되묻지 않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창간 기점을 1945년이 아니라, 1960년으로 잡음으로써 경인일보의 역사 15년이 통째로 사라진 것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입니다.

   
 

※ 최원식 교수

-세교연구소 이사장
-한국작가회의 부이사장
-'창비' 주간(전)

"자치 실천 민주주의 훈련장… 지역 언론이 개척자 됐으면"

인천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경인일보 창간 51주년을 진심으로 축하한다. 더구나 인천언론의 귀감일 뿐만 아니라 한국 지역언론의 희귀한 선구로 되는 '대중일보'의 의미를 오늘에 되새기는 시민토론회로 창간을 기념하는 경인일보의 기획은 참신하고도 뜻깊다.

언론이 과소한 독재시대와 달리, 지금은 언론이 넘친다. 그 과다에 비하면 선뜻 신뢰할 만한 신문은 많지 않다. 그럼 그런 지역언론을 어떻게 구성할 수 있을까? 예전처럼 일도일지제(一道一紙制)를 통한 강제적 방법은 가능하지도 않고 바람직하지도 않다.

   
▲ 최원식 교수

"교육의 질은 교사의 질을 넘어서지 않는다"는 교육계의 금언이 있다. 이를 응용해 말한다면 "신문의 질은 기자의 질을 넘어서지 않는다". 우수한 교사를 많이 초빙하는 것이 좋은 학교 만드는 첩경이듯, 우수한 기자를 많이 초빙하는 것이 우수한 신문을 만드는 첩경일 듯싶다. 기자가 자부심을 지니고 자신의 사명에 매진할 수 있는 최소한의 여건이 마련되어야 한다. 경영진의 심기일전(心機一轉)이 스타트다. 이렇게 경영진과 기자들이 합심하면 필연 지역언론의 진정한 주인인 지역주민들이 속속 모여들 것이다. 위로부터의 개혁으로 시작된 지역언론 창조운동이 이 단계에 오면 대중운동으로 황홀하게 변모할 터, 상상만 해도 즐겁다.

이 대담한 꿈에 다리를 놓을 중간단계를 생각해보자. 상층과 하층을 잇는 '유기적 지식인'이라는 개념을 응용하여 중간층을 겨냥하는 것이다. 1930년대 신문의 '브 나로드' 운동을 다시 보자. 인천의 실정에 맞춘 새로운 버전의 '브 나로드' 운동을 통해 인천 안팎에 살아움직이는 중간층들과 작고도 탄탄한 네트워킹을 구축하는 것이 담대한 시작이 될 수 있다.

한국사회의 고질 중의 고질이 중앙주의다. 이 중앙주의는 멀쩡하게 딛고 사는 자기 땅을 저주하게 만든다. 그럼 지방주의가 답인가? 아니다. 자칫 토호주의와 제휴하곤 하는 지방주의는 사실 중앙주의의 짝패다. 이 곤경에서 벗어날 길은 미우니 고우니 해도 지방자치가 지금으로서는 최선이다. 그동안의 지방자치는 환멸적이다.

신판 '브 나로드'운동을 통해 지방자치를 실천하는 민주주의의 훈련장으로서 지역언론이 깊이 뿌리내릴 수 있다면 이는 그야말로 오랜 고질인 중앙-지방 이분법으로부터 자유로운 지역언론의 새로운 모델을 창조했다는 뜻이 더욱 새로워질 터다. 모쪼록 경인일보가 중간층과의 크고 작은 연대를 통해 이룩될 중도의 지방자치지라는 명예로운 개척자가 되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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