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 준 대가(?)

이윤희

발행일 2012-06-29 제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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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윤희 / 지역사회부(광주·하남)
#지난 26일 광주경찰서내 민원인대기실에 아침부터 십여명의 서민이 몰려들었다. 배드민턴 운동을 하며 알게 된 코치에게 돈을 빌려줬다가 떼이게 되자 고소장을 제출한 이들이다. 작게는 수백만원에서 수천만원까지 피해를 입었다며 고소한 금액만 15억여원에 달한다. 생업도 제쳐놓고 이날 경찰서를 찾은 이들은 한결같이 처음에는 그동안의 울분을 쏟아내느라 정신이 없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말수가 줄어들고 화가 푸념으로 바뀌어갔다.

#시간을 거슬러 지난 5월 14일의 광주 퇴촌신협 앞. 이곳에도 이른 아침부터 수십명의 서민이 몰려들었다. 지점의 여직원이 10여년간 30억원에 달하는 고객 돈을 횡령한 사실이 보도되자 이곳에 돈을 맡겼던 서민들이 황급히 모여든 것이다. 울화통을 터뜨리며 분노했던 이들도 시간이 흐르자 직원에 대한 분노가 자신에 대한 원망으로 바뀌며 표정이 굳어지고 이내 말이 줄었다.

취재날짜는 달랐지만 교묘히 오버랩되는 장면이다. 하루하루 살기가 힘들다는 푸념이 여기저기 터져나오는 요즘, 사례는 다르지만 돈 때문에 더 가슴 아프고 삶이 팍팍하게 된 우리 주변 사람들이다. 배드민턴 코치에게 돈을 맡겼던 이들은 같이 운동하는 사람으로서 다년간 쌓인 정과 신뢰가 바탕이 돼 돈을 거래했다가 이런 상황에 처했다. 마찬가지로 퇴촌신협 고객들도 지점은 물론이고 물의를 일으킨 여직원과의 신뢰를 바탕으로 거래를 이어나갔다. 지금 같은 전산화 시대에 수기로 통장에 거래내역을 입력했는데도 의심 한 번 하지 않고 직원을 믿고 돈을 맡긴 이들도 상당수에 달했다. 한 피해자는 "뉴스에서만 보던 일이 나에게 일어나다니, 그렇게 믿었던 사람인데… 아직도 믿기지가 않는다"고 하소연했다. "'사람이 희망'이니 하는 말도 다 위선같다"는 이도 있었다. 여기저기 터져나오는 사건들을 볼때면 '정신 똑바로 차리고 살아야지'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살기 힘든 세상, 이젠 정을 준 대가도 생각하며 살아야 하는 건지 씁쓸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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