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추칼럼

정치와 예술은 거리가 필요하다

예술은 영혼을 달래는 정신복지… 정치권 논리에 좌우돼서는 안돼
   
▲ 탁계석 (한국예술비평가협회장 음악평론가)
10·26 재보선 서울시장 선거는 박원순 시민운동가의 승리로 끝났다. 박 시장은 변화를 열망하는 시민의 승리라고 답했다. 재보선은 끝났다지만 정치권은 내년 총선과 대통령 선거를 향해 무한질주할 것이다.

국민이 요구하는 변화의 실체가 뚜렷이 무엇인지는 입장마다 다를 수 있겠지만 한마디로 경제가 잘 돌아가 사람 살기가 좀 편했으면 하는 요구일 것이다.

이제 우리나라도 몇 번에 걸친 보수와 진보 진영의 권력 장악을 해오면서 진저리 치는 이전투구의 싸움을 펼쳐 온 만큼 이제는 투쟁보다는 설득하고 포용하는 리더십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반대를 위한 반대는 정치에 혐오감을 주고, 각자의 세(勢) 규합만으로는 어느 쪽도 큰 승리를 할 수 없는 한계를 안고 있다.

기존의 식상한 정당(政堂) 정치를 벗어나기 위해 최근 신당론(新黨論)이 급물살을 타고 있다. 안철수 서울대과학기술대학원장 같은 인물을 찾기 위해 당은 물론 지자체에서도 큰 고민에 빠진 것이다.

박 시장이 오세훈 전 시장의 측근을 가까이 둔 것도 포용의 리더십을 통해 보다 강력한 변화의 열망을 실현하려는 뜻일 것이다. 여기서 정치와 예술의 나쁜 관행도 이번 기회에 좀 고쳤으면 한다. 사실 MB 정부 들어 최장수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을 지낸 유인촌 전 장관이 예술에 정치색깔은 맞지 않다고 옷을 벗긴 사례가 몇 있지 않았는가. 말은 옳지만 결과는 엉뚱하게 코드인사 역풍으로 되로 주고 말로 받는 꼴이 되고 말았다. 단체장이 바뀔 때마다 옷을 함께 벗어야 한다는 관행이 이제 예술계 전체를 불안하게 하고 있다.

문화계는 나름대로 굳건한 질서와 전통이 자리 잡고 있는데 어느 날 갑자기 이름석자도 생소한 인물이 정치권력을 업고 등장하면 예술가들은 아연실색이다. 이들이 훈장이라도 단듯 종횡무진하면 예술가들은 허탈감에 빠져 창조력이 감퇴하고 숨고 싶을 것이다.

박수 받을 사람은 떠나고 인적 네트워크가 빈약한 실습 수준의 인물이 나타나 다시 시동을 켠다면 이는 변화가 아니라 후퇴요 잘못하면 침몰이다. 예술은 정치가 혼돈스러울 때에도 시민을 위로해 주고 믿음을 주어야 한다.

제정(帝政) 러시아나 세계 2차대전중에도 오페라하우스 불을 환하게 밝힌 것은 사치를 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영혼을 달래기 위한 '기도'였음을 알아야 한다.

25시의 작가 게오르규는 시인이 고통받는 사회는 병든 사회라 했다. 그런데 정치가 뺨치게 알량한 예술가들이 정치권의 허리띠를 붙들고 동행하면 예술은 죽고 만다. 지금 KBS 교향악단 지휘자 문제가 내홍(內訌)에 빠졌다.

애시 당초 환영할만한 실력 검증의 인사였는지 들리는 소문대로 정치권 낙점이었는지는 모르겠으나 갈등이 장기화 되면 국민 혈세는 물론이고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긴다.

오케스트라는 돈이 있다고 만들고 당명(黨名) 바꾸듯 갈아엎는 정치의 희생물이 아니다. 전신인 국립교향악단을 세계적인 오케스트라로 만들겠다고 정치권이 손대어 KBS교향악단으로 바꾸었는데 다시 정치가 가세해 무덤을 판다면 역사에 오점을 남기게 된다.

탁월한 예술경영으로 꽃이 피는가 싶었던 고양아람누리극장, 성남아트센터, 창원성산아트홀, 대구수성아트피아 등 높은 평가를 받던 극장장들이 코드에 걸려 입장을 달리하면서 노하우를 잃어가고 있다.

그래서 때를 묻히지 않기 위해서라도 정치와 예술은 적당한 거리가 필요하다. 당장 내년도 서울시 문화예산이 대폭 삭감됐다니 예술을 사치로 보는 것일까. 최고의 복지가 정신복지인데 포퓰리즘의 민생복지에 밀려 꿈도 꾸지 말라는 것인지.

가난한 아이들, 총으로 무장된 폭력의 아이들에게 악기를 손에 들게 해 도시 전체를 변하게 한 엘시스테마 운동이 상륙한 것은 MB 예술정책의 큰 성과인데 이런 것이 뒤집힌다면 노하우를 잃는 안타까움이다. 정치와 예술의 거리를 찾기 위해서 때론 예술가들도 목소리를 내야 하지 않겠는가. '침묵은 동조'라는 말이 싫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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