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브리지&人
[아트브리지&人·10] 용인 '한택식물원'
산들산들 봄꽃 손짓 재잘재잘 풀잎 노래
'식물왕' 이택주 원장… 전국 직접 누비며 야생화 채집 한때 재정파탄 위기 맞았지만 80년대말 '야생화 붐'에 우뚝
▲ 이택주 원장은 "한택식물원은 농약을 사용하지 않는 친환경적 재배 및 관리로 건강한 생태계를 실현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
■ 식물원은 수목원, 유원지와 다르다
한택식물원 동원(East Garden) 중간쯤 호주온실에 들어서자마자 나무냄새가 코를 덮친다. 뒤이어 포근한 공기가 온 몸을 감싼다. 한택식물원 최고의 몸값을 자랑하는 바오밥나무(The Bottle Tree)가 안정감있는 자태로 서 있다. 남아프리카 온실의 백미는 나무알로에(Aloe Dichotoma)로 100년을 산다는 이 식물은 옅은 갈색의 기둥 위에 초록색 알로에가 돋아 있다. 뿌리가 초록색인 나무가 땅에 거꾸로 처박힌 듯하다. 온실로 이동하는 동안 보이는 모든 흙 위에는 뾰족뾰족, 몽실몽실 새순이 돋아 있다. 올해는 어떤 작품이 얼마나 탄생할까.
이택주 원장은 '식물원이란 무엇인가'를 주제로 힘주어 말한다. "식물원은 단순히 화려한 식물을 보여주는 공원이나 유원지가 아니다. 인류에게 유용한, 그리고 잠재적 가치를 지닌 식물유전자원을 확보해 연구, 전시, 교육을 하는 곳이다."
식물의 중요성도 목 놓아 외친다. "식물 없이는 동물도 살아갈 수 없듯 생태계의 기본이자 기초과학이 식물이다. 식물 종 확보·관리 및 교육·연구하는 식물원은 대학마다 반드시 있어야 한다. OECD 가입국 중 대학에 식물원 없는 나라는 우리나라뿐이다." '한택식물원은 농약을 사용하지 않는 친환경적 재배 및 관리로 건강한 생태계, 생물종 다양성을 실현하고 있다'는 자랑도 살짝 곁들이는 이 원장은 예술인이기보다 과학자처럼 보였다. 그러나 그의 식물들과의 분투기는 여느 예술가의 사연에 조금도 뒤지지 않는다.
■ 깽깽이풀에 홀리다
대학에서 토목을 전공한 이 원장은 당시엔 보통 젊은이처럼 식물에 관심이 없었다. 특근수당을 받으려 새벽 4시반에 출근하고 통금을 겨우 피하고 퇴근하면서 악착같이 돈을 벌어 깨알같이 모으는 재미에 빠져 젊은 날을 보냈다. 그러던 차 그에게 인생에 대한 회의가 찾아들었다.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이나 짓고' 한가롭게 살고 싶다는 생각을 품었다. 때마침 종중어른이 지금 식물원 자리 일부의 땅을 사라고 권했다.
땅을 사서 초지를 조성하고 소를 키웠다. 젖소는 키울 만했지만 당시 마리당 150만원 하던 한우가 1년 만에 90만원으로 곤두박칠쳤다. 업종을 바꿔 관상수를 심었지만 자꾸 죽었다. 나무에 대해 배워 보려고 유럽까지 답사갔다. 그런데 유럽은 우리나라에는 단 한 개도 없는 식물원이 도시나 대학마다 있었다. 우리나라는 당시 유엔 가입국 중 식물원 없는 유일한 나라였다. 이유는 간단했다. '잘살아 보자'며 먹고살기 바빠 기초과학인 식물을 다루는 일에는 관심을 두지 않았다. 우리나라 최초의 식물원을 만들겠다고 1979년 일을 벌였다.
그런데 우리나라 토종 식물을 구할 수가 없었다. 야생화는 정말 야생에만 있었다. 이 원장은 전국을 다니며 야생화를 채집·수집하고 한국인 최초로 야생화를 길러냈다. 지금 전국에 퍼진 야생화는 다 한택식물원이 고향이다. 북한식물은 베이징식물원과 업무협약을 맺고 중국에서 구했다. 한라산에서만, 설악산에서만, 계곡에서만 나는 식물을 찾아서 채집해서 길러내는 것은 무척 어려웠다. 하지만 이겨낼 수 있었던 건 식물이 아름답기 때문이었다. 이 원장은 "한참 식물을 찾아다니던 1980년대 식목일, 광릉의 어느 계곡 언저리에 융단처럼 깔려 있던 보라색 깽깽이풀 꽃이 주저앉을 만큼 아름다웠다"며 회고했다.
▲ (왼쪽 위부터 오른쪽아래으로) 1.모녀의 봄나들이 2.시네라리아 3.튤립 4.크로커그 군락 5.무스카리군락 |
■ 인류를 사랑하는 법
식물원 일은 1년 내내 고되다. 평소 물주기, 풀뽑기 등은 물론 장마나 가뭄이 들면 더 바쁘다. 가을 방문객이 줄어들면 한가할까 하지만 화재예방을 위해 자고 나면 수북이 쌓여 있는 낙엽을 치워야 한다. 뭐니뭐니 해도 제일 힘든 건 운영 수지가 안 맞는 것. 동양 최대 식물원 주인이지만 직원 월급날이면 가슴이 오그라든다.
걱정거리가 하나 더 있다면 식물에 대한 무관심이다. 이 원장은 "유럽 관광객들은 식물의 학명을 안다. 식물을 어디서 어떻게 길러야 하는지 안다는 뜻이다. 그러나 우리나라 전문가들이 유럽 관광객만도 못한 경우가 적지 않다"며 "유럽은 10명의 식물 전문가를 길러내기 위해 10만명의 학생에게 많은 돈을 들여 식물을 가르치더라"고 말했다.
식물자원에 대한 관심이 높은 유럽의 학교나 연구기관에서 이 원장에게 식물키우는 노하우를 묻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이 원장은 "식물키우는 노하우는 순전히 경험이다. 우리나라 전역을 다니며 배우고 산에서 배운 것, 체험을 식물원에서 재현하는 것"이라며 "우리는 풀 먹고 살다 병이 나면 또 약초를 먹고 살아남은 민족이다. 식물을 사랑하는 것이 동물을 사랑하고 인류를 위하는 길"이라고 마무리했다. 그는 과학자·예술가보다 '식물왕' 정도가 어울릴 듯하다.
한택식물원은…
1979년 설립 이래 다양한 식물종의 확보, 보호 및 대량 번식 등을 위해 노력해 왔다. 현재 66만1천㎡ 규모에 36개의 테마정원으로 구성돼 있으며 자생식물 2천400여종과 외래식물 7천300여종 등 총 9천700여종, 1천여만본의 식물을 보유한 국내 최대의 종합식물원이다.
2001년 환경부 지정 '희귀, 멸종위기식물 서식지외 보전기관'으로서 자생식물 및 해외식물 유전자원 보전에 앞장서고 있으며 '원예조경학교', '자연생태학교' 등을 통해 식물 교육을 선도하고 있다.
'Bloom & Love 한택식물원 봄꽃페스티벌' (4월 28일~5월 15일), '국화단풍페스티벌'(10월) 등 다양한 축제도 열린다.
글┃민정주기자
사진┃김종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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